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휴학 때 토플을 공부하고부터 어느 순간 내게 어학시험은 시험이 아니라, 어학능력을 키우고 어학을 공부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제일 좋은 점은 내가 이러한 실력이란 것을 일일이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않아도 나의 성적이 있다면 대부분 객관적으로 인정을 해준다. 적어도 외국어는 이 정도로 할 수 있겠
구나. 교환학생을 목적으로 공부했던 토플은 아쉽게도 교환학생 선발에서 두 차례 떨어지면서 쓸 일이 없었지만 나중에 국제 대외활동에서 어학 증빙 자료로 쓰기도 했다. 어학 자격증이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이렇게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이는 구나를 실감했다. 그렇게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어학 자격증을 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작년 코로나로 비대면으로 1년을 보냈던 나는 독학으로 토플 공부를 준비했다가 대면 시험이 오락가락하는 실정을 보고서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기로 판단, 거의 1년 동안 영어공부를 하지 못 했다. 그렇게 올해가 되었고 요가로 불타는 1년을 채우던 즈음 나는 예전에 막연하게 치고 싶었던 오픽을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 학교는 대학연합에 가입된 학교여서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학교 덕도 보고 이참에 영어공부 좀 할 겸 오픽을 10월에 처음으로 보게 된다.
일주일 동안 독학으로 열심히 준비하면서 나는 유용한 영어 표현들, 필러(중간중간 어, 음 같은 채우기용 말) 표현들, 그리고 내 주제에 써먹을 수 있는 다양한 어휘들을 많이 준비했다. 영어 원서도 읽는 연습을 하며 영어로 말하기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나자 나는 처음보다 익숙해진 상태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자신감에 넘쳐있었다. 시험 성적이 내 생각보다 안 나오기 전까진...
10/13 첫 시험 결과. 딱 중간 수준에 해당하는 점수.
뭔가 잘 봤다기엔 애매하고, 그렇다고 못 본거라고 하기엔 이력서에 쓸 수 있는 점수였다. 하지만 나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은 화가 나기도 했다. 해외여행에 나가서도 영어로 문제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토플을 공부하면서 영어 회화도 1년 정도 공부를 했던 기본기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서 속상했다. 물론, 1년의 공백기가 치명적이란 사실은 부정하지 않겠다. 그러나 나는 이 점수가 불만족스러웠고 그래서 다시 시험을 보기로 결정한다.
두 번째 시험은 11월로 신청했고 실질적인 준비기간은 3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 3일 마저도 공부에 올인하지 않았다. 중간중간에 요가 수련과 제주도 여행 등등으로 오픽은 시험만 잡아둔 채로 저 멀리 어디론가 제쳐둔 상태였다. 하지만 딱 1시간 정도는 집중해서 준비한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 공부한 방식이 첫 번째 시험과는 사뭇 달랐다.
1.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기
2. MP(main point) 먼저 말하기
3. MP가 먼저 나오지 않더라도 최대한 나의 주장, 근거를 논리적으로 제시하기
4. 나의 영어가 한국어로 들린다고 가정해도 전혀 듣는데 지장이 없는지 스스로 확인하기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 녹음을 해서 녹음을 다시 듣고, 내가 중요 부분을 먼저 말하는지. 중간중간 호흡이 너무 끊기지는 않는지. 전체적 맥락이 산만하지는 않은지를 파악하고 분석해서 유튜브에 나오는 모의고사 2세트 정도 풀었다. 첫 번째 시험 준비할 때는 할 말이 많아서 빠르게 이야기하다가 발음이 뭉개지고 좀 산만했는데 두 번째 시험에선 그 부분들이 많이 보완되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시험을 봤다.
11/20 두 번째 시험 결과. 두 번째로 높은 점수.
두 번째 시험을 봤을 때 나의 심정은 첫 번째 봤을 때보다 더 망했다 였다. 일단, 내가 중점적으로 준비했고 자신 있었던 기술, 환경 문제가 전혀 나오지 않았으며 첫 번째 시험 때와 거의 비슷한 질문들이 많이 나왔다. 그리고 하필 '공원' 주제가 집중적으로 나와버려서 별로 생각을 많이 해보지 않은 주제라 정말 순발력으로 승부하고 온 것이다. 롤플레잉도 아쉬움이 많이 나왔다. 좀 더 자연스럽고 깔끔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 한 부분들이 많아 스스로 불만족스러웠던 시험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보다 훨씬 더 높은 점수가 나왔다.
공부기간이 너무 짧고 공부도 많이 한 편이 아니라 3일 만에 나의 실력이 급격히 상승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나의 영어 말하기 실력은 10월이나 11월이나 똑같았다. 결정적인 차이는 마음가짐이었다고 본다.
