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은 참지 않지.
지난주는 내내 연주가 있어 가족과 저녁을 먹는 날이 드물었다. 저녁을 안 먹는 대신에 밤 11시쯤 연주가 끝나고 집에 들어와 남편과 아이들이 자는 걸 확인하고 맥주와 더불어 간헐적 폭식을 하였더니, 분명히 나는 끼니도 못 챙겨 가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데, 다음 날 일어나면 얼굴도 몸도 마음도 부어있는 기이한 나날의 연속이었다(나만 모르는 내가 부은 이유). 예술가라는 직업이 여러모로 건강한 직업은 아닌 것 같다.
오케스트라 뮤지션으로 살다 보면 스몰토크의 달인이 된다. 연주 때마다 연주 30분 전 스탠바이, 연주 중간의 25분 인터미션.. 이 시간에 이 유러피언들은 삼삼오오 모여 스콜토크를 시작하는데, 이들의 특기: 근황토크/너와 나의 연결고리를 찾아 삼만리, 한 오케스트라에서 일한 동료와는 몇 번 같이 연주를 하고 나면 이 친구의 옆집 아줌마의 정원 근황까지 다 알게 되니, 그리 친하지 않은 동료 사이에서 TMI 서로 너무 많은 걸 알게 될 때도 있다.
음악인들이 무대 뒤에서 음악 얘기를 할 거라는 상상을 하셨다면, 그 아름다운 상상을 깨기 죄송하지만, 1도 안 한다. 음악 얘기는 리허설 시에 충분히 하므로 보통은 무대 나가기 직전까지 동료들이랑 어제저녁을 어디서 먹었는데 그 집 맛집이더라, 나중에 꼭 가봐. 거기 어딘데, 좌표 좀 찍어줘.. 뭐 이런 얘기하다 go on stage 표시에 초록불이 들어오면 부리나케 무대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번의 1편이 생각했던 것보다 길어졌다. 그건 내가 6년 살았던 나라, 안 그래 보였겠지만 개인적으로 애정이 있는 나라(믿어주세효)독일에 대해 나도 모르게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독일 이민 장려글인지 기피글인지는 나도 모르겠으나 내가 살면서 느낀 솔직한 느낌을 전달하는 목적으로 써 내려갔다.
이번에는 프랑스.
프랑스에서는 살아보지를 않아서 그 나라에 살면 어떨지 나도 알 수는 없으나 오랜 시간 유럽에서 살며 알아온 프랑스인들의 특징을 생각하면 내 머릿속엔 오로지 한 가지 사건이 떠오르는데..
그것은 바로 프랑스 시민 혁명. 두둥!
각 지방의 영주들이 권력을 행사했던 지방 분권적 독일에 비해, 프랑스는 중앙집권적인 국가 밑줄 쫙.
2025년의 대한민국에서 제일 맛나고 좋은 건 서울, 강남에 몰려있듯이 유럽의 역사에서 파리의 위엄은 전 유럽에 떨쳐져 지금도 프랑스와 가까운 국경의 나라, 잘 나가는 도시의 중심부에는 카페 드 파리 하나쯤은 다 있다. 전에도 얘기하지 않았던가. 유럽인들의 추구미 그 가장 높은 곳에는 프랑스의 문화가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프랑스인과 한국인은 안 맞다. 프랑스인들의 눈에 한국인은 너무나 순한 양이라 매력이 없다. 적어도 첫인상은.
얘네들은 뭐가 그리 항상 불만이 많다. 제아무리 센 언니도 프랑스인과의 첫 만남에서는 기선 제압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프랑스인들은 우리가 느끼기에 태도가 거만하고, 불만이 있으면 절대로 마음속으로 간직하지 않고 바로바로 표출하며, 감정에 충실하다.
독일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배 나오고 며칠 샤워 안 한, 샌들에 흰 양말 신은 불만이 디폴트인 김구라라면, 프랑스인은 똑같이 며칠 샤워 안 해도 그걸 본인만의 멋으로 승화시키는, 불평불만 쩔지만 그게 이유 있는 불평이며, 그와 반대로 아름다움과 행복함에 대해서도 그만큼 열렬히 반응하는 머리 기름진 이서진쯤?
