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는 이제 시작, 전공은 이제 마지막
얼마 전, 꼭 한번 치러보고 싶었던 영어시험인 오픽을 조금 더 할인된 가격으로 보기 위해 휴학증명서를 뽑았다. 휴학증명서에 선명하게 적혀있는 '4학년'이란 글자가 내게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미리 점지해주는 듯. 나는 그 글자에게서 한 동안 멍하니 눈을 떼지 못했다. 내년엔 정말 진짜로 꼭 졸업을 해야만 한다.
나의 전공은 영상 애니메이션이다. 영상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합쳐진 전공으로 영상에 관련된 전반적인 것들을 배우고 제작한다고 보면 된다. 학부는 디자인 영상학부로 1학년 때는 학부체제였다가 2학년 때부터 전공을 선택한다. 그리고 선택한 그 전공 그대로 4학년 졸업까지 가지고 가게 된다. 지금은 학부체제로 아예 통폐합이 되어버려 전공이 세부적으로 나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1학년에 디자인을 배우고 2학년부터 영상을 배운 학번 세대다.
나는 고등학생 때 듣게 된 멘토링 강연으로 학과를 선택했다. 애니메이션 감독님께서 오셔서 자신의 직업, 작품 등등을 이야기하셨는데 그분의 말씀이 나에게 크나 큰 빛처럼 남았다. 그 감독님의 눈에선 열정이 있었다. 애니메이션이 단순히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우리나라 문학에서 나오는 미학을 스크린에 담아내는 세심함. 그리고 손으로 그리는 셀 기법을 고집하는 장인정신. 그분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내게 크게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중학생 때 막연히 생각했던 애니메이션이란 꿈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을 선정할 즈음, 나는 홍대에 '애니메이션 학과'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 학과에 가게 되면 그 감독님처럼 멋진 작품을 만들고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되리란 기대를 했다. 그렇게 수시를 준비하게 되었고 치열하게 면접까지 본 후 최초합으로 지금의 대학에 입학했다.
2학년 때 전공 진입한 후 나는 열심히 다양한 과목들을 수강했다. 투디 애니메이션부터 쓰리디 애니메이션, 영상 촬영, 영상 편집, 사운드 편집, 사운드 믹싱, 드로잉, 서양미술사, 연기, 스톱모션 인형 제작, 스토리보드 등등. 흥미롭고 재미있는 과목들이 많았고 새로운 경험들을 해보는 편이 앞으로 창작에 많이 도움 될 것이란 판단하에 들었던 것이다. 나는 다양하게 많이 수강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특수한 과목들도 많았기에 엄마는 가끔 내게 미대가 아닌 연극영화과 같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어느덧 치열했던 3년이란 대학생활이 지났다. 휴학을 합치면 4년이 흘러간 것이다. 벌써 두 번째 휴학인 이번 연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슬슬 전공 공부를 위해 인터넷 강의도 수강하고 작품 구상을 위한 개인적인 스터디도 시작했다. 졸업작품을 위한 계획도 하나둘씩 세우고 있다. 그럴수록 이제 졸업만이 남았구나란 사실이 크게 다가온다. 새내기였던 시절이 엊그제 같았지만 이제 그 시절이 끝날 때가 머지않았다란 현실이 새삼 차갑게만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요가 생활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요가 지도자 과정을 통해 이제 겨우 요가를 알게 되고 나를 더 보듬어 줄 수 있게 되었고 요가 수련도 놓치지 않고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나의 전공은 마지막을 앞두고 있다. 이번 두 번째 휴학이 나의 요가와 전공의 출발과 끝을 동시에 달리고 있는 시기라는 점이 묘하다. 그러나 앞으로 요가와 전공이 계속 같이 양립될 수 있도록 정진해야 하는 일은 나의 몫이다. 나는 애니메이션으로 졸업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졸업작품의 주제도 정했다. 아마 나의 브런치를 읽고 있는 분들은 예상을 하실지도 모르겠다.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졸업까지 전반적인 나의 4학년을 다루는 건 내년에 하기로!
나는 나의 전공이 무척 마음에 든다. 일단 우리 학교처럼 영상에 관련된 커리큘럼이 다양하게 확보된 곳이 국내엔 별로 없다. 학교 동기분들도 다 열심히 하는 열정맨들이고 교수님들도 엄청 능력이 좋으시다.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배움의 터전이 지금의 학교이고 학과이기에 단점이 많은 (그래서 눈물을 좀 흘리는) 점도 감안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만든 영상이 누군가에게 보였을 때 그 기분. 느낌은 황홀하다. 나는 칼아츠 동계연수를 통해 그런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은 아주 멋진 분야이다. 캐릭터가 가상의 세계에서 실제로 살아 움직이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결국 그 '허구'를 '진짜'로 만드는 마법이 있다. 우리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울고 웃으며 캐릭터와 세계관에 흠뻑 빠져들고 '실제로 있을지도 모르는' 상상을 하며 살아간다. 나는 나의 전공을 통해 고등학생 때 뵈었던 감독님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만든 캐릭터, 세계관이 실제처럼 살아 숨 쉬고 움직인다는 건 아주 아주 근사하고 멋진 일이다.
이제 나의 전공의 마지막을 장식할 졸업작품만 잘 준비하는 일이 남아있다. 그와 동시에 요가를 배우고 수련하는 일도 게을리할 수 없다. 졸업작품의 큰 틀은 정해졌고, 어떻게 표현하고 구상할지에 대해 여전히 고민하고 작업하는 중이다. 영상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신경 써야 한다. 나는 개인으로 작업할 것 이기에 더욱 고생길이 훤하다. 그러나 그 길은 순탄치는 않지만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끝까지 스스로 걸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졸업이란 끝을 지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 결국 요가도 새로운 시작점을 맞이한 것처럼.
항상 잘 해왔고 지칠 땐 넘어지고 실컷 뒹굴어도 돼. 그래도 여기까지 달려왔어.
넌 앞으로 더욱 눈 부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