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생각하는 정원

분재, 나무들이 알려주는 세상의 지혜

by 이소연


이번 마지막 휴가는 제주도였다. 하필 모더나 2차를 맞은 지 2주가 지나지 않아 요가원을 다니기가 약간 애매하던 터였다. 그래서 과감히 쉬기로 결정하고 제주도에서 마음껏 자연을 보면서 위안을 가지기로 했다. 그러던 중, 내 이목을 끄는 제주도 명소가 있었다. 그곳은 '생각하는 정원'이었다.



이 정원은 분재들이 모여있는 분재정원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정원 이름이 조금 특이한 것 같았다. 분재가 많은 정원에 왜 생각하는 이란 수식어가 붙었을까.


나는 원래 식물, 자연을 보기 좋아해서 종종 혼자서 식물원도 가곤 했는데 그곳에서 처음 본 분재가 너무 멋있고 강렬해서 분재를 좋아한다. 아기자기한 식물들 옆에서 고풍스럽고 위풍당당한 나무를 축소시킨 듯, 그대로 받침대 위에서 서 있는 모습이 처음 보는 것이었고 굉장히 인상 깊게 보았다. 그래서 이 정원에 가면 그러한 멋진 분재들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들뜨면서도 미리 정원의 정보를 검색해보았다. 한 블로거 분께선 이 정원 곳곳에 적힌 글들을 보라고 적극 권장하셨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이 정원의 특성을 알고 갔다.


아름답고 위풍당당한 자태의 주목.


이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정말 많은 분재들이 반겨주었다. 그리고 돌로 쌓은 돌담들과 연못, 푸른 나무들까지 한데 어우러진 정원은 실로 감탄할 만했다. 그리고 곳곳에 분재, 나무에 관한 글들이 적혀 있었는데 이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또 다른 삶, 인생에 관한 깨달음을 관철했다. 내가 가장 주목 있게 본 분재는 '주목'이란 분재였다. 이 분재의 존재 자체의 설명글이 마음에 와닿으며, 내게 왠지 모를 위안과 용기 그리고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주목은 특성상 뿌리 끝이 가늘어서 물을 흡수하는 양이 적고 강한 햇빛도 싫어한다고 한다. 그래서 성장이 더디게 자란다. 그러나 오히려 그 더뎌짐으로 인해 더욱 견고하고 단단해지며, 천년의 세월을 살아간다고 한다.


나는 나 자신이 남들보다 느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공부든, 운동이든 무엇을 하든. 무언가를 터득하고 이해하고 습득하는데 남들의 배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다. 그래서 이런 나 자신이 참 미울 때가 많았다. 그러나 주목이 나와 비슷하지만 그런 자신의 특성을 강점으로 승화시켜 살아가는 그 글을 보고서 나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란 무언의 위로, 희망을 받았다. 그 느낌은 사람의 말로써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나무가 내게 알려준 자신의 이야기였기에 가능했다. 주목 특성에 관한 글은 내 마음속에 깊은 감동과 잔잔한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너무 빨리 성장하는 것은 무너지기 쉽습니다. 하나하나 소중히 다듬어가며 천천히 성장하는 것이 기초가 단단하게 되어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작은 것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이 정원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잘못 알고 있었던 분재의 역사와 이 정원을 일궈내신 성범영 원장님의 이 정원을 만들기까지의 고군분투 인생사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속에서 이런 찬란한 정원을 만드신 의지와 용기 그리고 진취적인 도전정신은 실로 감탄할 수밖에 없다. 오직 '분재'만을 바라보시고, 본인의 만들고자 한 정원을 꿋꿋이 제주도에서 그려내신 거다. 그리고 분재들을 기르시면서 생기신 남다른 통찰력으로 나무, 분재들이 일깨워주는 삶의 철학들을 아주 멋지게 글로 남기셨다.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분재를 보기에 가장 적기인 시기가 겨울인데 그 이유는 잎과 꽃이 다 떨어진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나무의 본질, 본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다.



이번 정원 방문을 통해 단순히 분재를 나무를 소형화시킨 거라 여겼던 나의 무지함을 알아차리게 되었고, 생각보다 깊이 있고 울림이 진했던 나무와 분재들의 이야기들 속에서 난 긴 시간 동안 정원에 머무르며 사색에 잠겼다. 한 분야에 통달의 경지에 오르신 분들에겐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이 정원을 만드신 원장님께서 나무를 통해 삶의 지혜를 깨달으신 것처럼, 내가 요가를 통해 나와 삶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왠지 모르게 비슷하고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야가 다를 뿐, 그 내면 속 깊이와 지혜들은 결국 통하게 되어 있나 보다.


정원을 방문할 당시 남긴 방명록.