내가 말했을 때 상대방이 잘 듣고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도 가끔 한국말할 때 너무 산만하게 이야기를 하면 잘 못 알아듣듯이. 영어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첫 번째의 나는 너무 산만했고 급했다. 그래서 발음도 꼬이고 하고 싶은 말만 해서 논리적으로 말도 잘 못했다. 그러나 두 번째의 나는 침착했다. 사람인지라 긴장도 되고 주제가 이상한 데로 흘러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 능청스럽게 넘기고 다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제시했다. 마무리도 확실하게 완결성 있게 지었다.
나는 이 두 번의 오픽 시험으로 어학공부에 있어 아주 중요한 점을 알게 되었다.
1.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일관성 있고 분명하게 제시할 것.
2. 내가 스스로 들어도 부자연스럽고 산만하다면 상대방도 그렇게 느낄 거라 생각해라.
3. 빠르게 말하기보다 또박또박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을 차분하게 말하라.
4. 사람은 실수를 한다. 그 실수도 유연성 있게 자신감 있게 넘겨라.
5. 말하는 내용의 문맥을 스스로 파악하라. 나의 주제 그리고 그에 따른 이유나 근거는 무엇인지.
위의 내용들은 전혀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거나 많이 들어봤을 법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라, 지나치거나 무시하기가 쉽다. 그렇게 가장 기본적인 부분들을 놓치고 마치 새로운 방법을 찾은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비단 어학시험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실생활에서 말하기를 할 때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다. 한국어로 말하기나 영어로 말하기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우리도 때론 중구난방으로 이야기를 들으면 잘 못 알아듣듯이 영어도 마찬가지 인 거다. 아무리 말하기가 중요하다 해도 너무 맥락 없는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트레스를 주고 피로감만 쌓이게 한다. 짜임새가 있고 중요 주제가 확실히 드러난 이야기는 그 사람의 발음, 억양에 관계없이 그 사람의 말하기 실력을 돋보이게 한다. 그것이 어쩌면 유창성일지도 모른다.
어려운 표현들을 쓰거나 말하기 양을 늘리기 등. 겉으로 치장하는 것은 결국 말하기 실력을 늘리는데 소용이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결국 핵심은 역지사지하라는 것. 내가 채점자 입장에서 이 사람의 말하기를 듣는다 가정했을 때, 나도 이 사람이 얼마나 자신감이 있고 명확하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는지를 먼저 평가할 것 같다. 언어가 달라도 결국 통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 점수가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결국 AL을 받아야 이 점수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싶다. 왜냐하면 나의 영어 어학 최종 목표는 토플 고득점이기 때문이다. 토플은 4가지 영역에서 평가하기 때문에 영어 공인시험 중에서도 굉장히 까다로운 편에 속한다. 적어도, 오픽이란 시험의 장벽을 넘어서야 토플에서도 좋은 점수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오픽이 유연함이 있는 시험이어도 결국 말하기의 맥락에서 깔끔해야 하고 논리적인 전개가 필요하듯이 토플의 말하기도 똑같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론 IH를 받은 시험에서도 부족함이 드러났고, 좀 더 자연스러운 회화적 표현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내년엔 그러한 부분들을 더욱 보완하고 말하기 연습을 한 다음 시험을 응시할 예정이다.
예체능인데 왜 이렇게 어학을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을 수도 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어학시험은 어학을 공부하는데 좋은 자극제가 되어준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인정받기가 좋다. 대외적으로 나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어떻게 기회가 올 지 모르는 세상이기 때문에 미리 외국어를 공부해서 나쁠 건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내 주변에도 외국어를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들 제2 외국어 하나쯤은 잘하는 특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다.
그래도 이번 오픽 2번 시험 경험은 내 어학 공부에 있어서 매우 상징적이다. 일단 학원의 도움을 일절 받지 않고서 스스로 내 실력을 진단, 판단, 평가하고 공부를 해서 시험성적을 받은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학원은 단기적으로 빨리 점수를 따기에 최적이다. 도움도 많이 되고 너무 좋지만 그만큼 학원에 투자한 시간과 돈에 대비하여 성적이 비례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실망감을 얻기가 쉽고 나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기 쉽다. 나는 영어 회화 1년 공부했던 기본 실력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몸소 체험했고, 앞으로 이 실력을 바탕으로 더욱더 나의 영어 말하기 실력을 갈고닦아야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중요한 건, 나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단 것이다. 나처럼 어학 공부를 하거나 어학 시험을 치르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다면 난 말해주고 싶다.
이미 시작만으로도 새로운 세상에 들어간 것이라고. 당신은 충분히 멋지다고.
우리는 다 멋지다. 그리고 잘 될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도전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당신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