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교 수업과 달랐던 미국 대학원 수업
우선 1학기를 무사히 마쳤다는 글을 쓴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쏜살같은 겨울방학 5주가 어느새 1주밖에 남지 않았다. 정신없는 봄학기를 맞이하기 전, 그래도 1학년 1학기때 들었던 수업은 정말 놀랍게도 한국에서 내가 애니메이션 전공을 하며 들었던 필수 전공과목들이었다. 바로 스토리보드와 사운드 수업. 그래서 한국 대학교에서 내가 들었던 때와 현재 미국 대학원에서 들었던 과목들 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먼저 스토리보드 수업부터 이야기를 해보겠다.
우선 한국에서 스토리보드를 수업을 들었을 땐, 정형화된 스토리보드 Format을 가지고서 (보통 A4 사이즈) 거기에 스케치를 하고 필요한 카메라 샷과 워킹등을 기입하는 형식이었는데 미국 대학원에선 드림웍스에서 10년 넘게 일하셨던 교수님께서 가르쳐서 인지 그 방식이 확연히 달랐다.
일단 한 컷 사이즈는 HD 사이즈이며 한 스토리보드당 요구하는 컷 개수는 적게는 30컷 많게는 50컷이었다. 나는 불행히도 (?) 대학원생이었기에 학부생들보다 1.3배 더 많은 양을 요구하시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뒤로 갈수록 연출이나 이야기 흐름상 어쩔 수 없이 컷 개수가 교수님 의지와 상관없이 늘어나긴 했다.
그렇게 한 컷 한 컷 작업하고 나면 위에 보시다시피 PPT에 그 형식에 맞게끔 컷을 삽입하고, 프레임 숫자와 카메라 워킹, 그리고 시각적으로 어떤 걸 의도했는지 모조리 적는다. 특히 교수님께선 Transition (컷과 컷 사이 전환 효과)을 굉장히 신경 쓰셨는데, 이 컷 간의 Transition 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하지 않으면 교수님께선 조금 답답해하셨다. 기존의 스토리보드 틀을 가지고 진행하던 한국 학부생때와 경험과는 달리 여기 대학원에선 내가 직접 HD 사이즈에 맞게끔 포토샵으로 틀을 만들고, 그 틀에 작업을 하고, 그 작업한 컷을 하나하나 저장하여 PPT 파일에 최종 편집을 하여 마지막 Presentation 은 PPT 발표로 한다.
이는 굉장히 다른 경험이었으며 색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다른 점은, Icon Libraries라고 하여, 카메라 워킹과 인물의 움직임을 지시하고 나타내는 화살표 direction icon을 우리가 직접 디자인하면 추가 점수를 얻는 게 있었다. 한국에선 나는 대충 화살표를 그리고 때려치웠던 기억이 있는데 교수님께선 "화면에 보이는 모든 것엔 의미가 있다" 며, 캐릭터 그림뿐만 아니라 카메라나 인물의 움직임 지시 아이콘까지도 신경을 쓰셨다. 그 덕에 나는 본의 아니게 화살표 디자인까지 했고, 이는 오히려 한번 만들어두고 나니 그 이후엔 다른 스토리보드 작업할 때 편하게 꺼내쓸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었다.
현재 보이는 스토리보드에 삽입된 화살표들 또한 직접 본인이 작업하고 디자인하였다. 교수님께선 화살표 아이콘들 또한 나만의 개성과 느낌이 느껴져서 좋다고 좋아하셨다.
그리고 스토리보드를 완성하고 나면 어김없이 마지막 발표를 꼭 하는데, 여기서 빠르게 빠르게 컷 바이 컷으로, 어떤 샷 종류이며, 어떤 카메라 움직임을 썼고, 어떤 시각적 효과가 있는지를 간단히 언급하며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는 방식이었다. 발표를 마치면 꼭 학생들과 교수님께서 박수를 쳐주는데 그게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다.
개인적으론 개개인의 작품이 존중받는다는 느낌도 들었다.
다음은 사운드 수업을 이야기 안 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의 학부생 때와 확연히 달랐던 점을 느꼈던 과목들 중 하나였다. 일단 가장 큰 차이는 "녹음장비"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고 "녹음"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는 점이었다.
