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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지만 깊은 맛

스위스 치즈 퐁듀를 아시나요?

by 스위스 아낙

한국에서 온 이들이 꼭 맛보려는 현지 음식, 치즈 퐁듀다. 1인당 못해도 4~5만 원은 주고 먹을 텐데, 그렇게 말려도 한 번은 먹어봐야 하지 않겠냐며, 굳이 사 먹고 나서는 말한다. 생각보다 별로라고. 가까운 이들에게는 차라리 우리 집에서 치즈 퐁듀를 대접하고는 한다.


루체른이나 체르마트, 인터라켄에서 파는 치즈 퐁듀는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들에 맞춤, 변형된 맛이라 그나마 대중적인 맛이다. 아펜젤 같은 곳에서 만든 치즈는 가끔 먹기 힘들 정도이다. 스위스 여행에 관한 브런치북도 언젠가는 연재하고 싶은데, 치즈 하나로도 책 한 권은 쓸 수 있을 것 같다. 스위스 사람들의 치즈 사랑과 치즈에 대한 자부심은 가히 우리나라의 김치 사랑과 비슷하다. 물론 김치만큼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재료가 다양한 것도, 영양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들의 치즈에 대한 사랑은 거의 준종교 수준이다. 오죽하면 출산 후 젖몸살을 앓는 산모에게 특정 치즈를 올리면 낫는다는 미신도 있다.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스위스의 가장 흔한 마트 Migros는 M의 개수로 마트의 크기를 가늠한다. M이 하나이면 동네 작은 슈퍼이고, MMM은 이마트 정도의 대형마트라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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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하나짜리 소형 마트의 치즈 매대 수준.


제목은 그럴싸하게 소박하지만 깊은 맛이라 썼는데, 솔직히 스위스 음식, 진짜 맛없다. 맛없기로 유명한 독일 음식을 능가할 만큼 맛없다. 그리고 짜다. 정말 짜다. 해산물을 거의 못 먹어서, 혹은 국이 없어서, 모든 음식을 짜게 먹어야 염분 섭취량이 충분한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다시 생각해 봐도 우리나라 음식은 정말 균형 잡힌 식단이다. 스위스 음식은 한국인에게 소박해도 너무 소박하다.


그리고 말린 고기와 소시지. 소고기고 돼지고기고 다 얇게 썰어 말리거나, 다져서 소시지를 만든다. 숙성의 정도, 허브 사용 유무, 원산지에 따라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역시 한국인 입맛엔 비리고 짜다. 하지만 말린 고기와 치즈만으로도 마트 매대가 가득 찬다. 사실 유럽 어디를 가나 빠지지 않는 식재료이지만, 스위스는 치즈와 말린 고기 코너가 대개 마트 중앙에 아주 크게 위치한다. 별생각 없이 지나치다가도, 한 번씩 말린 고기가 진열된 곳을 보면 메스껍다. 정육 코너도 있고, 말린 고기 코너도 있고, 소시지 코너도 따로 아주 크게 있기 때문에 마치 마트가 거대 도축장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소시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비엔나 소시지의 귀여운 비주얼이 아니라, 내장이 그대로 진열되어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마치 피순대를 마트에 줄줄이 걸어놓은 모습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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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스위스 음식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마케팅을 아주 잘했다는 점이다. 스위스 음식이라 할만한 것이 치즈 퐁듀 아니고서는 뢰슈티 뿐인데, 스위스 여행을 온 관광객이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꼭 먹어보고 간다. 뢰슈티는 그냥, 감자채전이다. 감자채전을 식용유 대신 버터에 부쳤을 뿐이다. 이것은 흡사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에 오면 꼭 먹어야 할 음식으로 김치와 감자채전을 꼽는 것과 비슷한데 상상이 안 간다. 우리에게 김치와 감자채전은 반찬 중 하나일 뿐, 요리라고 칭하지 않으니까. 하물며 치즈를 김치에 비교하는 것도 틀렸다. 김치는 주재료의 다양성이 아주 뛰어난 음식 중 하나이다. 배추김치, 깍두기, 열무김치, 물김치 등 재료의 변주가 화려하다. 주재료뿐만 아니라 부재료 또한 수십 가지이다. 치즈는, 주재료가 언제나 우유다. 끽해봤자 염소우유 정도의 변형이 있으려나.


그런데 이 소박한 음식들을 '깊은 맛'으로 잘 포장했다. 자연에서 온 원재료, 시간과 바람이 맛을 들이는 음식. 고추장, 된장, 간장 등 발효 식품이 '재료'의 기본값인 우리에게 스위스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은 사실 우습다. 스위스 음식에 대한 혹평이 심했나 싶지만, 해외에 오래 살면 살수록 견문이 넓어진다기보다 우리 것, 우리 사람에 대한 재조명을 하게 된다. 물론 필자의 한국음식에 대한 이해도나 선호도가 다른 나라의 음식에 대한 것보다 높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또는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한 영국, 고유의 음식이랄 것이 없는 미국과 싱가포르, 먹거리의 맛보다는 안전이 먼저 우려되는 중국에 살았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똑똑한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낸다고 하던데, 스위스의 식문화는 왜 발달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많이 드는 날이다. 우리나라는 땅이 척박하고 외침이 많아, 뿌리 식물과 나무껍질까지 요리법이 있다고들 하는데, 비슷하게 땅이 척박하고 주변 강대국들에게 치인 역사를 가진 스위스에서는 감자와 치즈만 먹고도 살아왔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내고, 더 나은 길을 찾아내는 사람들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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