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 대해서 잘 안다는 오류를 범한다
고등학생 때 엄마의 손에 이끌려 시작하게 된 '요가'는 실은 참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이다. 요가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상상하는 편견의 잣대를 들이밀기 시작한다. 유연한 사람들 만의 산유물이라느니, 스트레칭 정도 하는 운동이라느니 등등.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한계선에서만 대상을 보려 하는 무지함을 깨닫지 못한 채 사람들은 너무 '요가'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를 해버린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러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렇기에 요가를 시킨 어머니의 뜻을 헤아리지도 못했고 한창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에 왜 요가를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요가를 했기에 오늘날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고 '3년'이란 귀중한 시간을 간직할 수 있었단 사실을 잘 안다.
'요가'는 운동이란 개념보다 '수련'이란 개념이 더 잘 어울리는 존재다. 몸을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몸, 동작들 하나하나를 바라봐야 하며 자신에게만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자신을 관철하는 시간을 통해 외부에서 오는 온갖 잡생각들, 스트레스받았던 경험들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완전히 자기 자신만을 의식하게 된다.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요가는 '빈야사 요가'로, 계속되는 흐름 속 자세를 이어가는 요가이다. 요가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현대인들이 비교적 접근하기 괜찮은 이 '빈야사 요가'는 동작들을 연속적으로 계속 취하며 외부의 생각들을 떨치고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선사해준다. 그렇기에 빈야사 요가를 '움직이는 명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빈야사 요가를 하면서 알게 된 '나'의 몇 가지 모습들이 있다. 첫 번째는 생각보다 내가 '요가와 잘 맞는다'는 점이다. 사실 어머니께선 요가를 1년 정도 시키고 몸을 어느 정도 교정을 한 다음에 수영이나 테니스 같은 활동적인 운동으로 바꾸려고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 꾸준히 요가원에 다니면서 흥미를 보이는 나의 모습에 차마 그만두라고 말도 못 하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요가와의 인연이 지금까지도 이어진 것이다. 요가와 잘 맞는다라는 건, 내 몸을 조금씩 알아가며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과 요가를 하면서 얻는 마음의 위안이 좋았다는 점 그리고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행복했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러한 점들을 깨닫고 확신할 수 있게 된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는 요가가 나와 잘 맞는지도, 내가 요가를 좋아한다는 지도 잘 모르고 막연히 다니다가 1년 정도 지났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의외로 요가원을 오래 다니고 있네?'
그저 어머니가 보내서 열심히 다니는 거라고 하기엔 그때 당시의 나는 나 자신의 의지로 열심히 다니고 있었다. 치열한 입시에 밀려 요가에 대한 나의 열정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부모님의 권유로 몇 번 요가원에 왔다 갔다 했던 내 또래 학생들과는 달리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요가원을 꾸준히 다녔고 교정을 넘어서 더욱 심화된 요가 동작 (아사나)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요가를 하면서 나는 나의 몸에 대한 자각을 하였고 나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조금씩 키워나갔다. 대학교 1학년, 2학년 때 요가에 흥미를 가진 친구들을 만나고 요가를 했던 나의 경험과 조언을 말해주면서 조금씩 그때부터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보다 요가에 대해 진심이었고 잘 맞았구나. 요가를 하기 전엔 그저 몸이 뒤틀리고 뻣뻣하고 요가에 대한 편견을 가진 평범한 학생이었던 내가 요가를 하고서 알게 된 나의 몰랐던 면이다.
두 번째는 내가 '끈기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처음엔 수리야 나마 스카라 (태양 경배)의 기본 동작인 '우따나아사나' (전굴 자세) 조차도 제대로 못 했다. 나의 허벅지 뒷면, 햄스트링 부분이 너무 짧았고 타이트했다. 피고 싶어도 필 수 없었다. 머리를 아래로 숙이고 엉덩뼈를 천장으로 올리며 복부와 허벅지를 붙이는 것조차도 너무 괴롭고 힘들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벽에 등을 붙이고 전굴 하는 연습을 했다. 3분, 5분 나중엔 10분 동안 유지하며 뒷면의 열림을 주고 복부의 힘을 강화하는 훈련이었다. 땀은 비 오듯이 흘러내렸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복합적인 아픔에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감내했다. 그동안 나의 몸을 함부로 대한 벌, 함부로 사용한 대가라 생각하며 뼈저리게 아픔을 느꼈다. 그러나 기본적인 동작을 제대로 못 한다고 요가로부터 도망치지 않았다. 계속 꾸준히 감내하며 나의 몸과 마음을 단련했다.
시간이 꽤나 흘러 수리야 나마 스카라 A (태양 경배 A) 시퀀스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5세트를 기본으로 했다. 그때 당시엔 근력이 키워지기 시작한 때라 차투랑가 단다 아사나를 제대로 할 수 없어서 무릎, 가슴, 턱 순서로 내려놓는 연습부터 했다. 이때부터 나는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요가는 '유연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근력'이 필요한 수련이었다는 것을. 실제로 요가의 몇몇 동작들 (아사나)을 살펴보면 근육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근육으로 움직여야 하는 동작을 유연성만 믿고 허리나 다른 신체 관절 부위를 꺾어버리게 되면 나중에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 근력을 키우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요가는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한다. 단기간에 결과를 얻어내려고 하는 사람은 요가를 할 때 쉽게 싫증을 내거나 포기를 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저 묵묵히 꾸준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을 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내가 '끈기 있는 사람'이란 것을 증명해주었다.
마지막은 내가 나를 잘 알고 있었다는 '오만함'을 깨닫게 되었다. 치열한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나는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나란 사람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등등 어느 한 '주제', '분류', '정의'에 '나'라는 존재를 가둬버리고 판단해버린다. 그러나 요가를 하고 시간이 흘러 요가 철학에 대해서 배우게 되면서 나는 나이기 때문에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나라는 사람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복합적이고 다양하고 알 수 없는 존재였구나.'
요가를 하면서 나는 매트 위에서의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동작을 잘하는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쓸데없는 열을 올리고 있는 나의 모습. 다리를 잘 찢고 싶지만 못 찢어 화가 나는 나의 모습.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고 순식간에 시간이 금방 지나가버려 아쉬움이 드는 나의 모습. 이 모습들은 다 '나'의 모습이다. 결코 '하나'로 규정될 수도, 단정 지을 수도 없는 나의 모습이다. 나는 단순히 내가 '성실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성실하지만 가끔씩 요가원 가기가 귀찮고 힘이 드는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고 '남과 나를 비교하는 빈도가 낮지만 그래도 비교를 종종 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남들에게 솔직하지만 나 자신에겐 거짓말을 하는' 나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종종 요가 센터링이나 요가원에서 이런 말을 듣는다.
요가 매트 위에서의 나의 태도가 더 나아가 삶의 태도로 이어질 수 있길.
요가와 생각보다 잘 맞았다는 사실은 결국 나에겐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고 사람들의 편견과 잣대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사람이란 뜻이며 요가에서의 끈기가 창작에 대한 끈기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미대를 다니며 창작의 삶을 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나의 '오만함'을 알게 됨으로써 나는 함부로 나에 대해 단조로운 잣대를 들이밀지 않을 것이다. 나의 삶은 어떤 색으로 칠해도 결국엔 빛이 나게 될 테니. 그 색을 칠하게 해 준 붓이 결국 '요가'였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