한국보다 더 기자재 대여가 관대하고 후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는 사운드 수업을 수강하면서 여실히 드러난다. 사운드 수업 특성상, 사운드를 직접 발로 뛰며 녹음해야 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 때문에 한국에서도 접하지 못했던 붐 마이크, Yeti 마이크, Zoom H4N, Zoom 헤드셋 등등 온갖 음향 녹음 장비를 한 번씩은 다 기본으로 대여하고 접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에 와서 보니 정말 값어치가 어마무시한 장비들이었는데 이를 대학원생한텐 그래도 넉넉히 4일 이상 기한을 늘려준다.
한국에선 기본 마이크 대여도 빌리기 힘들어 2주 전부터 친구들과 혹은 조원들과 새벽 6시부터 설쳐서 기자재 대여실로 뛰어갔던 아픈 기억이 있었지만 미국 대학원의 넉넉한 기자재들과 인심이 후하신 기자재 담당 관리 직원분의 너그러움으로 기자재 때문에 분통 터지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너무 생소하고 낯선 영어로 된 사운드 수업과 Omni, Cardiod, Bidirectional, Stereo 모드가 도통 뭔 소린지 몰라 헷갈렸던 기억이 난다. (이 모드들은 전방향, 직방향, 마이크 앞과 뒤, 그리고 마이크 왼쪽과 오른쪽 부분에 사운드를 녹음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계속 밀려오는 과제들을 하나씩 수행하고 나면 이 모드들과 친숙해진다.
그리고 사운드 수업에선 Adobe Audition 프로그램을 사용했는데, 한국에선 ProTools 주로 보편적으로 사용하며 특정 필요한 사운드가 생길 시 필요한 일정 소리를 녹음하여 그것을 편집 프로그램에서 가공하고 효과를 줘서 새로운 소리를 재창조했다면 여기선 필요한 소리는 일단 마이크로 녹음하거나 무료 사운드 라이브러리 사이트에서 최대한 찾아서 거기서 특수 효과를 입히는 방식을 썼다.
제일 큰 차이를 느꼈던 점은 군중소리였는데, 한국에선 친구 2명의 목소리를 따서 마치 10명 이상의 학생들이 떠드는 군중소리를 직접 만든 경험이 있다. 그런데 여기선 일단 최대한 사람들을 모아서 군중을 만들고 거기서 Zoom이라는 음향 녹음 장비를 이용하여 녹음하였다. 그리고 사운드 라이브러리 사이트에서 찾은 군중소리와 섞어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군중소리가 되게끔 만든다.
Adobe Audition 프로그램의 직관적인 사용법과 ProTools에 비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능들 덕분에 Mixing과 Editing 이 그리 고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직접 입으로 녹음한 소리를 Audition의 다양한 특수 기능들을 이용하여 바람이 부는 소리를 만든다거나, 무언가 지나가는 소리를 나타낸다던가 등등. 전혀 새로운 소리를 창조해 낸다는 성취감이 들어 아주 즐거웠다.
물론 녹음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기자재를 마음껏 빌리고 쓸 수 있어서 정말 대학원의 수혜를 톡톡히 본 수업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위의 사진과 같이 교수님께서 직접 시연으로 어떻게 현장 스튜디오에서 영상 작업에 맞춰서 소리를 녹음하는지 보여주신다. 그 덕에 말로만 듣던 해외 스튜디오의 사운드 녹음 방식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 유익하고도 뜻깊은 순간이었다.
이렇게 한 학기 수업들을 되돌아보니 한국 학부생 시절 때 들었던 전공 필수 과목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걸 새삼 실감한다. 그리고 과분하게도, 이번 학기는 올 A로 뜻깊은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첫 학기부터 너무 높은 성적을 받아서 그다음 학기가 조금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나름 미국 대학원에 적응을 잘하고 있는 중이라는 증표인 것 같아 뿌듯하다.
성적에 좌지우지되기보단, 현재에 집중하고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에 대해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려고 한다.
다음학기는 드디어 나의 주종목 3D motion과 UX UI를 배우는 인터렉션 디자인을 수강한다. 이번 학기에 들은 과목들보다 더 난도가 있을 것이고 과제가 많겠지만 그래도 즐겁게 임하다 보면 못할 건 없단 생각이 든다.
수고했어. 그리고 잘 부탁해 봄학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