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내고 있는 중입니다.
내 삶이 너무 만족스러워 현재에서 뭐 하나라도 바뀔까 두려운 사람 혹시 본 적 있어? 나라의 정책들도 썩 마음에 들고 나의 라이프 스타일은 물론, 워라밸 균형도 딱 맞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어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제발 이대로만 계속돼라.
하는 사람 말이야.
난 본 적 있는데? 오늘도 봤는데? 되게 많이.
원래 무언가의 정점을 찍은 이들은 그걸 지켜내려고 노력한다 했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는가는 우리가 조종할 수 없는 신의 영역, 혹은 부모의 생물학적 영역이라 만약 내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나의 삶이 달라졌을까? 는 사실 의미 없는 상상이다. 하지만, 내가 태어난 대륙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 삶의 터전이 있는 나로서는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스위스인들의 삶이 참 부러운 인생임에는 분명하다. (우리 오마니 말을 인용하면, 지 복 지가 타고난 거지) 때때로, 다시 태어나면 스위스인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새해가 되어 나의 측근 중 한 명인 한국언니와의 점심시간.
이 언니는 내가 스위스에 와서 처음 사귄 한국인 친구로 유나를 임신했을 때 처음 만나 이제 유나가 11세가 되었으니, 벌써 11년 넘게 곁에서 좋은 일, 힘든 일 함께하며 때 되면 파리로, 밀라노로 소소하지만 한 방이 있는 쇼핑으로 세계 경제에 이바지하기도, 루체른 지역의 김치 아주미에게서 김치를 주문하여(아주미 충성!) 나눠먹기도 하는 가까운 지인이다.
성인이 되어 외국에 나와 살기 시작한 사람들이 고향친구와 수다를 떨 때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주제가 있노라니, 한국이 아닌 그곳에 살면서 느끼는 불편함, 고충이다. 우리의 이야기 중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주제이기도 했는데, 어랏?!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이 언니와 하는 이야기의 방향이 좀 바뀌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오로지 우리 힘으로 꾸려가야 하는 가사(자급자족, 가내수공업의 나라 스위스. 감자탕까지 직접 끓여봤음), 비싼 어린이집, 그리고 한국인 기준의 유흥시설(우리가 좋아할 만한 브랜드가 꽉 차게 들어와 있는 핫한 쇼핑몰, 코인 노래방...?) 이 없는데서 오는 심심함 등등으로 힘들어하기도 했던 우리이지만, 스위스 생활 둘이 합쳐 25년이 넘어가는 지금, 이곳에서의 생활이 꽤 만족스럽고 자꾸 나의 집 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익숙함의 차이도 있겠지만 살수록 이들의 삶을 대하는 방식이 납득이 가기 때문이다. 스위스에 스며들었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그래서, 뭐가 그렇게 좋길래 스위스인들이 꼭 지켜나가고 싶은 것일까?
사방팔방에서 외국인들이 살기 좋다는 소문 듣고 들어오고, 유럽 연합에서 너네들, 정말 늬들끼리만 잘 먹고 잘 살자는 거냐?! 며 압박이 들어오고,
참고로: 스위스는 유럽 연합 EU의 회원국이 아니며(우린 독자노선 가련다)
유럽연합(EU)은 스위스의 독자적인 영세중립국 지위와 관련하여 안보 및 방위 정책, 경제적 이슈에서 더욱 긴밀한 협력을 요구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출처: Wikipedia).
이렇다 합니다.
또한 문화가 상이한 이민자들이 스위스 내 질서를 흐리는(스위스인 입장임) 이 와중에 스위스인들이 지켜나가고자 하는 삶의 자세는 무엇인가를 추려보려 한다.
스위스인은 정확하다(깐깐하다).
"이 열차는 곧 종착역인 루체른역에 도착하겠습니다. SBB를 이용해 주신 승객 여러분께 감사말씀 드리며, 도착이 4분 지연된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 말씀드립니다. "
옆에 앉아있는 60대 정도로 보이는 스위스인 남성이 허공에 대고 외친다(어, 이거 내가 잘하는 건데?!)
"Aiaiai, (아이고.. 정도의 추임새)...."
그다음에 한 말은 짙은 사투리로 인해 못 알아들었지만, 남성이 기차의 연착에 짜증이 난 것은 느낄 수 있다.
