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동경하던 분의 손 편지를 받다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 안재훈 감독님에게 답장을 받다

by 이소연


나는 내가 '애니메이션'의 길을 가게 만들고 '애니메이터'란 꿈을 꾸게 만든 내 인생의 멘토 분이 계신다. 그분은 바로 우리나라 1세대 애니메이션 감독님 "안재훈" 감독님이시다. 감독님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한국 단편 문학 애니메이션 작품화를 통해서였는데, 처음으로 본 감독님의 작품이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이었다.


늘 수능공부 때문에 바라보던 우리나라 문학작품을 난생처음으로 아름다운 '구절' 그 자체만으로 바라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외웠던 인물들의 서사와 내용들이 이토록 절절한 느낌이었는지, 어떤 시각적인 풍경들을 담고 있었는지 느낄 새가 없었는데 안재훈 감독님께서 그려내신 애니메이션 작품을 통해 새롭게 자각하게 된 것이다.


또한, 늘 일본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며 부러움과 동시에 왜 우리나라엔 저런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스튜디오가 없을까란 생각을 했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가능성과 우리나라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고 아름다운 고유의 빛깔을 뿜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던 시기였다.


영화관 속 큰 화면으로 바라본 캐릭터와 절묘하게 어우러진 배경 작화들은 실로 감탄만 나왔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과 익살스러운 캐릭터들의 동세와 표정들이 마치 소설 속에서 정말로 인물들이 튀어나온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한 장면들을 생생히 그려냈기 때문이다. 엄마와 나는 연신 감탄하며 우리나라 고유의 애니메이션의 매력에 빠졌다.


그 후,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그 작품을 제작하신 '안재훈'감독님께서 부산국제 영화제 행사 참여하시면서 부산에 위치한 우리 고등학교에 강연하러 오셨다. 나는 이미 강연 오시기 전부터 감독님을 알고 있었고 그분의 작품을 영화관에서 직접 봤기에 그 떨림과 흥분은 배가 되었다.


강연에서 감독님께선 어째서 본인이 손으로 하나씩 그리는 번거로운 작업인 '셀 애니메이션' 기법을 고집하는지, 애니메이션이란 매체가 가진 힘과 본인의 철학 그리고 한 작품이 완성되어 갈 때마다의 그 기쁨을 작업과정과 작품 상영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셨다. 나는 그분의 한 장씩 손으로 그리는 장인정신과 우리나라 문학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을 때의 그 아름다운 장면들 하나하나가 뇌리에 강하게 박혔고 그날 난생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이란 매체가 가진 아름다움과 이야기의 힘을 강하게 인지했던 것 같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오래전 기억이라 틀릴 수도 있으나 전반적 내용과 뉘앙스는 이런 느낌이었다.



저는 제 손이 닿지 않으면 남이 한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손으로 직접 하나하나 그려야 제 것 같습니다. 그런 번거로움이 작품을 더욱 저답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대학교 지원할 때 한 군데는 '애니메이션'이 포함된 전공을 선택했고 대학교 2학년엔 영상 애니메이션과로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과 연을 맺게 된다. 그림만 그리다 프레임별 연속해서 움직임을 만드는 애니메이션 작업은 녹록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씩 직접 손으로 그리는 셀 애니메이션 기법은 상당히 효율성과 거리가 멀었다. 하나하나 직접 다 작업을 했어야 했고 어느 하나라도 움직임이 이상하면 다시 처음부터 그려나가야 했다.


그럼에도, 대학교 진학 후 나는 한순간도 '안재훈' 감독님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이후 감독님의 또 다른 한국 문학 단편 애니메이션 "무녀도" 또한 개봉하고서 보러 갔었고 시간 될 때마다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감독님 근황도 계속 들여다보곤 했다. 그래서 감독님의 남산에 위치한 스튜디오 방문도 여러 번 계획하였고 방명록도 작성하고 프로듀서님과 연락이 닿아 감독님을 뵐 날을 고대하고 있었으나, 얄궂게도 번번이 계획이 틀어지거나 엇갈리는 등의 일들이 겹쳐져 결국 한국에 있을 때 뵙지 못하였다.


