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잎이 나온다는 건, 적응을 마쳤다는 뜻
식물을 키우다 보면 다들 공감을 하는 부분이겠지만 식물의 성장은 생각보다 느릴 때가 많으며 그 성장세 또한 평소에 관찰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다가온다.
그래서 평소에 식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애들이 살아있긴 한 것인지, 어떻게 우리 집에서 잘 지내고 있는 것인지 답답한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과습으로 잎이 노래지고, 뿌리파리의 습격으로 집이 뒤집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으면 가만히 초록 빛깔인 채로 있는 상태가 가장 최상이라는 것 정돈 초보 식집사라도 안다.
그러나 식물을 키우면서 새삼 느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식물은 요란스럽게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려주는 대신, 아주 조용하지만 착실히 본인만의 신호를 보낸다는 사실이다. 그중 하나는 '새 잎'이다.
미국에서 지내고 있는 집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 상당 수가 들여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 초록이들이다. 그나마 오래 지내고 있는 친구들이 알로카시아 들인데 이들은 비교적 적응력이 빠른 편에 속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무사히 적응하며 지낼 수 있을지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던, 식마켓에서 데려온 안스리움과 글로리오섬 이 두 녀석이 줄곧 신경 쓰였는데 지금 글 쓰고 있는 현재 시점으로 둘 다 무사히 신엽을 피웠다.
한창 다른 식집사들 글들을 읽을 때 봤던 글이 있다.
'우리 집에 들여온 지 얼마 안 된 새로운 식물이 새 잎을 낸다는 건, 우리 집에 적응을 마쳤다는 뜻이에요'
그렇다. 식물들 각자만의 적응 속도와 방식이 다르듯, 마치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상태일지라도 이따금씩 물 주고 환기시켜 주고 관리를 해주었더니 어느 날 안스리움이 먼저 신엽을 틔웠고 그 후로 수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글로리오섬의 신엽 또한 피었다.
아는 지인분께서 캐나다로 가시면서 맡게 된 몬스테라 녀석도 우리 집에서 기존에 피우려고 했던 신엽을 피웠고, 그 이후로 우리 집에서 아예 새로운 신엽 하나를 더 틔웠을 때에도 뭉클하고 감격스러웠는데 미국에서 처음으로 참여한 식마켓에서 데려온 두 초록이들이 무사히 우리 집에서 신엽을 터뜨렸다는 사실이 새삼 감격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말은 즉슨, 우리 집에서의 적응을 마쳤다는 뜻이니까. 진정으로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는 뜻이니까.
무심한 듯 아닌 듯 식물들은 각자만의 속도가 있고 적응 방식이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감내하고 기다릴 줄만 안다면 어느 순간 식물들은 끈질기게, 그리고 착실히 자신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가만히 있는다고 정말로 성장이 멈추거나 얼음이 된 게 아니다. 우리들만의 시각으로 식물들을 바라보면 이렇게 식물들 고유의 리듬과 성장 패턴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서 겉으론 평온한, 그들만의 느리지만 조용한 성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나 또한 변함없지만 그 속에서도 변화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외적으로 화려하고 빠른 성장세가 안 보인다고 다가 아니라는 걸 식물들이 내게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일상의 지혜다.
우리 집에서 새롭게 신엽을 피워낸 초록이들을 기특해하며 나 또한 변함없이 착실히 성장하는 신엽을 틔워내리라 다짐한다.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한다, 초록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