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선생님 이전에 있던 선생님 마지막 근무일에~ 그 선생님 말로는 선생님 그날 와서 인수인계받기로 했는데 안 오고 따로 연락도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옆에 있던 부장 선생님은 ‘바쁘시겠지’ 말하시고 넘어갔어요~
네???
처음 듣는 말이다. 나는 한 달 전에 와서 그만두시는 선생님, B에게 인수인계를 받았다. 인수인계는 짧게 끝났다. 쩔쩔매면서 일하게 될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래서 다음에 다시 와서 인수인계받고 싶다고 말했지만 B는 그날 더 알려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내가 다시 오는 게 귀찮으신 걸로 이해했고 물어볼 수 있는 것을 다 물었다.
내 기억은 그게 전부다. 어째서인지 B의 기억은 자신의 마지막 근무일에 내가 다시 와서 인수인계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B의 마지막 근무일이 언젠지도 몰랐고 우리는 다시 만날 일정에 대한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사정을 A에게 얘기했고 A는 ‘그랬구나’ 했다.
A와의 대화는 끝났지만 내 안에서 감정의 파동은 시작됐다.
‘아니, 어째서 B선생님은 그렇게 기억하고 계신 거지?
다른 선생님들에게 내 첫 이미지가 약속도 안 지키고 못 온다는 연락도 안 하는 무책임한 사람으로 비쳤잖아!‘
같은 부서의 선생님들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나 그런 사람 아니라고 해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실 내가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 다른 선생님들이 어떤 인상을 잡고 나를 대한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내가 약속했는데 안 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아마 그들은 ‘그렇구나’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 마음의 파동은 바로 잠잠해지지 않았다. 그것과 상관 없이 내 앞에 쌓인 행정일들을 열심히 쳐냈다.
긴 하루를 보내고 침대에 누웠다. 고요 속에서 오후의 물결이 다시 수면 위로 번졌다.
‘아직도 있네. 별 문제 아니라고 했잖아’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감정은 머리로 이해하기 이전에 먼저 느껴주어야 한다’고 누군가에게 알려주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온몸에 힘을 빼고 가슴의 물결을 온전히 느껴보았다. 가슴에 작은 소용돌이 같은 에너지가 돌았다. 그 에너지를 따라 계속 들어갔다. 집중 끝에 파동의 핵이 가슴으로 만나 졌다.
‘억울했구나..’
그 순간 수챗구멍이 물 빠지듯이 감정이 흘러갔다. 말 그대로 마음에 남는 게 없어졌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졌다.
내가 그날 내 감정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 친구와의 수다거리로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찔끔 흘러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친구가 내 맘처럼 들어주지 않아서 도리어 찝찝함이 남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제 만날 일 없는 B선생님에 대한 각종 추측을 펼치면서 원망을 키울 수도 있다. 자기 공감이 얼마나 마음을 가볍게 하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때 내 억울함의 정체는 지금 이 순간의 것이 아니였다. 나에게 실질적으로 돌아온 피해가 없었고 그 후로도 같은 부서 선생님들과 잘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느껴야 했던 이유는 그래야 흘러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영역 밖의 일로 감정이 상할 때, 최선은 그 감정을 흘러 보내는 것이다. 타박상으로 죽은 피를 뽑아내듯 제때 흘러 보내서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나 감정을 흘러 보낸다는 것이 자칫 무시로 오해될 수 있다. 머리에서 감정에게 일어날 필요 없다고 설득하기, 조금일지라도 어쨌든 상한 감정인데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등, 감정을 안 느끼려고 하는 모든 행위가 무시다.
단 한 번 제대로 만나면 된다. 가슴의 느낌, 그 자체로 온전히 만나 줄 때 한이 풀린 감정이 승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