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퍼런스에서 만난 일상 속 평범한 시간의 힘
나는 이번 여름방학의 끝을 맞아 시그라프 2025 자원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이번연도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이뤄졌으며, 나의 (사실상) 첫 시그라프 콘퍼런스 대면 봉사였다. 나의 첫 번째는 2020년도 대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시그라프 아시아였으나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전면 전환되면서 대면 콘퍼런스의 기회를 놓쳤다.
시그라프 SIGGRAPH는 ACM SIGGRAPH라는 단체에 의해 주최되는 연 행사로, 세계 최대 규모의 컴퓨터 그래픽스 학회이다. 북미와 캐나다등 열리는 SIGGRAPH와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SIGGRAPH ASIA로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전 세계 프로그래밍, 컴퓨터 애니메이션, 컴퓨터 사이언스 등 각종 이공계열과 예술계통 학과와 학계, 그리고 업계 분들이 모이는 그야말로 예술과 과학의 만남의 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그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5년 뒤, 나는 미국 대학원에 석사과정을 왔고 이번 시그라프가 캐나다에서 열린다기에 미국과 캐나다는 비교적 가까운 축에 속하기도 하고 여름방학 기간에 봉사하러 다녀오면 좋을 것 같아 봄 학기 중에 지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학생 자원봉사자에 뽑혀 밴쿠버 컨벤션 센터로 향하게 된다.
자원봉사자 한 명당 주 25시간으로 근무시간이 할당되며 주로 하는 활동엔 콘퍼런스 배지에 맞는 사람들을 입장시키기, 위치 알려드리기, 티켓 회수하기, 혹시 모를 돌발상황에 대비해 대기하기, 각 홀마다 어떤 이벤트가 열리는지 알려드리기 등 생각보다 많고 다양한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그리고 콘퍼런스의 규모는 내 생각보다 훨씬 컸는데, 이전에 참가했던 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번 연도 규모가 지난 년도 보다 훨씬 여유롭다고 했다. 그만큼 매년 열리는 이 학회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봉사를 하면서 나는 할리우드 VFX 스튜디오 관계자분들, 내가 쓰고 있는 그래픽 소프트웨어 개발자 분들, 그리고 유명 대학에서 나오신 교수님들까지 컴퓨터 그래픽스에서 입지가 강하신 분들을 이 컨벤션 센터에서 차고 넘치도록 만날 줄을 몰랐다. 오히려 그 수가 너무 많아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참으로 의외였던 것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그것도 평범한 일상 속 시간에서 이뤄졌단 점이었다.
나는 대개 오전 근무가 많아 오전에 근무를 뛰고 나서 오후 근무를 위해 컨벤션 센터에 위치한 카페테리아에서 주로 점심을 먹는 편이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예기치 못한 만남을 두 번 겪는다.
한 분은 미국 서부 쪽에서 오신 치과의사 분. 그분은 원래 컴퓨터 엔지니어링 전공이었다가 치대로 전향하며 현재 치과의사로 일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런데 현재 치과의 현재 시스템이 여전히 불편한 점이 많고 그걸 개선하기 위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싶으시다는 꿈을 갖고 계셨다. 그렇게 시그라프에서 여러 다양한 분들과 활발히 소통을 하고 있다고 하셨다. 나는 자원봉사에 지원하여 현재 미국 석사로 동부에서 왔다고 소개하니 그분께서도 요즘 기술의 발전과 디자인 그리고 앞으로의 본인의 창업에 대한 비전에 대해 알려주셨고 그분의 열정과 솔직함이 나 또한 내가 맡은 프로젝트를 열심히 해야겠단 또 다른 의욕을 갖게 해 주었다. 그렇게 그분과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고 혹시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게 되시면 연락하라고 끝맺음을 지었다.
또 다른 한 분은 Maya라는 3D 소프트웨어 개발사 Autodesk 직원분이셨다. 그분은 주로 User Experience를 담당하셨는데 3D 프로그램이라도 그 속엔 아티스트들을 위한 2D interface 즉, 기본 레이아웃과 메뉴 디자인 등 설계가 필요한데 그분이 그쪽으로 특히 관리하시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내가 많이 사용하던 소프트웨어 개발사의 시니어가 말을 걸어준 기회에 흥분하여 나의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보여드리며 나의 졸업 프로젝트를 설명드렸고, 그분 또한 나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며 들어주셨고 그렇게 나는 예기치 않은 업계 관계자 분과같이 점심식사를 이어갔다. 요즘 뜨는 XR을 이용한 미디어 이야기, 시그라프 어떤 작업이 흥미로웠는지, 어떤 기술이 인상적이었는지 등등 밥을 먹으며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눴고 마지막엔 그분의 링크드인과 연결되는 것으로 맺었다. 편하게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시지를 보내란 그분의 말씀에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나는 단순히 '점심'을 먹으러, 밥을 먹으러 왔을 뿐인데 그곳에서 전혀 상상치 못한 분들이 말을 걸어왔고 그것을 계기로 새로운 소통의 기회를 얻었다. 흔히들 일상생활 속 많이 하는 식사에 불과한데 콘퍼런스에서의 식사 또한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옛날에 어디선가 본 말이 기억이 났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기회는 평범한 상태로 온다고. 흔히들 우리가 생각하는 엄청난 사건은 의외로 굉장히 소소한 곳에서 올 때가 많다. 그 예가 점심 혹은 저녁식사와 같은 일상 속 한 부분에 불과한 시간이다.
그렇게 나는 점심식사와 같은 '평범한' 시간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히려 평범하게 밥을 먹기 때문에 누구나 같이 합석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콘퍼런스'라는 공통된 주제와 장소에서 쉽게 말문을 틀 수 있었다. 그렇게 본인의 소개를 통해 나를 알릴 기회가 생기고 그 사람과의 말문을 틈과 동시에 대화를 이어가며 좀 더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의외로 점심시간 때 뵈었던 분들은 다 격식 있는 차림이 아닌 굉장히 캐주얼한 사복 차림으로 다니셔서 그분들 목에 걸린 명찰이 아니었더라면 어디 쪽에서 종사하고 있는 분들인지 모를 뻔했다. 그만큼 다들 평범한 차림이었고 같이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들 각각의 배경을 알 수 있었다.
밥을 먹으며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나는 평범한 '점심시간' 속 특별한 분들을 만나 앞으로도 길이 기억될 특별한 소통을 나눈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그 한 그릇이 그렇게 배부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