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이토록 엄마를 사랑하는지 몰랐어

by swimmming




살가운 딸이 아니어서 엄마가 낯간지러운 소리 하려고 할 때마다 마다하곤 했다. 가끔 특별한 날 편지 구석에 조그맣게 사랑한다고 써놓는 게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용기였다. 돌이켜보면 대부분 엄마가 먼저 슬그머니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다. 드라마 얘기, 일하다 있었던 일, 가족문제, 요즘 관심 있는 것에 대한 생각들 같은 소소한 수다의 시작점은 늘 엄마였다. 종종 내 일이 바쁠 때는 귀찮다고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족 중 가장 많은 대화를 하고 많이 싸우기도 하며 그렇게 내내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이전에 나는 나의 삶을 사랑했다. 대단하고 잘난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나의 시간 안에서 취미를 즐기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의 세상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즐거웠다. 세상엔 즐겁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고 나는 내가 그러한 것들로부터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를 좋아했다. 세상 그 누가 뭐래도 내가 나를 제일 사랑해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가치관이 이리 짧은 시간 안에 바뀔 수 있게 될지 몰랐다. 그날 이후로 내 삶의 가장 우선순위는 엄마가 차지했다. 좋은 것을 먹어도 예쁜 것을 보아도 엄마를 생각하게 될 줄 몰랐다. 날이 좋은 날에는 엄마랑 산책 가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고 비가 오는 날엔 컨디션이 안 좋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게 될 줄 몰랐다. 예전에 엄마랑 갔던 장소에 가면 엄마가 그 자리에 서있는 모습이 겹쳐 보이게 될지 몰랐다.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이리도 엄마를 생각하는 걸 보면 난 참 엄마를 사랑하고 있었나 보다.


요즘따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 가장 흔한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진 보석은 아무것도 없지만)그 어떤 보석보다도 살랑이는 나뭇잎 사이 반짝이는 햇살이 가장 아름답다. 해 질 녘 세상이 황금빛으로 변하는 시간은 그 어떤 황금으로도 살 수 없다. 엄마와 소소하게 잡담하며 과일을 깎아먹던 어느 오후의 시간들은 내가 그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지금 남아있는 시간이라도 늘 소중히 대해야지.


돌이켜보면 나는 늘 행복이란 신기루를 찾아 집 밖을 나섰던 것 같다. 물론 그로 인해 기뻤고 즐거웠고 신나는 시간을 보내긴 했다. 하지만 가장 따뜻한 행복은 늘 집에 있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뚝딱뚝딱 요리를 해서 맛있게 먹고 집을 정갈하게 정돈해 쾌적하게 만들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가도 때로는 함께 모여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깔깔 웃는 것. 세상엔 이보다 자극적이고 짜릿한 기쁨이 많지만, 결국 가장 따뜻하고 평화로운 행복은 제일 가까이 있었다.


아빠가 몇 해 전부터 부쩍 가족여행을 자주 가자고 하셨다. 일 년에 두어 번 바닷가를 위주로 여행을 하곤 했다. 어릴 때는 집안 형편도 좋지 못하고 둘째 동생 몸도 불편해 가족여행을 거의 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근래 몇 년간 다녀오면서 가족사진이 꽤 많이 모였다. 그때 행복해하던 엄마 모습을 좀 찍어두길 잘했다. 사실 아직 제대로 보진 못하겠다. 한두 장만 봐도 눈물이 고여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래도 그렇게 찍어두었던 게, 아주 나중에라도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게 참 다행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