스위스인들의 대중교통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산이 많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첩첩산골까지 웬만한 곳은 대중교통으로 이동이 가능하고, 또 시설이 잘 되어있기에 많은 이들이 대중교통을 선호한다. 빽빽한 시간표에 3분 만에 연결되는 버스를 타야 하는 경우, 4분 만에 다른 기차로 갈아타야 하는 경우가 모두 실현 가능한 것은 도착하는 승강장과 사람의 이동하는 속도까지 철저히 계산해 계획한 시간표, 또 그 빽빽한 시간표가 대부분의 경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켜지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기차가 4분이나 (!) 연착되는 경우, 보통 같으면 탈 수 있었을 30분마다 있는 집에 가는 버스를 놓치고 기차역에서 30분가량 때워야 한다는 소리니, 아저씨 화날 만하네.
들어봤을 텐데, 독일의 철학자 칸트로 인해 그런 이미지가 더욱더 굳어졌지만 국제사회에서 독일인들의 이미지는 정확하고 시간 엄수에 답답할 만큼 원리 원칙을 따르는, 차가 하나도 없는 건널목에서 남들은 다 빨간불에 지나가도 마지막까지 기다리고 있는 국민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독일인보다 한 수 위의 깐깐함을 지닌 이들이 있었으니, 이민 온 독일인들이 규칙을 엄수하지 않아 나라 안이 어수선하고 민심이 흉흉하다고 걱정하는 무리들이 있었으니, 바로 스위스인들이다.
스위스인들은 시간 약속 안 지키고(5분 늦음), 쓰레기 분리수거 아무렇게나 하고(신문지끼리 모으기만 하면 어쩌나! 각 딱딱 맞춰 100장씩 노끈으로 묶어야지!), 밤 10시 이후에도 시끄러운 독일인 이웃이 싫고,
그 우악스러운 독일인들은 알아듣기 힘든 스위스 독일어(분명 내 나라 말인데 못 알아듣겠음), 입은 웃고 있으나 눈은 싸늘한 스위스인들, 밤 10시 이후에 화장실 물 좀 내렸다고 은근히 눈치 주는 옆집 스위스 아짐마때문에
"나 돌아갈래!!"
상처 입고 내 나라로 돌아가기도 한다.
스위스인들은 유럽의 일본인들이다.
이들은 신뢰할 수 있고, 책임감이 강하며 제조업에 있어서는 디테일 쩌는 데다가(시계 만들어 놓은 것 좀 보소) 시민 의식도 높아 사회 전반의 규칙들이 잘 지켜진다. 매우.
그리고 혹 누군가(특히 외쿡인)이 그 사회 전반의 규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매우 싫어한다. 그런데 결코 앞에서 드러내지는 않는다. 조용히 신고를 할 뿐..
앞에서는 웃고 상냥하지만 상대방이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조용히 조치를 취한다. 내 손에 피를 묻히진 않겠소.
사례 1
친한 가족과 여름의 주말에 물놀이를 갔을 때이다.
무더운 날의 주말이 늘 그렇듯 야외 수영장 주위의 주차장은 이미 주차된 차량으로 포화 상태였고, 숲 속에 있는 수영장인 관계로 시내의 주차장은 몇 Km 떨어진 곳이었다.
제아무리 준법정신이 투철한 스위스인들이더라도 꼼수를 부리고 싶은 무더운 날이었다.
야외 주차장 옆 공동 주택의 손님용 주차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어머, 공교롭게도 비어있네?
할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저곳에 주차를 하고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라고 생각한 듯 우리 앞 차들이 줄줄이 그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어? 그런데 차들이 하나같이 주차를 하려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더니 어느 순간 포기하고 주차장을 나오는 것이 아닌가?
뭐지? 왜 나오는 거지?
앗싸. 그럼 우리 들어가서 주차하지 뭐. 땡큐.
주차장에 들어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던 어느 순간 그 이유를 알았다.
공동 주택의 1층 집 창문에 인자한 인상의 스위스인 할머니가 밖을 내다보고 있다. (어서 와, 신고당하고 싶으면)
인상은 인자해 보여도 외부인임이 분명한 차가 주차를 하는 순간, 이 할머니는 경찰에 신고할 확률 100%다.
삶에 있어서 100%의 확신이 드는 일이 참 드문데, 이 경우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저 할머니가 이미 전화기를 들고 서 있다고.
"짤 없다, 이긋들아!"
