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by swimmming



동지였다.

엄마가 저녁에 팥죽을 할 테니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오라고 급히 현관을 나서는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그날따라 또 뭐가 그리 늦었는지 아침도 안 먹고 나서서 엄마가 속상해하며 뱉은 소리였다. 알았다고 대충 말한 뒤 엄마도 꼭 병원에 다녀오라고 당부하고 문이 쾅 닫혔다. 그렇게 어느 추운 겨울 아침이 시작됐다.


회사로 전화가 온건 열 시쯤. 웬만한 일로 내게 전화하지 않는 아빠 이름이 폰에 뜨자 무언가 철렁했다. 불길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고, 철렁하던 마음이 이내 곤두박질쳤다. 엄마가 또 쓰러졌고 병원에 와 있다고 했다. 이번엔 예전같이 금방 의식이 돌아오지 못했나 보다. 회사 사람들에게 급히 양해를 구하고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향했다. 아빠의 얼굴은 굳어있었고 곧 막내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병원에 도착했다.


아침에 아빠랑 엄마가 차 타고 출근하는 길에 갑자기 엄마가 쓰러졌다. 조수석에 앉아 화장을 하다 갑자기 아- 이상하다 라는 말을 남긴 채 의식을 잃었고 아빠는 그 길로 병원을 향했다. 하지만 출근시간, 비교적 병원이 가까이 있다 해도 길은 쉽사리 뚫리지 않았고 신호에 걸릴 때마다 오른손으로 엄마 가슴을 퍽퍽 치며 힘겹게 나아갔다. 병원의 출구와 입구도 구분이 안 가는 상황이라 급히 아무 데나 차를 대고 심정지 환자요!! 하고 소리치자마자 의료진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엄마를 데려갔다고 했다.


심장이 뛰지 않았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맥박 그래프가 일직선이 되는 걸 보고 아빠도 넋이 나가 옆에서 간호사가 언제 쓰러진 건지 윽박질러도 아무 소리가 안들렸댔다. 간호사가 아빠를 붙잡고 흔들어 겨우 대답하고 엄마는 급히 수술실에 들어갔다. 의사들이 황급히 뛰어다니고 간호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누구 하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지만 긴박한 상황이 주는 긴장감에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면서 나도 모르게 아 그러게 내가 그때 수술하자고 했는데..!라는 말이 먼저 입에서 튀어나왔다. 엄마는 3일 전에도 쓰러졌었다. 그 사이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결론만 말하면 엄마와 아빠가 나중을 기약하며 수술을 연기했고, 그 사이 시한폭탄이 터진 거였다. 하지만 말을 꺼내자마자 아빠가 죄인 같은 표정을 짓는 걸 보고선 다시 그 얘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누군들 앞날을 알았을까.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도 할 수 있는 일은 수술실 문틈 얇은 그 사이에서 의료진들의 다급한 행동들을 얼핏 보는 것뿐이었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가나 싶을 때 오가는 간호사 중 한 분을 붙잡고 언제쯤 퇴원할 수 있을까요?라는 성급한 질문을 했다. 그때 그분은 아주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퇴원이요? 그리고 멍해진 우리들을 슥 보더니 글쎄요.. 하고 자기 할 일을 하러 가버렸다. 이후에야 그 미묘한 표정의 의미를 얼핏 알게 됐다. 그때까지 나는 너무 낙관적이었다.


기다리는 사이 엄마가 며칠 전 잠깐 응급실에 들렀던 다른 대학병원의 기록이 필요하대서 내가 다녀오기로 했다. 마음은 급한데 도착하고 보니 대기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한낮에 병원 올 일이 거의 없어서 세상에 이리 아픈 사람이 많은 줄 몰랐다. 번호표를 뽑고 보니 내 앞에 오십 명이 넘게 있는데 한 사람마다의 할 말이 어찌나 많은지 사람이 줄어들질 않고 창구직원은 아주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런 상황이 일상적인 듯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빡빡하게 몰린 사람들 사이에서 간신히 등을 기댈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대략 계산하자 두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내 차례에 닿을 듯싶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동안 뭐든 읽고 보던 습관이 있는데 그날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등을 기대고 있으니 우습게도 잠이 왔다. 그냥 이런 상황이 생생한 악몽 같았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엄마가 일어나서 밥 먹으라고 이불을 확 들어 올리며 깨울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투덜거리며 씻고 나서 밥 먹는 동안 이런 꿈을 꿨어- 진짜 생생 하드라 하고 꿈꾼 썰을 풀겠지.