그렇게 미국 대학원으로 떠난 후 나는 오랜만에 다시 스튜디오 홈페이지에 방명록을 남겼다. 내가 미국에 있을 동안 감독님께서 나의 모교와 오하이오 주립대에 방문하셨기 때문이었다. 감독님의 변함없으신 애니메이션 사랑과 지금도 제작하고 계신 아름다운 화풍은 나의 고등학교 강연 시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아마 그때 당시 나는 감독님을 향한 열렬한 나의 애니메이션 전공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부터, 지금 대학원에 와서 이어지는 학업까지를 절절히 썼던 걸로 기억한다. 중요한 점은, 내가 애니메이션 꿈을 꾸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자 이유는 바로 감독님이란 사실이었다. 그렇게 본의 아닌 감독님을 향한 열정이 넘치는 러브레터(?)를 남기고서 한동안 바쁜 대학원 스케줄이 치여 잊고 살았다.





어느 날 방명록 답장을 확인하니 뜻밖에도 프로듀서님께서 답장을 남겨주셨는데, 그 내용이 놀라웠다.


'안재훈' 감독님께서도 부산에서 하셨던 고등학교 강연을 잊지 않으셨다는 점, 그리고 내가 현재 공부하고 있는 주립대를 찾아보셨다는 것. 그래서 나를 위한 손 편지를 쓰고 계신다는 점이었다. 더불어 감독님께서 쓰신 책들과 엽서들을 같이 동봉하여 택배를 부쳐주신다고 하여 얼떨결에 나의 미국 집 주소를 알려드리게 되었는데 알려드리면서도 반신반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로 국제우편으로 감독님의 손 편지와 책들 그리고 그간 작업하신 애니메이션 엽서들이 동봉되어 도착하였다. 감독님의 손 편지는 5장 정도의 아름다운 손글씨 필기체로 꾹꾹 담긴 진심 어린 글자들로 이뤄져 있었다. 비록 실제로 뵙진 못하였으나 마음으로 이어진 인연은 그 진심이 닿는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신 듯 나에게 보내는 말씀 한 문장 한 문장이 나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한평생 동경해 온 그분의 강연을 시작으로 여기까지 애니메이션을 붙잡고서 왔다. 그리고 현재 미국에서 나는 꿈같은 동경한 분의 손 편지를 받았다. 그분은 본인 이후의 차세대를 이끌어갈 미래의 애니메이션 후배들을 양성하시고 또 키우고 계신다. 나 또한 그 수많은 후배들 중 한 명이겠으나 그날 감독님의 손 편지는 나로 하여금 이때까지 내가 걸어온 길이 정말 '잘 걸어왔다'라고 응원과 격려 그리고 앞으로의 기대되는 '미래'까지도 아낌없는 칭찬과 위로의 말씀을 남겨주셨다. 고단한 미국 유학생활 중 나는 난생처음으로 온 세상이 꽃들로 가득 차 보이는 경험을 했다.


그 이후로 나는 힘들 때마다 감독님의 손 편지를 한 번씩 들여다보곤 한다. 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질 때, 힘들 때, 번아웃이 왔을 때, 기타 등등. 내가 나의 심지를 단단히 붙잡지 못할 때마다 부적처럼 다시 한번 감독님의 굵은 심지가 느껴지는 손글씨를 볼 때마다 나의 마음 한편엔 따스한 감정이 물든다.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슬픈 감정은 저편에 날려두고 나 보다도 나를 응원하고 믿고 계신 감독님의 말씀들을 바라보면, 그 어떤 달콤한 말 한마디보다 진심 어린 글자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미국에서 꿈같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으나, 한평생 존경하고 동경해 오던 감독님에게서 손 편지를 받은 그 날 만큼 비할 바를 못할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만나 행복했고 이제 나의 졸업작품에도 '애니메이션'을 만들어갈 예정이다.


내가 걸어온 여정에 아낌없는 사랑을 부어주신 감독님께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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