사례 2
학교의 강당 한편에 차곡차고 쌓아놓은 의자들. 벽에 위풍당당 빛을 뿜으며(이건 내 기분상) 붙어 있는 A4용지에는,
"의자를 15개씩 쌓으시오."
미션이 적혀 있고, 붙어있는 A4용지 흐뭇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쌓여 있는 의자들의 이 그림 마치,
김정은이 살 빠짐을 축하하는 북한 병정들의 열병식 칼각을 떠오르게 한다.
언젠가 앙상블 레슨을 마치고 급하게 기차를 타야 해서 뒷정리를 어수선하게, 의자를 15개씩 쌓았는지 뭔지 모르게 강당을 떠났던 적이 있는데, 다음 주에 가보니 책상 위에 못 보던 종이가 하나 붙어있었다.
강당을 떠나기 전에 체크사항
소등을 했는가
창문과 Storen을 닫았는가
어쩌구
저쩌구
의자를 15. 개. 씩. 쌓았는가
의 가장 끝 조항 옆에 체크가 하나 되어있다.
아놔...
어서 와, 정리의 나라 스위스에. 지켜보고 있다.
스위스인은 활동적이다.
유럽에 온 서울여자는 처음 10년 동안은 너무 심심했다. 일찍 닫고 주말에는 그마저도 열지 않는 상점들, 서울에 비해 턱없이 작은 중심가, 어디를 가도 거기가 거기인 쇼핑몰.. 등등 새로운 문물, 유행이 느린 유럽에서의 나의 20대는 학교 연습실 혹은 친구들과 모여서 밥을 먹거나 맥주를 마시는 게 전부인 일상이었다.
그랬었었는데 스위스에 와서 많이 달라졌다. 나 요즘에 느무 바쁘다.
여름에는 호수에서 수영해야 하고, 봄. 가을에는 등산 혹은 테니스, 겨울에는 스키 타러 이 산 저 산 기웃기웃..
계절이 지나가는 걸 나의 활동으로 실감하니 여름의 끝자락이 아쉬운 동시에 다음 계절의 활동에 신이 나기도 한다.
스위스 초딩들은 수학, 영어 학원은 안 다녀도(다닐래도 우리 동네는 없음, 참 다행임)
엄마, 아빠 등살에 스키수업, 수영 교실을 다니지 않은 아이를 찾기란 참 힘들다.
지금이야 적응했고 다 지나간 일이지만, 큰 애 어릴 때는 방학 때마다 아이 친구 엄마들이 수영 교실 신청했냐? 스키 수업은? 자꾸 뒤늦게 물어봐서,
응? 나 안 했는데?
뒤늦게 폭풍검색에 들어가지만, 이미 우리 아이 또래의 그룹 레슨은 다 찼음. 눈물을 머금고 거액을 주고 개인 레슨을 신청하거나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스타일로 귀 닫고 눈 닫고 스키 방학에 한국으로 도망가기도, 스트레스를 적잖게 받았다.
아놔, 이게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냐 하시는 분들!
남들은 다들 대치동 라이딩하면서 영어 유치원에 수학 학원 입시 뺑뺑이에 보내는데,
'나무아미타불' (본인은 천주교인입니다만)
나. 는 뚜.렷.한 신.념.이 있.으.니 남.의 시.선.에 휘. 둘. 리. 지 않.고 내 쪼.대.로 가.겠.다.
할 수 있는 분 얼마나 계신가요?!
나 이 사람, 이래 봬도 줏대 없는 사람입니다.
스위스인들은 이렇게 계절에 따라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활동은 포기 못하겠나 보다. 내가 해봤더니 좋았고, 그걸 자식에게도 대물림해 줘야 하겠다는 신념이 매우 두텁다.
무더운 여름에는 반짝이는 호수에 들어가서 수영할 생각에 반갑고, 우중충한 겨울은 해가 나는 산 위로 올라가 생머리를 휘날리며(이건 내 머릿속 로망) 스키를 타고 내려올 생각에 들뜬다.
사계절이 뚜렷하면 뭐 해. 그걸 즐길 줄 알아야지.
자연 속에서 그 계절을 만끽할 줄 아는 법을 나는 스위스인들에게서 배운다.
스위스인에게 삶의 질과 전통이 돈보다 중요하다.
