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지나간 자리

Day 2 (2018.08.09. 목요일 흐린 새벽)

by 재생지

알람 없이도

눈이 떠진다.


극도의 조용함은

오히려

내 숨소리를 증폭시킨다.


새벽이 되자,

몸 안에서

미묘한 열감이 돌기 시작했다.


목 안은 타는 듯 건조했고,

혀끝에는

금속 맛이 남아 있었다.


‘빛이 움직이고 있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제 삼킨 그것이

지금

내 몸 어딘가를

비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변화가

가장 먼저

감각으로 도착한다는 사실처럼.


지금

내 몸과

내 손에 닿은 모든 것은

방사능 폐기물과 같다.


그 사실이

여전히

낯설게 다가온다.


물컵을 들어

한 모금 삼킨다.


냉기가

목을 타고 내려간다.


그 짧은 감각이

이 병실에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변화였다.


오후가 되고,

이제는

저요오드 식단을

더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순간,

이 시간을 기대하며

가져왔던

서랍 속의

컵라면과 과자를 꺼냈다.


두 주가 넘는

식단 조절의 시간.


아내가 그동안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주었지만,

단박에 그리운 건

라면이라니.


‘미안하지만... 그래도, 맛있겠다.’


뜨거운 물을 부으며

라면 향이 퍼진다.


그 향만으로도

세상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았다.


면을 한 젓가락

입에 넣는 순간,

입안 가득

퍼지는 짠맛.


그 짠맛이

이렇게까지

눈물겹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순식간에

컵라면 하나와

과자 한 봉지를

다 먹었다.


이토록 단순한 것이

이토록

큰 위로가 될 수도 있다니.


병실의 공기가

조금 달라진 듯했다.


고요는 여전했지만,

그 고요 속에서

조금은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졌다.


조용히

생각해 본다.


살아 있다는 건,

이렇게 고요히

내 안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빛이

내 안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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