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손의 유전

엄마 요리가 딱히 그립진 않아

by swimmming



불행 중 다행인지 동생이랑 얘기해도 도통 결론이 나진 않았지만, 엄마가 더 이상 요리를 해줄 수 없는 지금도 딱히 엄청 그리운 엄마 손맛의 요리는 없다. 엄마가 요리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는 사실은 대학교에 들어와 알게 됐다. 어릴 때부터 밥을 잘 안 먹어서 빼빼 말랐고 음식 씹어 삼키는걸 세상 귀찮은 일로 여겨왔는데, 어머나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이 많았다니! 돌이켜보면 학생 때 까지는 도통 어딜 놀러 다니는 편이 아니라 대체로 집밥, 급식, 아주 가끔 밖에 나가 사 먹는 김밥천국 정도가 내가 먹던 음식의 반경이었다. 가족끼리 외식은 둘째 동생을 데려가기 힘들어서 일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당연히 그중 가장 많은 범위를 차지하는 집밥은 그냥 먹어야 해서 먹는 음식이었다.


엄마는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봤다. 멸치볶음에 곶감을 넣는다던가, 된장국에 어울리지 않는 브로콜리를 썰어 넣는다던가. 지금도 요리할 때 되도록 정석을 지키려는 내 스타일과 다르게 이런저런 실험을 하다 종종 이도 저도 아닌 맛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또 엄마가 양껏 만든 푸짐한 음식을 받아주기엔 가족들의 배가 너무나도 심약했다. 국도 밥도 사발로 가득 퍼줄 때마다 나는 많다고 투덜대고 엄마는 이거 다 물이라고 맞받아쳤다. 나잇살을 먹으며 제법 푸동 하게 부푼 뱃살이 걱정돼도 엄마 눈에는 아직 18킬로짜리 8살로 보이는지 내가 포만감에 허덕이면 흐뭇하게 이제 좀 잘 먹네 라고 십 년 넘게 말했다.


나는 지독하게 잘 안 먹었는데 그게 엄마한테는 큰 스트레스였다. 입이 일곱이라 먹을 것이 항상 동나버리는 가난한 집에서 살아남았는데 먹을 게 있어도 안 먹겠다 거부하는 딸을 납득하기 힘들었나 보다. 그래서 어릴 때 엄마와의 트러블 대부분은 먹는데서 시작됐다. 나는 조금이라도 맵고, 비리고, 촉감이 물컹거리거나 냄새가 낯선 건 먹지 않으려 했고 엄마는 가리는 게 없이 대부분 다 잘 먹는 편이었으니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음식에 대한 경계가 서서히 사그라들긴 했으나 엄마는 먹는 걸로 싸웠던 한이 남아있었는지 간만에 집에 있노라면 쉴 새 없이 먹을 걸 주곤 했다. 큰 소리로 부르길래 허겁지겁 나가보면 이것 좀 먹어봐라는 식이었다. 냉장고엔 항상 먹을게 가득했고 아빠가 좋아하시는 과일은 기본이 박스 단위였다. 먹을 게 없는 날은 없었고 엄마의 손은 늘 컸다.


손은 크지만 손맛이 좋지 못하다는 게 내게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지금 보니 나도 맛있는 건 잘 먹는다. 그러니까 엄마의 요리 스타일과 내 입맛이 맞지 않아서 모든 문제가 발생했었다. 하물며 애초에 배가 작아 많이 먹지 못하는데 입맛에 안 맞는 요리를 한 사발씩 들이키는 건 고역이었다. 더 큰 문제는 나도 엄마의 딸인지라 똥-손을 물려받았다는 거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요즘 같은 시대에 다양한 요리 레시피가 지천에 널려있어 아주 열심히 정석대로 따르면 망할 확률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진작 엄마의 딸이라는 걸 자각하고 나의 감각을 믿지 않기로 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래도 엄마가 해주던 몇몇 음식 중에 생각나는 건 수육. 연례행사처럼 김장한 날엔 수육을 푹 끊어 갓 버무린 김치와 함께 먹었다. 매운걸 못 먹어 김치를 거의 안 먹는 내가 한 해 중 가장 많이 김치를 먹게 되는 날이었는데 거기에는 엄마가 온갖 시도 끝에 완성한 레시피의 수육 덕이 크다.

엄마는 수육을 끓일 때마다 그동안 엄마가 이 비법을 확립하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시도를 했는지 얘기하곤 했다. 월계수 잎을 넣고 커피를 넣고 얼마 동안 불을 어떻게 조절하고... 그저 수육만 맛나게 먹으며 흘려들었는데, 그런 레시피 하나하나가 참 귀한 유산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이후 내가 어설프게 삶아 본 수육은 질겼고 퍽퍽했다.


엄마가 즐겨 해주던 음식은 찜닭과 잡채. 엄마는 뭔가 좋은 일이나 가족끼리 축하할 일이 있으면 찜닭 해줄까? 잡채 해줄까? 하는 얘길 종종 했다. 엄마가 자신 있게 해 주던 요리였는데 찜닭도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엄마만의 방법으로 요리했다. 애석하게도 그런 요리의 과정 중 내가 도운 적이 그다지 없었기에 지금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전혀 모르겠다. 엄마가 해준 요리의 기억이 희미할 무렵, 종종 그 맛이 궁금할 때가 있다. 어디 가서도 먹을 수 없는 엄마만의 맛. 자신 있는 요리를 하고 가족들이 묵묵히 먹다 보면 엄마는 자꾸 맛있어? 잘됐어?라고 묻곤 했다. 그때마다 무뚝뚝한 딸은 맛없으면 없다고 말할 테고, 진짜 맛있으면 맛있다고 할 테고, 암말 없이 먹으면 평타는 되는 거겠지- 하고 무심하게 말했다. 엄마는 맛있으면 맛있다고 말을 할 것이지 하고 투덜대곤 했다.






엄마는 요즘 내가 만든 요리를 먹으며 묻지 않아도 마시따 라고 해준다. 솔직히 내가 먹어도 별로인 요리를 먹는 사이사이 추임새처럼 마시따, 아빠 이거 너무 마싯어요, 마시써. 엄마는 이 와중에도 그리 맛있다 해주는데 나는 그게 뭐라고 그렇게 말을 안해줬을까.

다시 생각해도 엄마 요리가 썩 그립진 않다. 하지만 맛있다고 한가득 말해주지 못한 순간은 후회가 남는다. 빈말은 못하는 성격이라 고집부렸지만 때론 마음에 없어도 상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말이 필요하나 보다. 해준 요리에 맛있다, 도와준 마음에 고맙다는 말들은 내가 실제로 느낀 것에 비해 아낄 것이 아니라 넉넉히 풀어놔야 그 자리에 후회가 덜하겠지.


얼마 전 냉동실을 뒤지다 엄마가 한참 전에 집에서 만들었던 카레 돈가스 덩어리를 발굴했다. 돼지고기 등심을 사서 손수 부침가루와 계란물과 빵가루를 묻혀가며 만들었던 엄마의 마지막 요리였다. 먹으면서 맛있다고, 맛있다고 뒤늦게서야 메아리처럼 내내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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