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원의 첫 학기를 마치며
8월부터 미국에 도착하여 적응하고 보낸 첫 학기를 어찌 됐든 무사히 마치며 쓰는 글. 나는 이번학기 영어 워크숍도 함께 수강했기에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보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며 지내는 것에 초점을 두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나름 쉽다고(?) 들었던 과목이 Storyboarding과 Sound design class. 그리고 필수과목으론 대학원을 총괄적으로 경험하는 Colloquium과 논문 읽고 토론하는 수업인 Digital Culture, 그리고 내가 조교로 일했던 Motion1 클래스 이렇게 총 5과목을 수강했다.
처음엔 이미 한국에서 배웠던 것을 다시 배우는 것에 후회가 있었지만 지나고 나니 오히려 한국에서의 교육과 미국에서의 교육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다음은 내가 미국대학원에서 한 학기를 지내며 느꼈던 점이다.
1. 학생들의 교육권이 우선시되며 기기 지원에 아낌이 없다.
한국에서 다녔던 학부시절, 나는 기자재 대여로 인해 많은 진땀을 뺐다. 학과 특성상 카메라를 빌려서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일이 다반사에 애니메이션 셀실을 빌리거나 그 외에 필요한 온갖 장비들을 대여하는데 기본 2주 전부터 예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적립금도 나름 많은 사립대학교이었음에도 여러모로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장비조차도 제대로 구비되지 않고 매일매일 전쟁 같은 대여에 학생들끼리 언쟁을 높이는 일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미국 대학원은 달랐다. 여기에선 학생들의 프로젝트에 필요한 물품을 하루 전에 여유롭게 대여가 가능하며 심지어 대학원생에겐 나름의 대여기간 연장도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 학교에 없는 물품이지만 필요에 의해 요청을 하면 그것을 검토하고 재정 안을 편성해서 물품을 구비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물품들이 넉넉하게 구비가 되어있고 그것들을 잘 관리한다. (물론 내가 조교로 일하는 일에 장비대여와 장비 관리가 포함된다)
미국에선 학생들의 배울 권리를 매우 중요시하는 것을 몸소 실감했다. 제일 놀란 건 학교에 없지만 학생들의 필요 요청 시 기기를 검토하고 적극적으로 알아봐 준다는 것이다. 덕분에 한국에선 꿈도 못 꿨던 붐 마이크랑 줌 녹음 장비등을 원 없이 빌려서 실컷 사운드 녹음하고 사용했다. 한국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유연하게 운영되는 기자재와 장비실 대여 시스템에 나는 연신 감탄했다. 그리고 학기말 과제전에서도 기자재 지원이 아낌없었는데, 나는 2일 전에 갑작스럽게 제안했음에도 모니터 2대를 빌려서 전시를 꾸밀 수 있었다.
2. 피드백의 활성화
일단 기본적으로 학생들의 피드백이건 교수님의 피드백이건, 서로의 프로젝트 작업에 대한 칭찬과 존중으로 시작한다. 어떤 작업물이던 그 작업물의 잘된 점, 본받을 점, 좋은 점을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서로 배울 점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 점에서 한국에서의 지적부터 시작하는 피드백과 사뭇 거리감이 느껴졌다. 나의 학부 시절, 학생들끼리 피드백을 하면 일단 무조건 부족한 부분부터 지적을 하고 어떻게 고치면 좋겠다는 그 말에서 가시 돋친 경쟁의 압박감을 느꼈다. 더군다나 상대평가였기에 다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누가 더 잘했는지 날 선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나는 넌더리 쳤다.
그러나 내가 조교로 일하는 수업이나 대학원생만 들을 수 있는 수업에선 전혀 그런 살벌한 기운은 볼 수 없었다. 느낄 수도 없었다. 모두가 수업에선 프로였고 모두가 존중받고 칭찬받아 마땅한 존재들이었다. 웃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점이 본받을 점인지 어떤 부분이 잘 되었는지 적극적으로 말하고 표현하는 모습에서 나는 처음엔 익숙지 않았지만 점점 그러한 자신감과 여유가 넘치는 모습에 나 또한 동화되어 갔다.
개개인의 의견을 서로가 존중하고 서로의 가진 개성을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제안을 하는 태도와 모습에서 나는 표현의 자유를 느꼈고, 자존감이 올라가는 경험을 했다. 교실에선 누구나 존중받아 마땅했고 누구나 의견을 표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어떤 의견이나 피드백이건 다들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받아들이고 반응을 했다. 적극적인 상호작용과 소통 그리고 존중. 그것은 날 선 경쟁과 차가우리만치 지독한 지적과는 거리감이 먼 경험이었다. 교실에선 모두가 작가였고 선생이었고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3. 교수님들과의 적극적인 소통
또 하나 놀라웠던 점은 교수님들께서 학생들과 정말 적극적으로 소통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과제를 하거나 프로젝트를 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면 교수님들께 이메일이나 문자를 보낼 수 있었고 어떤 교수님께선 여행 중에도 비대면으로 소통하시면서 학생들이 과제를 수행하면서 겪는 궁금증이나 어려움 해소에 아주 적극적이셨다.
그리고 중간기간에 교수님들께 요청드리면 중간 점수를 알려주시는데, 여기서 어떤 부분을 발전시킬지 어떻게 공부를 하면 좋을지, 개선할지에 대해 상담 요청드리면 열정적으로 답해주시고 기말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어떤 부분을 집중하면 좋을지에 자세히 알려주신다.
