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 입시를준비하면서 미대에 오기까지 놓치지 않았던 한 가지
요즘은 요가를 한다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미디어의 힘과 나날이 늘어나는 요가원 그리고 선생들의 수가 그것을 증명한다. 요가를 하는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미용이라 생각한다. 요가를 하면 교정이 되고 살이 빠지고 몸을 정돈시켜주고 예뻐지게 한다고 다들 많이 알고 있다. 틀린 말이 아니라 그것도 요가의 장점이자 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순히 그렇게만 접근한다면 요가를 오래도록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 뻣뻣하고 누구보다 절망적인 몸을 가졌던 내가 요가를 어떻게 지금까지 해오게 되었는지 짤막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꽤나 일찍부터 요가를 시작했다. 옛날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나는 친구들과 매일같이 만나서 그림을 그리는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나 그림을 그리고 중학생 때 태블릿으로 본격적으로 만화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오래 앉아있다 보니 점점 잘못된 자세로 앉아있게 되고 그것이 나의 몸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비뚤어지고 있는 나의 몸을 어머니께서 발견하시고 걱정스러워하셨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나의 몸은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어선 발이 180도 이상으로 벌어지고 골반이 뒤로 뒤집혔으며 허벅지가 과도하게 퉁퉁한 비정상적인 몸이 되었다. 아무리 발을 11자로 모아 걸어보려고 해도 계속 발이 벌어졌으며 하체가 상체를 제대로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에 허리가 자꾸 꺾이면서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 결국 어머니께선 나의 손을 이끌고 집 근처에 있는 요가원으로 향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은 그렇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요가원에 오게 되었다. 남들이 한창 공부에 매진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 나 혼자 이곳에 있어도 되는가란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그곳에서 뵌 요가 원장님께선 나의 몸을 보시고 살짝 멈칫하신 것 같았다. 나는 딱 보아도 나의 몸이 심각한 상태란 걸 직감했다. 그리고 원장님께선 내가 단체요가와 개인 피티를 병행했으면 좋겠다고 어머니께 의견을 전했다. 어머니는 빠른 결정을 내리셨고 1학년 당시엔 공부에만 매진했던 시기였기에 미술학원에 다니지 않아 요가원을 먼저 다니게 되었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요가원을 보내는 어머니의 결단이 너무 이해되지 않았지만 결국 이해하길 포기했다.
고등학생의 생활은 매우 단조롭다. 학교 아니면 학원이고 집은 그저 잠자러 가는 곳일 뿐이다. 그 속에서 요가원에서 요가를 하는 때가 지금 생각하면 가장 자유롭게 나를 마주할 수 있던 오아시스 같은 시간이었다. 내가 오롯이 나의 몸을 쓰고 나의 상태를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나의 몸인데도 제대로 나의 몸을 움직이거나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삐걱거리는 나의 골반과 팔, 다리 그리고 어깨 등등이 그동안 내가 얼마나 몸을 개판으로 다뤘는지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증거들이었다. 전굴 하는 자세를 할 때마다 다리의 뒷면들이 당기고 너무 아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몸을 차례차례로 바꿔나갔다. 요가 자세를 유지할 땐 고역이었지만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참 개운했다. 그리고 왠지 마음이 따뜻했다. 숨 막히던 고등학생 시절 나를 조금씩 바꿔나가고 숨통을 트이게 해 준 존재는 요가였다는 사실을 그 당시엔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 3월에 미술학원을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했으나 처음에 갔던 미술학원에서 학우들과 선생과의 인간관계에 지친 나는 다시 다른 미술학원을 수배했고 본격적인 미술 실기는 11월 말부터 시작했다. 미술실기 특성상 일어서서 3~4시간은 기본으로 그림을 그리며 본격적인 실기 시즌에 접어들면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허리도 제대로 피지 못한 채 계속 그림만 그린다. 그렇기에 미술대학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은 대부분 허리 통증을 안고 살아가며 뒤틀린 자세가 그러한 통증을 계속 악화시킨다. 그렇게 계속 악순환이 일어난다. 고등학교 2학년 말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미술학원에 적응하고 3학년 초부터 서울대 실기를 준비하는 기초소양 반에 들어간 나는 일어서서 계속 그림을 집중 있게 그리는 연습을 했다. 그 당시 같이 실기 준비하던 친구들은 다 그런 악순환 속에 있었지만 나는 그러한 통증에서 벗어난 지 오래였고 몸이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교정되고 있던 때였다. 또래들보다 꼿꼿이 허리 피고 앉아있었고 장시간 공부를 해도 몸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본격적인 미대 입시를 경험하면서 나는 요가의 진정한 힘을 몸으로 먼저 체득하던 거였다.
