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어른이에서 진정한 어른이로 거듭나는 중
벌써 미국에 석사과정을 하러 온 지도 6개월 조금 지났다. 그동안 나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일들을 해냈고 지금도 하고 있는 중이다. 간략하게 나의 경험을 공유하자면 나는 한국에선 절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소위, '어른이'들이 하는 일들을 미국에 와서 이루고 있다. 내 기준, 이걸 하면 '어른이'라는 몇 가지 것들을 간단히 공유해 보겠다.
1. 운전하기
내 기준에서 '성인'이란, 혼자서 어디서든 차를 운전해서 다닐 수 있는 사람을 뜻했다. 예전부터 그런 생각이 진하게 남아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차를 타고 어딜 돌아다니는 걸 너무 좋아했는데 그 어렸을 적 DNA 에는 아무래도 차를 사랑하는 기질이 타고났나 보다. 나는 차를 너무 좋아했고 차를 타는 걸 너무 사랑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차에 대한 로망과 차를 스스로 직접 운전하면서 돌아다니는 어른에 대한 동경이 생기는 건 아마 당연지사였을 터. 한국에서 운전면허증을 땄지만 우리 집은 아버지께서 중학생 때 폐차시킨 이래로 차를 사지 않았기에 그 귀한 '차'가 없는 집안이 되시겠다. 그렇게 무사고인 장롱면허로 살게 된 지 4년이 지나
현재 나는 미국에서 스스로 운전하고 다닌다. 나의 차는 일제 브랜드인 마즈다 CX-30 select이다. 미국에선 중고차를 구입하는 일이 흔한데, 나는 전 주인이 옵션을 괜찮게 추가해 놓아서 내가 별도로 뭔가 할 필요 없이 지금까지도 편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 후방카메라와 내비게이션, 그리고 자동 감지 센서 덕분에 몇 번 위기를 넘겼는데 운전하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감사하게도, 나의 현재 대학원 선배분께서 운전연수를 해주시고 몇 번 실전 운전 연습을 시켜주셨기 때문에 이제 혼자서도 고속도로를 타고 다니고 전방과 후방주차는 문제없이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코네티컷은 정말 쓸데없이 땅 덩어리가 넓어서 차가 없으면 어딜 다니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자연경관은 끝내주기 때문에 운전하면서 하늘 바라보는 낙으로 산다)
2. 집 계약하기
미국에서 정말 여러 가지 행정 볼 일을 본다고 진땀 뺐는데, 나는 현재 Teaching Assistant (조교)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SSN이라는 사회보장번호를 발급받아야 하는 건 물론, 은행 계좌를 열고 카드를 만드는 등의 행정 일들로 정신없는 첫 학기를 보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요즘 들어서 느끼고 있는 것이 우리 학교 기숙사는 퀄리티에 비해 가격대가 너무 높기로 악명이 자자하다. 그렇기에 1년이 지나서 이사를 하는 학생들이 상당수인데 그중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기숙사에서 오래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취할 집을 알아보고, 그중 운이 좋게도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빈자리가 나와 재빨리 지원서를 넣었고 집주인과 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집 계약을 완료했다.
미국은 집 계약을 하고서 집을 위한 보험을 별도로 들어야 한다. 재산이나 사고에 따른 피해를 보장해 주는 개념인 듯한데 그냥 뭐든 뭘 하기만 하면 돈이 드는 시스템이라 미국은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란 생각을 자주 한다. 그리고 집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기, 인터넷, 수도 등 집에 필요한 여러 옵션들을 미리 준비해서 입주일에 맞춰 계약일이 시작될 수 있게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나는 순조롭게 모든 계약들을 진행하여 이제 인터넷만 설치하면 입주할 준비가 끝난 상태다. 한국에선 부모님께서 집 계약을 하는 걸 주로 봤는데 여기선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직접 부딪혀야 한다. 그래도 전보다 부동산 용어나 계약 용어가 눈에 잘 들어와서 다행이다.
3. 신용카드 만들기
나는 신용카드를 싫어한다. 아니, 싫어한다기보다 무섭다. 한도가 없는 그 무절제함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졌다. 그래서 항상 한국에서도 체크카드만 사용해 왔고, 신용카드를 쓰는 사람들이 정말 어른이라고 느껴졌다. 나는 돈이 무서웠고 신용카드가 주는 그 '책임감'의 무게를 나는 한국에서 견딜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은 철저히 신용사회이기 때문에, 나중에 집을 사고팔거나 차를 사고팔 때.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등등 여러 가지 금전적인 볼 일이나 계약을 진행하고 싶을 때 신용점수가 필수이다. 신용점수가 높을수록 신뢰도가 올라가며 여러 가지 금전적인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신용점수가 낮을수록 할 수 있는 계약이나 일 들이 적어지며 결국 신용점수를 올리기 위해 신용카드를 만들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연유로, 나 또한 디스커버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아는 지인이 소개해준 카드인데, 나는 외국 유학생으로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데다 신용도는 당연히 전무하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신용카드 종류가 한정적이다. 그래도 디스커버는 신용점수가 없어도 만들 수 있으며 캐시백으로 받는 돈이 은근 쏠쏠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잘 쓰고 있다. 달마다 5퍼센트 캐시백 하는 가게나 상품 목록이 다르기 때문에 미리 확인하고 쓰면 나중에 캐시백으로 돈을 좀 모을 수 있다.