나와 2년가량 같은 집에서 매일 아침마다 독일빵이 맛없다며 투덜거리던 프랑스인 스테파니 씨에 따르면,
이들에게 지성인이란 비판적인 사고를 하고 그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라 한다. complaining=Intelligence로 학교에서도 선생님이 어떤 주제를 던져주며 그에 대한 비판을 유도하는데, 그렇게 보고 듣고 읽는 모든 것에 비판적으로 접근하여 더 나은 상황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독일인들이 히틀러에게 보였던 그런 맹목적인 충성이 프랑스인들이면 어림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유학 중 경험한 프랑스인들은 도도하고 G들이 제일 잘난 줄 알지만, 사실 또 잘나서 딱히 뭐라 할 수 없는 그런 아이들이었다. 나의 은사님이신 이스라엘인 교수가 현악 앙상블 시간에 막무가내로 하는 요구에, 등굣길에 엄마가 뒤통수에다 대고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라 소리쳤을 우리 프랑스 동지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고, 슨상님은 하늘이니께 "선생님 말씀 잘 듣고!"를 듣고 자란 한국인들이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각오로 임하노라면 (네, 쌤!) 어딘가 무시하는 분위기를 풍겼었다.
그 뒤로 알게 된 사실: 프랑스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대세를 따라가는 사람, 자신의 뚜렷한 생각이 없는 사람을 조롱할 때 양(mouton)이라 부르는데, 난 이 불쌍한 어린양을 생각하면 왜 어린 시절 대한민국의 나와 어딘가 닮아있는 것 같은지.
이 양이라 함은,
조용히 대세를 따르는 자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는 묻어가려는 자, 혹은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 자
비판적인 사고로 매사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다수의 의견을 수용하기만 하는 자
어, 난데?!
나는 무통(mouton)이었단 말인가?!
선생님 말씀에 토 달지 않고 얌전히 순응하는 게 모범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나의 세상이 뒤집혔다.
프랑스인들의 무통철학을 들은 후, 무엇인가에 순응하기만 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러나 사람 쉬이 변하지 않는다고, 20여 년을 무통으로 살아온 내가 비판적인 사고를 해봤자 대다수의 경우에는 입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되삼켰으며(허공에 대고 외쳐본다!) 표출이 된다 한들 토론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나란 사람은 너 죽고 나 죽자, 다 덤벼 뭔가 쌈닭이 되어 작은 쟁점도 일을 크게 만들기 일쑤였다.
왜, 그 중간이 없는 사람. 그게 나다.
나의 측근들은 귀에 딱지가 앉게 많이 들었을 얘기인데, 그래서 꽤 오랫동안 나의 인생 목표 중 하나가:
상.대.방.과.상.반.되.는.의.견.을.서.로.얼.굴.붉.히.지.않.고.쌍.방.이.기.분.나.쁘.지.않.게.잘.전.달.하.기.
였다(격양되기 금지. 언성 높이기 금지. 울기 금지!).
이게 뭐가 어려워?라고 생각하는 분, 리스펙.
부당한 취급을 당했을 때 나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고 눈물만 줄줄 흘리거나 의견을 피력할라치면 너무 감정적이 되어 상대를 물어뜯으려 하던 무통에게는 연습이 필요했다.
사실, 한국인도 알고 보면 비판적인 사고를 할 줄 안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순응할 뿐이지.
현악 앙상블 시간으로 돌아가서, 나의 한국인 동료 1 인은 교수의 무리한 요구 앞에서는 찍소리도 안 했지만 우리끼리 있을 때면
"누나, 나쵸 왜 저래요. 미친 거 아녜요?"
여기서 나쵸란 나쵸칩스로 교수님의 성함과 비슷해 우리끼리 정한 그의 별명. 코드명 나쵸.
친한 사람들끼리 있을 때는 교수님 인권 위원회에서 명예훼손으로 내용 증명 날렸을 만한 내용의 비판과 조롱이 난무했다.
나의 한국동료들은 이런 속내를 외국인들과의 관계에서는 어느 정도 친해진 다음에 드러냈기에 한국인과 프랑스인의 에너지 레벨이 맞으려면 몇 년은 걸렸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서로가 이해하는 데에 시간은 걸리지만, 한국인이 얌전한 무통이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은 프랑스인들은 우리를 좋아하게 되어있다.
왜냐, 우린 늬들보다 더하다! 이것들아!
프랑스에 유학 혹은 이민 가는 게 잘 맞을 유형의 사람
미식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
죽일 듯이 달려들어 반박하다 1초 후 돌변, 웃으며 친한척하는 사람이 이상형인 싸이코.
에르메스 가방 사고 싶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