엄마는 대체로 늦게까지 비몽사몽 일어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회사로 나서는 아침에 엄마에게 인사할 일이 드물긴 하다. 때로는 이른 아침부터 수차례 화장실을 들락거리다가 화장실 맞은편의 내 방문을 열어 빼꼼 쳐다본다. 아침식사 시간에는 자주 식탁을 박차고 일어나려 한다. 밥을 다 먹어야지-라고 말해도 고개를 끄덕인 직후 다시 일어날 시도를 해본다. 숱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미 의자는 식탁에 고정되어 있다. 상황을 말해주면 이해는 하지만 생각과 몸이 따로 노나보다.
입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눈을 비비는 습관이 있다. 눈을 하도 문질러서 흰자에 갈색의 반점이 생겼을 정도. 물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물 좀 줘 라고 말하는 게 입에 붙었다. 밥을 먹은 뒤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잔소리는 입에 손을 넣지 말라는 외침이다. 입 안의 이물질을 손으로 꺼내려고 할 때마다 나와 막내는 엄마 입에 손 넣지 마! 하고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그 손으로 아무거나 만지고, 눈을 비비고, 다시 입에 넣고, 그럼 안 되겠지?라고 하면 엄마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거두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다시 손이 올라간다. 습관은 파도와 같아서 하지 말라는 수천번의 말을 말끔히 씻어낸다.
또 하나의 습관은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것. 처음엔 양치질을 반복해서 잇몸이 상할까 걱정이었는데 이제 그건 약간 성가신 정도다. 소변을 보고 화장실 문을 나오자마자 다시 화장실로 돌아가서 변기에 앉기도 수차례. 암만 몇 분, 아니 몇 초 전에 화장실을 갔다 왔다 말해도 본인 성이 찰 때까지 가야만 하나보다. 대변이라도 볼라치면 몇 번을 들락거려야 한다. 기억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다 보니 인내라는 개념도 없이 잠깐 앉았다 일어나기를 당연한 듯 반복하고 결국 성공하면 가족들이 잘했다고 박수를 쳐준다. 엄마가 큰 일 봤다고 박수 쳐주는 날이 오다니.
엄마가 수술받고 병원에 있던 초창기에 대변을 치운 적이 있었다. 그때는 누워만 있을 수 있어서 엄마의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엄마의 용변을 정리했었다. 그때의 엄마는 그저 누구신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었다. 아마 날 온전히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그때는 이름마저 헷갈려하던 상태였으니까. 낑낑거리며 씨름 아닌 씨름을 하던 날,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엄마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는 그저 멍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보다 아주 조금 더 전 어쩌면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르는, 엄마가 응급실에 처음 실려갔던 날에도 엄마는 몸에 이런저런 기계를 달고 있느라 일어나 용변을 볼 수 없었다. 그때만 해도 엄마는 엄마였다. 급하게 소변이 보고 싶다며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고 나는 간호사에서 물어물어 누워서 소변을 받을 수 있는 희한한 도구를 들고 왔다. 엄마는 남사스럽지만 그래도 그나마 딸이라 다행이라고, 이래서 딸이 좋구나 하고 씩 웃었다. 엄마는 그랬었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뭔가 긴장하거나 밖에 돌아다닐 때 유독 자주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무언가 불편하거나 신경 써야 되면 생기는 엄마의 습관이었나 보다. 지금은 너무 자주 가서 문제지만, 문득 엄마 나름의 배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삼십여 년 가까이 둘째 동생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살았다. 똥오줌은 대게 불쾌한 찌꺼기의 상징이며 한 사람의 용변을 평생토록 책임지는 일은 암만 자식이라 해도 쉽지 않은... 아니 아주 어렵고 힘겨운 일이다. 그런 동생이 있음에도 내 손에 동생의 변을 묻혀본 기억이 그다지 없는 걸 보면 그 사이에 엄마가 받아내야 했던 똥오줌들은 얼마나 거대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고 챙겨야 하는 그 일만큼은 엄마가 자식에게 시키기 싫은 건지 엄마는 방금 화장실을 다녀왔음에도 악착같이 변기에 앉아 남김없이, 더더욱 치울 것이 없이 몸에서 나오는 오물들을 비워낸다. 엄마의 두 발로 자신의 의지로 화장실을 간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건지 매일 그 뒷모습에 새기며 요즘엔 그저 화장실 가는 걸음이 조금 덜 힘들도록 배웅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