4. 인턴쉽 지원하기
마지막으로 미국에선 내가 직접 발로 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낀 가장 큰 부분, 바로 '인턴쉽'이다. 여름방학이 이상하게 길기 때문에 (한 3개월 정도로 굉장히 길다) 이 시간을 정말 쉬어버리면 나중에 동료 학생들의 커리어와 비교했을 때 뒤처지기가 쉽다. 이 시기를 요령껏 잘 보내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지도 교수님께선 추천하신 것이 바로 인턴쉽을 구해서 경험하는 것이었다. 나의 경력사항에도 중요한 지표가 될뿐더러, 나중에 직업을 구할 때도 이력사항이 되고 포트폴리오를 쌓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활동이다. 그런데 이 인턴쉽을 지원하는 것부터 정말 만만치 않았다.
우선, LinkedIn이라는 구인구직에 특화된 SNS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대부분 기업들의 공고가 여기에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계속 들르면서 어떤 인턴쉽 프로그램이 나왔는지를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그런 다음 어떤 인턴쉽을 지원할지 결정했다면 지원할 차례인데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Resume, Cover Letter, Portfolio이다. 때에 따라서 Reference (추천서), Essay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만큼 기업이나 지원하려고 하는 직업군에 따라 그 요구사항은 천차만별이다.
그러한 연유로 나는 나의 겨울방학을 졸업작품 리서치를 위한 공부와 인턴쉽 지원을 위한 포트폴리오 사이트 제작 및 Resume 디벨롭 및 처음부터 다시 작성, 그리고 기본 Cover Letter 작성을 하였다. 여기서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먹은 건 포트폴리오 사이트 제작이었다. 난생처음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픽사 인턴쉽이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요구했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공고들도 확인해 보니 다들 포트폴리오 기입란에 포트폴리오 사이트 주소를 요구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나중에 하나 지금 하나 똑같으니 시간이 많을 때 미리미리 사이트 구축해서 디벨롭하는 것을 추천한다.
Resume 이력서 또한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다. 한국에서 현재 다니고 있는 미국 대학원 지원할 때 썼던 문서면 충분하지 않을까 했으나, 학교에서 지원하는 Career Center Mentoring Program에 조언을 구해보니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고칠 사항들이 투성이었다. 그냥 다 갈아엎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대학원생과 학부생의 Resume 양식 또한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그것 또한 확인을 잘해야 했고, 내 전공 특성상 디지털 미디어와 나의 관심분야를 잘 뚜렷하게 보여주는 게 중요했기에 레이아웃부터 내가 소유한 소프트웨어 특기, 나의 경력 사항 등 등을 탄탄하게 순서를 잡아주는 것, 그리고 각 경력 사항마다 짧고 굵은 설명을 추가하는 것 또한 진행했다.
그리고 내가 지원하려고 하는 회사와 직업 포지션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수정하는 것도 필요했으며 그에 따른 Cover Letter 또한 조금씩 수정해야 했다. 그것만 몇 주는 걸렸던 것 같다. 봄학기를 맞이한 지금도 여전히 인턴쉽에 지원하고 있으며 마라톤을 한다는 느낌으로 계속 지원하고 있다. 누가 그냥 떠먹여 주는 건 없고 내가 직접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보고 발로 뛰어야 한다는 진리를 미국에서 인턴쉽을 지원하며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 경험이 현재 내가 이 글을 쓰게 만든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한층 더 성숙해지고 있으며 진정한 '어른이'로 거듭나고 있음을 느낀다. 한국에선 절대로 상상하지도 못했을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나'라는 인격체가 미국에서 완성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치열하지만 그 속에서 늘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미국에서 겪은 행정 절차부터 차를 사기 위한 차 보험 등록하기, 운전면허 필기시험, 운전면허 실기 시험 등등 할 이야깃거리는 너무 많다. 내가 하고 있는 조교 일에 관련된 이야기도 풀어낼 내용이 산더미이다. 나중에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하나씩 풀어나가 보도록 하겠다.
이와 같은 여러 일들을 해내면서 나는 오히려 한국에 있었더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아니 못했을 일들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어린이는 아니지만 여전히 성장 중이다. 내면적으로 인격적으로. 여전히 성인이 되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열심히 '어른이'로 지내면서 성장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고여있으면 썩어버리기 마련이니. 언제까지고 제자리에만 머무를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늘 깨어있고 늘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늘 나를 한계점에서 벗어내게 하려 노력한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작은 변화를 이루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순간들이 모여 큰 변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내가 그렇기에.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집도 차도 해결이 되어있었다. 이제 나는 5월부터 새로운 집에서 나의 차와 함께 남은 미국 생활을 함께 지내게 될 것이다. 그 순간을 위해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최선을 다해 '어른이'로 성장 중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나처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성장하고 있을 모든 '어른이'들에게 환희의 박수와 함께 이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