하루 종일 입에 단내 나게 학생들 가르치고 퇴근 시간. 10분 남은 기차 시간에 맞춰 빠른 걸음으로 기차역을 향해 앞만 보고 직진. 기차 출발 1분 전에 기차를 타고 나이쓰, 한적한 자리를 찾아 둘러보는데, 저 쪽에서 동료 한 명이 손을 반갑게 흔든다.
내 안의 내향형 인간이 말한다.
아놔, 진심으로 입꾹닫 조용히 집에 가고 싶다.
그러나 이미 동료는 자기 옆 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는 시늉을 한다.
동료야, 눈치 챙겨...
피곤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갔다.
"안녕, 너도 퇴근하니? 나 아직 보내야 할 이메일이 몇 개 있어. 일단 좀 보낼게."
동료는 나를 만난 게 진심으로 반가운 눈치다. 그게 아니면 반가운 연기를 너무나도 실감 나게 해서 그녀도 피곤할 텐데 혼자 조용히 퇴근하는 것이 틀어진 것에 대한 실망의 티가 1도 안나는 인생의 명연기를 펼치고 있을지도. 스위스인들은 생각하는 게 얼굴에 잘 나타나지 않으니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다.
그녀는 20년 가까이 루체른 인근의 작은 도시의 한 집, 단독 주택에 살고 있는데 최근 어떤 투자회사에서 그 거리의 모든 집들을 사들이고 있단다. 이유는 주택들을 허물고 몇 개의 저층 빌라를 지어 매매하기 위함이라 한다.
"그래서 우리 한테도 연락이 왔는데 어림없지. 내가 절대로 팔 생각 없다고 했어."
활달한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기 가득하지만, 그만큼 의지도 결연해 보인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남의 주거 환경에 그다지 관심도 없어서 건성으로(하지만 내 얼굴에는 건성으로 듣는다는 티는 1도 안 났을 것이다. 나도 내 진심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건 자신 있다!) 듣고 있는데 그녀가 한 마디 더 덧붙인다.
" 내 친구 말에 의하면 내가 부자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거라는데, 뭐 상관없어. 내가 잘 살았던 집이고 피아노 연습도 밤늦게까지 할 수 있고, 내 손길이 들어간 정원을 포기할 수 없지."
비스듬히 눕다시피 퍼져 있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잠깐만,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였다며? 그 기회를 잡고 나서 피아노 연습도 할 수 있고 내 손길이 들어간 정원을 꾸미는 건 안될까?"
서울 여자 동공 흔들린다.
자세한 얘기는 모르지만 무언가 동료에게 큰 이득이 되도록 투자자가 딜을 제시한 모양이다. 내가 알기로는 정년을 몇 년 남긴 나의 60대 동료는 남편은 있지만 아이는 없다. 그 말인즉슨, 재산을 물려줄 사람이 없다는 것. 그 말인즉슨, 한몫 잡아서 은퇴 후 남은 인생 스페인으로, 그리스로 놀러 다니며 그 돈 다 써도 된다는 것.
그런데 그 돈 불리는 굴러들어 온 투자의 기회를 거부한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내 라이프 스타일이 좋아. 집을 팔아서 자산을 불릴 생각은 없어.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집이고 돈이 막 되게 필요하지도 않아. 지금 삶을 유지하는 돈은 지금도 충분히 있어."
"아.. 그.. 그렇구나."
(뭐가 그렇구나야?! 그 집 팔아서 뷰 좋은 배산임수의 동네, 즉 상급지로 갈아타서 몇 년 후에 고점에 딱 팔아서 그 돈 투자은행에 넣어서 에르메스 가방 지르고 럭셔뤼하게 어?! ..................!)
.............................
난 이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늘어나는 순자산보다 내가 사는 집에 들어간 내 손길이, 매 해 피어나는 정원 배꽃의 역사가 더 중요한 것이다.
무언가 말할 수 없는 패배감이 들었다. 그녀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아, 저럴 수도 있구나.
내가 살아온 날들이 너무나 만족스러우면 저렇게 더 나은 삶을 향해 앞으로 돌진! 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또 내 주위의 한국인들을.
우리는 무엇을 위해 자신을 갈아가며 열심히,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더 좋은 것을 향하여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인생의 경주를 하는 것일까? 끝이 있기는 할까? 지금으로 충분하지 않나?
가진 자의 위엄, 이런 거구나.
스위스인들, 좀 부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