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발견한 재능
엄마는 타고난 사업가였다. 아빠는 엄마가 제대로 교육받고 적절한 시기에 코치만 잘 받았어도 훨씬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었다. 누구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엄마는 본능적으로 자기 사업을 일궈나갔다. 그래서 아주 큰 성공은 아니라도 이십여 년 전에 비하면 정말 많이 개선된 삶을 살고 있는 편이다. 작게 시작한 자영업이 이 정도가 되기 위해 엄마가 공들였던 시간들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원래 아빠는 목회자였고 엄마는 신앙의 신념에 따라 종교가 건실한 아빠와 결혼했다. 집안의 반대에도 목회의 길을 걸었던 아빠는 개척교회를 이끌었다. 소위 대형 교회는 매주 엄청난 헌금이 들어오지만 개척교회의 경우 깡촌에서 시작해 없는 그마저의 살림도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퍼주기 바빴다. 아무런 연고가 없던 아빠는 옥천 구석에 있는 시골로 들어갔고 하루에 버스가 다섯 대밖에 안다녀 초반에 버스를 놓치면 긴긴 산길을 몇 시간이고 걸어가야 했다고 한다. 도시처녀였던 엄마는 겁도 없이 덜컥 그런 곳에 시집갔다. 그리고 처음 보는 벌레들과 시골교회의 차갑고 축축한 환경에서도 긍정적으로 살아나갔다.
그러던 아빠와 엄마의 삶은 둘째 동생이 태어나고 인생의 회로가 변경되어갔다. 몸이 불편한 동생을 치료하기 위해선 도시에 살아야 했고, 치료할 돈이 필요했다. 물질적 부와는 거리를 가진 일을 업으로 삼다 보니 쌀독 바닥을 긁는 일이 허다했다. 긴 고민의 시간이 있었지만 어쨌든 아빠는 목회를 내려놓고 동생에게 보다 집중하기로 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마 25:31~46) 부모님에게는 지극히 작은 자가 둘째 동생 었기에 지금까지의 모든 걸 놓기로 한 것이다. 마침 막내동생까지 생기고 입이 하나 더 늘자 노선 변경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결정은 내렸는데 지금까지 성직자의 길만 걷던 부부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몰랐을게다. 그때 엄마가 나서기 시작했다.
우선 엄마는 결혼 전에 하던 미용일을 다시 시작했다. 사실 미용일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독한 약품 냄새를 맡으며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머리도 허리도 손목도 아프다며 힘들어했다. 다만 먹고살기 위해 작고 낡은 미용실을 하나 인수해 거기에 딸린 작은 한 칸 방에서 다섯 식구가 오밀조밀 살았다. 아직 기어 다니던 작은 아기에, 만년 아기였던 둘째 동생까지 손수 떠먹이고 재워야 할 사람이 둘이었다. 물만 나오도록 해놓고 시멘트로 어설프게 마감한 공간에서 가스버너에 밥을 짓고 세수하고 화장실은 십 미터 가량 떨어져 물을 내리려면 줄을 당기는 공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그 일을 하다 아는 분에게 한과를 떼와 마트를 돌며 팔기도 하고, 시장에 간이 노점을 열어 액세서리를 판매하기도 했다. 작은 차를 타고 엄마 아빠가 아기 둘과 함께 집에서 싸간 밥이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돌아다녔다. 지금 돌이켜보면 미스터리다. 조금이라도 시끄러운 소리가 나면 질겁하며 울어대는 둘째 동생을 데리고 어떻게 다닐 수 있었을까. 소리에 예민한 동생은 경적소리나 소음에 신경질적으로 울었고 남이 울면 따라 울 나이인 막내도 같이 울어재꼈을 텐데.
근근이 살아가던 어느 날, 엄마는 문득 발견한 아이템으로 작게 자영업을 시작하고 싶어 했다.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이유로 주변에선 모두 뜯어말렸다. 사업 밑천을 빌리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찾아간 친척들과는 언성이 높아졌고 엄마는 당장 다음 달 생계가 막막하듯 마음도 막막해졌다. 긁어모을 수 있는 모든 돈을 모아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도시에 월세 30만 원짜리 아파트를 얻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서 엄마는 더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우려와 달리 그 일은 엄마의 천직이었다. 지금껏 땅을 만나지 못해 틔우지 못했던 싹처럼 엄마는 솟아났다. 아빠와 엄마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합이 잘 맞는 사업 파트너로 늘 동행했다. 엄마는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힘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일하기 시작하면 눈빛과 태도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반짝였댔다. 누가 뭐래도 확신에 찬 엄마의 행동력에 많은 사람들이 믿고 제품을 구입했고 엄마는 자신의 일을 정말 좋아했다. 일 년 내내 엄마의 전화기가 쉬지 않고 울려댔지만 짜증 내지 않을 정도로.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지만, 얘기하다 보면 사고방식이 사업가 구나 싶은 순간이 종종 있었다. 가령 사람이 북적이는 식당에 들어가면 나는 어떤 점이 이 식당의 비결일까, 어떤 마케팅을 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지 관찰해보는 반면 엄마는 테이블 회전율을 지켜보다 하루 매출과 순수익을 계산해내곤 했다. 그리고 어떻게 그리 달리 생각할 수 있는지 서로에게 놀라워했다.
빠르게 계산이 가능한 머리에 믿음이 가득한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는 자신이 선택한 일에 무모해 보일 정도로 확신을 가졌다. 나는 종종 그게 진짜 맞긴 해? 라며 냉소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엄마는 분별하기 힘든 사안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상당한 추진력으로 나가되 아빠와 항상 상의해서 속도를 조절했다. 그런 에너지로 사람들의 신뢰를 얻고, 사람들이 믿고 엄마의 제품을 사 갔다.
하루가 저물고 둘째 동생까지 잠든 밤, 엄마도 피곤할 텐데 책을 펼쳐 들고 일하는 분야에 대해 꾸준히 공부하고 적어보고 정리하곤 했다. 건강과 관련된 일을 했는데 티비를 봐도 관심 있는 내용이 나오면 바로 녹화하거나 캡처하고 책을 봐도 관련된 책만 파고 유튜브도 관련 분야를 집중해서 봤다. 나도 내가 하고 싶어 하던 일을 업으로 삼고 있으나 퇴근하면 손하나 까딱하기 싫건만 엄마는 눈뜬 매 순간의 관심사가 일과 관련된 부분이었고 귀에 닳도록 얘기해 종종 내가 일중독이라고 구시렁 대기도 했다.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내내 나왔는지 모르겠다.
쓰다 보니 엄마 진짜 열심히 살았구나. 일상 같은 풍경일 때는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다시 못 올 추억이 되니 엄마가 자랑스럽고 안쓰럽기도 하다. 반대를 뿌리치고 시작한 사업이 망하면 말 그대로 딸 셋이 손가락 빨아야 했던 상황에서 엄마는 무슨 마음으로 일하러 나갔을까. 일을 해야만 했고 그래서 이왕 하는 일을 즐기자는 본능이었을까.
딸은 엄마를 닮는다는데 나는 아직 엄마가 감당했던 무게를 가늠도 못하겠다.
그래서 지금은 푹 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이왕 쉬는 거 몸이라도 안 아프면 좋겠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