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그리 다 애쁠수가 있는지
엉성하게 머리를 묶고 퍼석퍼석한 민낯임에도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엄마는 애쁘다 라고 해준다. 심지어 멀리서 바삐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도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뭔 얘길 하려나 팔랑팔랑 다가가서 왜에? 하고 물으면 애쁘서 그래 라고 한다. 그럼 나는 이내 내가 누구 닮아서 예쁘지? 묻고 엄마는 꼭 내 닮아서 애쁘지! 라고 답한다.
비단 나에게만 그러는 건 아니다. 병원에 있을 때도 오가는 간호사들에게 애쁘다, 돌봐주시는 이모님에게도 애쁘다, 오가는 사람들에게도 해맑게 웃으며 애쁘다고 순수하게 감탄한다. 아이처럼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엄마는 병실에서 인기가 많았다. 병원을 옮기고 며칠을 오가는 동안 하루가 다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엄마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횟수가 많아졌다. 엄마는 그때마다 늘 처음처럼 그들을 반겼다. 돌아서면 그 사람이 누군지 말갛게 잊어버릴지언정 엄마가 사람을 대하는 하얀 표정은 늘 그대로였다.
이전부터 엄마는 뜬금없이 꼬리를 물며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저 꽃이 참 예쁘지 않니, 봄이 되면 싱그럽게 풀이 올라오고 향기 나는 꽃이 피고 거기서 열린 열매의 과즙이 이렇게 달다니 참 아름답지 않니,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정말 놀랄 만큼 아름다운 거 같애. 삶은 얼룩져 있어도 엄마가 보는 세상은 아름다웠다. 남들 다 가본다는 좋은 곳에 가고, 한 번쯤은 맛본다는 맛있는 것을 먹을 때가 아니라 아주 당연해서 아무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을 보고 때때로 감상에 젖고는 했다.
나는 돌아서면 까먹어. 그래서 서운한 것도 힘들었던 것도 돌아서면 잘 기억이 안 나. 어느 날 몇십 년 지난 오랜 기억을 보따리 장사처럼 줄줄 풀어놓으며 옛날에 힘들었던 얘기, 서러웠던 얘기를 늘어놓고 있는 내 말을 듣고 있다 엄마가 그랬다. 힘겨운 나날이 엄마 다리를 붙잡고 질질 끌어도 그녀는 개의치 않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그랬던 엄마가 요즘에는 한걸음 떼는 것도 주춤거린다. 어딘가 고장 난 인형처럼 버벅버벅 거리며 한걸음을 겨우 뗀다. 한걸음만 더!라고 외치면 엄마는 통상적으로 여겨지는 한 걸음의 반에서 반 정도를 힘겹게 내딛는다. 병원에서 나올 즈음에는 아빠랑 곧잘 산책도 다니고 집 근처도 돌아다녔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걷는걸 힘겨워한다. 걱정되어 건너 건너 물어보니 엄마 같은 케이스는 뇌손상도 있고 본인이 스스로 움직이려는 의지가 없어서 근육이 점점 빠질 수밖에 없단다. 어느 날은 250미터가량의 거리를 산책하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돌아서면 까먹는 건 더해졌지만 더 이상 성큼성큼 걷지는 못했다.
모두가 힘겨운 산책을 하고 돌아와서 엄마는 드러누웠다. 그런 엄마가 걱정되어 빤히 쳐다보다 문득 엄마가 눈을 떴다. 잠깐을 바라보더니 이내 '애쁘다' '고마워'라고 한다. 뭐가 고마워? 물어보면 그냥 다아 고맙댄다. 엄마는 꼭 애쁘다 라고 했다. 혀가 불편해 제대로 발음도 못하면서 입에는 그렇게 예쁜 말만 달고 다니는 걸 보니 어딘가가 꼭 쥐어짜지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누구나 제 자식은 이뻐 보이니 하는 소리로 들었지만 이제는 엄마가 그냥 세상을 애쁘게 바라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는 소리라는 걸 안다. 삶에 대한 기억은 사라져도 삶을 대하던 태도는 남아있다. 그래서 아 이 사람이 엄마가 맞구나 하고 더듬더듬 알아볼 수 있는 것 같다.
종종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찌 보이려나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