한국에서 모든 대학이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나의 경우엔 이메일을 보내드려도 연락이 안 되는 일이 부지기수에 기본적으로 교수님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은 사뭇 거리가 있는 느낌이었다. 학부생 시절 교수님들의 존재는 너무나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였으며 상담 요청드리기도 힘들고 연락을 드려도 답장받는 일이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선 모든 교수님들께서 이메일에 답장을 빠르게 주시고 필요시 자신의 연락처로 연락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어떤 질문이든 다 답변을 주시고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올리는데 필요한 지원과 도움을 아끼지 않으신다. 그 덕분에 나는 좀 더 수월하게 과제를 해나갈 수 있었고 과제를 수행할 때마다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4. 자유를 주는 대신 책임감이 따른다
미국에선 모든 것이 자유로운 느낌이다. 자유시간을 어떻게 쓰던, 어떻게 학업 스케줄을 짜던, 학기 중간에 있는 Thanksgiving Week를 어떻게 보내던, 모든 것이 자유롭다. 하지만 그에 따른 본인의 선택의 결과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나는 여기서 미국대학원이 주는 자유가 주는 묵직한 책임감의 무게를 새삼 체감할 수 있었다.
평온한 일상과 한국과는 다른 새로운 환경. 아름다운 자연. 압도적으로 서적이 많은 도서관과 시설이 너무나 좋은 체육시설. 그리고 그에 따른 본인의 학업스케줄은 자신의 책임이다. 학생으로서 해야 할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본인이 하고 싶은 여가활동이나 스포츠, 학교 행사에 참여하는 것 또한 본인의 선택이다.
절대로 모든 일에 강요를 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일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그 속에서 선택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그리고 그 자유를 누리는 대신, 그 자유가 주는 대가를 치르는 것도 우리다. 그에 따른 책임도 반드시 따른다. 그렇기에 자유가 주는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본인의 스케줄과 시간관리는 필수다.
5. 공부량이 엄청나다
나는 일단 논문을 읽고 토론하는 Digital Culture 수업에서 엄청난 양의 글과 해괴망측한 수준의 단어들에 놀랐다. 단연코 이번 학기 시간 대비 투자를 제일 많이 한 것도, 나를 많이 울린 과목도, 그리고 내가 대학원에 와서 가장 실력이 올라간 것도 단연 이 과목이다. 이 과목은 애증이다. 그리고 내가 미국대학원에 와서 공부량이 엄청나다고 느끼게 한 주된 과목이기도 하다.
우리 대학원은 졸업요건이 60학점이다. 그리고 이번학기 조교로 (Teaching Assistant)로 참여하여 수강한 과목까지 합하면 5과목이다. 여기에 나는 영어워크숍도 수강해서 거의 혼돈의 수강표가 완성되었다. 그냥 6과목을 수강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매일 감기몸살약을 먹어가며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일주일에 2번 전공과목이 포진되어 있기에 일주일에 마치 과제가 2번 나오는 느낌인 데다 매주 논문 읽고 토론 준비할 글쓰기를 해야 하며 매주 영어 발표에 리서치에 조교로 서포트하기 위한 준비까지 해야 했다. 그 덕에 나는 새벽 6시에 일어나고 밤 12시에 자는 일상을 3개월 동안 지속했다. 그러지 않고선 이 엄청난 양의 공부와 조교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
논문 읽고 토론하는 수업은 이때까지 봤던 토플의 Reading과 차원이 달랐다. 도통 읽어도 알 수 없는 어휘와 3인칭으로 서술하는 학술적 글쓰기에 익숙지 않았던 나는 매일 밤을 새 가며 글을 읽었다. 빠르게 글을 훑고 요점을 터득하는 Skimming 이 좀처럼 늘지 않아 한 2개월은 눈물 흘려가며 글을 읽었다. 그리고 중간이 지나고 기말에 가까워질 즈음에 가까스로 6시간 걸리던 독해시간을 4시간으로 줄일 수 있었다. 정말 초인적인 집중을 가지고서 정신없이 글을 읽을 땐 2시간 만에 독파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준비를 해서 열심히 토론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기고 뿌듯했다. 무엇보다 박사생분들과 함께 토론하며 디지털 문화에 관한 이슈를 논하는 자리가 가치 있었다. 단연 AI 가 화두였으며 각자 전공하는 분야가 달랐기에 서로의 전공에 대해 소개를 할 때면 새로운 생각과 관점에 대해 알 수 있어 유익했다. 한국에선 좀처럼 만나기 힘든 박사생 분들을 여기 대학원에 와서 제일 많이 본 것 같다.
과제량은 학부생 때도 만만치 않아서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미국은 역시 미국인가 보다. 옛날에 미국 공부량이 엄청나다는 소리를 허투루 들은 것이 살짝 후회했다.
여러모로 첫 학기는 적응의 시작이며 나의 대학원에서의 첫 출발점이다. 그리고 나는 무사히 한 학기를 버텨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처음이라 서툴고 어색하고 낯설기만 했던 영어와 모든 학업은 결국 내게 종강이란 마침표를 선사해 주었다. 종강이란 단어가 주는 마무리 느낌.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나의 대학원 생활은 결코 만만치 않으리란 예상을 하게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새롭게 펼칠 학업과 어떤 프로젝트를 만들어갈지, 어떤 과목을 교수님 보조를 해드릴지 등등에 대해 기대감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나는 미국이란 나라가 선사하는 자유와 공부 사이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미국 대학원에 왔고 이 대학원을 졸업할 것이다.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집중하고 즐길 것이다.
그것이 내가 미국 대학원에 와서 얻은 최고의 결실이자 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