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울 일이 그다지 없었다. 무언가에 쉽사리 감동받거나 감상에 젖는 법이 잘 없는 딸이었다. 도리어 어느 때는 굳이 슬픈 영화를 찾아보고 눈물에 새싹처럼 솟아오른 감정을 박박 긁어 애쓴 슬픔 한 방울 정도 찔끔 흘리는 편이었다. 그러던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심지어 아무런 생각도 안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밤 택시 안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침착하게 아저씨 저기서 우회전해주세요 하게 된 건 순전히 엄마 때문이다.
그 끝을 기약할 수도 없고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한 시간의 레이스에 들어섰다는 인식이 와닿을 때 온갖 감정이 휘몰아친다. 불안하고 서럽고 화나고 안쓰럽고 체념하고 뭔가 속에서 비통한 감정이 버무려져 내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만 같다. 고통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한동안은 스치는 말끝에도 눈물이 주렁주렁 고여 스스로 당황스러울 정도인가 하면 또 어느 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매일매일 닥친일에 몰두하며 눈앞에 있는 상황에만 집중한다.
처음엔 스스로 처음 발견하는 낯선 모습에 놀랐지만 몇 번의 주기를 거치면서 파도 한가운데 있듯이 자연스레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울컥할 때는 목 언저리 어딘가에 영원히 식지 않을 것 같은 뜨끈하고 뻐근한 먹먹함이 온몸을 경직시키고 숨조차 들이마시기 힘들지만 잠잠할 때는 그때만의 평화에 감사하고 웃을 일에 환히 웃으며 살아낸다. 어느 날 또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시기가 되면 종기를 짜듯 실컷 눈물을 짜내고 돌아서서 다시 할 일을 한다.
혼자서 밤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내가 끝내야만 하는 일을 꾸역꾸역 처리하던 밤이었다. 며칠 동안 지속되던 야근에 심신은 지쳐있었고 딸깍 대는 키보드와 마우스 소리에 귀가 건조해져 아무 음악 앱의 재생 버튼을 누르고 하던 일을 다시 했다. 어느 땐가 자이언티의 눈 이 시작됐다.
눈이 올까요 우리 자는 동안에 눈이 올까요 그대 감은 눈 위에 눈이 올까요 아침 커튼을 열면 눈이 올까요
첫눈이 언제 즈음 올는지 세상이 몽글몽글한 기대감을 가질만한 온도가 되면 늘 즐겨 듣던 노래였는데 그날따라 내 귀엔 눈이 기적으로 들렸다.
기적이 올까요 우리 자는 동안에
기적이 올까요 그대 감은 눈 위에
기적이 올까요 아침 커튼을 열면 기적이 올까요
마침 지나가는 노래 한가락에도 마음이 시린 시기였나 보다. 갑자기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눈물이 터지며 엉엉 울었다. 일 년 정도 지나면 모든 것이 좋아지리라 한 해 동안 막연히 믿어왔던 것이 조금씩 부서져 가더니 와르르 무너졌다. 엄마의 상태를 보아하니 일 년으론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고난한 길을 묵묵히 걸어 언덕에 다다랐는데 그 너머의 광활한 사막을 본 기분이었다. 기적은 없었다. 간절히 바랬지만 아주 얇은 노력을 한 겹 한 겹 쌓아 올리는 것 이외의 눈부신 기적은 잔인하리만치 없었다.
얼룩져 수북하게 쌓인 휴지를 회사 쓰레기통 어딘가 깊이 쑤셔 박고 모두가 잠든 밤 집에 그림자처럼 들어왔다. 방에는 작은 택배 상자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그리운 친구에게서 온 이른 생일선물이었다. 아까까지 울었지만 선물을 보고 배시시 나오는 웃음은 참을 수 없었다. 상자 안에는 유영하는 눈발 사이 금빛 에펠탑이 빛나는 스노볼이 있었다. 눈이 부드럽고 우아하게 춤추며 가라앉았다. 그날의 노래 눈이 기적처럼 도착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