몸이 바르게 펴지고 교정이 되어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웠지만 가끔 나는 고된 고등학교 생활에 짓눌려 하염없이 눈물을 쏟을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요가원에서 눈을 감고 명상을 했으며 가끔 개인 피티 때 한 자세를 오래 유지하다 보면 마음속에서 울컥울컥 무언가 올라오는 걸 느낄 때도 있었다. 요가 원장님과 계속 나의 감정과 현재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며 나를 마주하는 작업을 고등학교 3학년 때 특히 많이 했다. 그 당시 나는 실기와 공부를 병행하느라 지쳐있었으며 단순히 몸이 받쳐준다고 힘든 상황이 호전되는 건 아니었기에 심적인 부담이 많았다. 하지만 3학년이었음에도 요가는 멈추지 않았다. 힘들수록 요가를 하면서 나의 심적인 부담을 완화하고 스트레스를 덜었다. 그리고 나를 스스로 다독여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자신감과 홀가분함을 얻고서 집으로 흥겹게 돌아갈 수 있었다. 요가는 수능 치기 직전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어느새 치열했던 미대 입시가 끝나고 나름 괜찮은 미대에 진학한 나는 그곳에서도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고 새로운 과제와 사람들에 허덕이고 있었다.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기에 집 근처에 있던 요가원은 전처럼 주기적으로 다닐 수 없었고 방학 때마다 다니게 되었다. 대학교 1학년 때 되어서야 겨우 나의 몸은 소위 일반인의 몸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교정이 되었다.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인해 망가진 나의 몸을 복구하는데 3년 남짓 걸린 것이다. 요가로 단련된 나의 몸은 아주 탄탄했으며 장시간 컴퓨터 앞에서 과제를 진행해도 끄떡없는 몸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학기 중엔 요가를 할 수 없었기에 조금씩 몸이 또 뒤틀리기 시작했고 그 과정이 심화될 즈음 종강을 하면서 다시 몸을 피러 요가원에 가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요가 원장님께선 웃으시면서 왜 이렇게 몸을 구겼냐고 타박하셨지만 나는 웃으며 요가 덕분에 이 정도라 대답하곤 했다.
지금도 나는 미대에 재학 중이며 현재 휴학을 한 상태이다. 휴학을 하게 된 계기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요가 때문이다. 요가를 몇 년 동안 계속 해오면서 나는 요가란 존재에 대해 깊이 배우고 싶어 졌고 왜 내가 오랫동안 요가를 꾸준히 할 수 있었는지, 무엇이 그 힘의 근원이 되었는지 알고 싶어 졌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이 요가의 힘을 남들에게 전하고 싶단 구체적인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요가 지도자 과정 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미술과 더불어 요가를 같이 양립하는 삶을 꿈꾸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한 요가가 지금 대학교 3학년 과정 끝난 후 4학년을 앞둔 시기까지 계속 이어져 올 수 있었던 이유를 나는 요가 지도자 과정을 수료하면서 깨달았다. 요가가 단순히 교정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나를 마주할 수 있게 하는 '수련'이었기 때문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요가는 내가 미술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자 힘이 되어주었고 나를 나로서 버틸 수 있게 해 준 든든한 친구였다. 그렇기에 나는 이 요가와의 인연을 단순히 교정을 해준 고마운 운동으로 치부해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요가와 나의 본업 미술과의 양립하는 과정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