다시 눈을 떴을 때 여전히 바글바글한 대학병원 대기실이 보였다. 꿈이 아니었다. 잠깐 아빠와 통화하며 상황을 설명하고 마지막에 아빠가 점심 챙겨 먹고 기다리라 했다. 맞다, 나 아침도 안 먹었지. 시간을 보니 점심때가 훌쩍 지나있었다. 병원 식당을 찾아들어가자 브레이크 타임 직전이었다. 밥맛은 없었지만 아무것도 안 먹고 있다가 내가 쓰러지면 더 곤란해지니 뭐라고 먹자 싶어 아무거나 시켰다. 텅 빈 식당에서 혼자 무언가를 떠먹었다. 주위가 좀 조용해지고 저 너머로 점심시간을 마감한 식당 아주머니들이 모여 수다 떠는소리가 얼핏 들렸다. 쿨럭대며 눈물이 쏟아졌다. 진짜 꿈이 아니구나. 그리곤 밥이 아니라 비현실적인 지금을 간신히 삼켰다.








수술이 다 끝나도 엄마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중환자실 면회시간뿐이었다. 저녁 7시부터 30분가량, 한 사람씩 돌아가며 방문 명부를 작성하고 손을 씻고 보호복을 걸치고나서야 잠깐씩 볼 수 있었다. 막내는 둘째 동생을 챙겨주러 먼저 집에 들어갔고 아빠와 나만 남았다. 잠깐 본 엄마는 아침에 본 사람과 너무도 다른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두꺼운 여러 가지 호스가 몸 곳곳에 박혀있어서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실험체같이 보였다. 몸에 있는 모든 옷은 진작 다 가위로 찢어버렸고 몸의 열을 낮추기 위해 얇고 흰 종이 같은 면으로 위를 가려놨다. 밤새 엄마와 있어도 모자라겠건만 면회시간이 끝나자 더 이상 볼 수도 없었다.


별수 없이 아빠와 난 엄마가 없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도 밥을 떠먹여야 할 환자가 있었다. 늦은 저녁을 어떻게 먹었는지는 기억도 안 나지만 더 이상 무슨 말도 할 수 없어 침묵만 흘렀다는 건 기억난다. 저녁에 죽 만드려고 담가 둔 팥은 충분히 불어있었는데,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저녁을 먹고 아빠가 각자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자고 했다. 방에 들어가 주섬주섬 준비를 하려는데 낯선 번호가 울렸다. 보호자는 바로 병원으로 와달라는 호출이었다. 아빠와 나는 부랴부랴 다시 집을 나서서 병원으로 갔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불안한 마음을 품고 도착하니 오늘 엄마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중환자실에서 엄마 상태에 대한 설명을 해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부정맥이 있었고, 불안하던 심장박동이 오늘 멈췄다. 옛날 같으면 이렇게 심장마비로 죽는 건데 병원 근처에 와서 심장이 완전히 멈췄고 가망이 있어 보여 응급수술을 통해 임시로 심장박동기를 달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심폐소생술을 하다 폐가 찔렸고 지금은 심장보다 폐가 더 위험한 상태라고 했다. 엄마의 몸에 연결된 커다란 관은 에크모라는 기계인데, 심장과 폐의 기능을 임시로 대체하는 역할을 했다. 일단 오래 쓰는 건 안 좋지만 상태를 보고 천천히 조치를 취하겠다는 얘기를 내내 덤덤히 말했다. 지금은 체온이 높아서 임시 박동기를 달았지만 이후에는 제대로 수술해야 될 거라며 몇 가지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예후에 대해 조심스럽게 묻자 매뉴얼처럼 2주 이내 눈을 안 뜨면 힘들고 한 달, 삼 개월, 육 개월... 가면 갈수록 힘들다고 어려운 얘기 또한 조곤조곤, 다소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그분에게도 힘겨운 하루였겠지. 나가는 길에 거듭거듭 잘 부탁드린다는 얘기를 하고선 다시 중환자실을 나왔다.


병원은 번화가 옆에 있었고 집으로 가는 길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반짝이며 연말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겨울인데도 따스해 보였으나 히터를 틀어둔 차 안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누워있던 엄마의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엄마를 병원에 두고 온 밤이 길 것 같았다.


동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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