나는 사실 이 정원에 방문하면서 원장님까지 뵐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코로나로 새로운 정원을 가꾸고 계신 원장님을 뵈었다. 비 오는 날 속에서도 열심히 나무를 가꾸시는 열정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내가 열심히 글을 읽으니 원장님께선 내게 정원의 상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그분의 얼굴엔 자부심과 벅찬 감동이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따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도 가지게 되었는데 간단히 정원에 대한 감상과 정원의 앞으로의 계획들 등등을 이야기하고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한 분야의 정점에 다다르시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원을 일궈내신 분에게도 나름의 고민이 있으셨다. 아직 우리나라엔 이 정원에 나이 많으신 분들께서 주로 찾으신다고. 그리고 글을 읽는 분들이 드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원장님은 나이가 지긋하심에도 계속해서 이 정원의 꿈을 계속 꾸시는 듯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원이지만 아직 우리나라엔 지명도가 생각보다 그 명성에 비해 낮은 듯했다. 세계 곳곳의 명문대 학생 분들이 방명록을 남기고 이 정원에 대한 감상을 원장님과 나눠주셨지만 아직 우리나라 학생 분들은 그렇지 않았다. 원장님께선 내게 이러한 진솔하고도 씁쓸한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아, 아직 이 분의 꿈이 실현되지 않았구나. 세계에서 여러 나라 사람들의 인정보다 더 받고 싶으신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특히 젊은 청년 분들의 진솔한 방문과 감상이구나. 그래서 미래를 울창하고 빛나게 가꿔나갈 사람들이 이 지혜와 생각들을 가지고서 무던하고 올곧고 강직히 세상을, 나라를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그러한 꿈을 꾸시는 것은 아닐까란 나의 조심스러운 예측이다. 이제와 다시 곰곰이 되새겨보니 정원 초입 부분에 그러한 소망이 담긴 글이 있던 것 같다. 한결같으신 마음과 진심으로 계속해서 우리나라 학생 분들의 방문을 바라신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염원을 바탕으로 한 바람이 계셨다. 그것은, 우리나라 젊은 세대분들도 이 정원에 많이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분재, 정원의 경치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정원 속 곳곳에 놓인 글들을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내가 듣고 느꼈던 것은 크게 이 두 가지였다. 생각해보면 이 정원을 주로 관람하셨던 분들은 주로 중장년층 분들이 많으셨다. 그리고 생각보다 나처럼 젊거나 학생이신 분들이 적었다. 나는 그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중에 정원에 대한 리뷰를 읽으니 보통 부모님께 추천드린다는 글들이 많았다. 왜 연령이 높으신 분들만이 분재, 이 정원을 좋아할 거라 예단한 걸까. 그나마 정원에 들러주신 분들 마저도 글을 읽는 분들이 잘 안 계셨다. 그래서 원장님에게 그 많은 사람들 틈 바구니에서 유독 글을 읽고 다니는 내가 눈에 뜨이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볼 적에 글을 읽고 자연을 바라보며 사색하는 공간은 절대적으로 나와 같은 청년들에게 필요하다. 우리 세대는 각박한 시대 속에 무한한 경쟁을 하며 쉴 틈 없이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못하며 그저 눈앞의 목표와 성취에 몸과 마음이 멀어져 있다. 마치 눈이 먼 것처럼. 그래서인지 요즘엔 힐링, 마음 돌보기, 자존감 키우기 이런 키워드와 주제들의 강연과 책들이 많이 나와있다. 불행히도 현대사회인들이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고 그 해답을 밖에서 얻으려 한 탓도 한몫할 것이다. 물론,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구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잠깐의 위안과 구원보다 스스로 느끼고 깨달은 바를 곱씹으며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키는 과정이다. 내가 이 정원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었던 이유는, 글을 읽고 느꼈던 자기반성과 성찰 그리고 나의 삶을 되돌아보며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무의 지혜를 직접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졸업작품을 준비하기 전, 고단한 과정을 겪기 전에 많은 힘을 이 정원 속에서 얻어갈 수 있었고 내적으로 단단해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무리 남이 알려주는 지식, 지혜를 얻어간다 한들 그것을 잠시 듣거나 보고 흘려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잠깐의 찰나가 무슨 의미를 전해줄 수 있을까. 나는 현대인들이 너무나 쉽고 빠르게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 정원은 그러한 우리네의 삶의 방식을 조용히 비판한다.



분재와 나무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시련이 없는 인생이 없다고 말하고, 느림이 곧 견고함이 되는 전환을 알려주며 오래된 가지들을 솎아내야 새로운 가지들이 자란다고 알려준다. 당장에 우리들 스스로조차 돌봄과 애정과 관심이 없는데 우리는 무엇에 행복과 쉼을 놓치며 살아가는 걸까.



이 정원에서 사람들이 분재들의 이야기를 읽고 곱씹으며 성찰하고 사색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그런 분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며. 특히 나와 같은 미래를 일궈낼 학생, 청년분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며 부족함이 많은 글임에도 묵묵히 이곳에 적어본다.


글들을 읽고 분재들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놓치고 있던 여러 가지 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생각하는 정원이 아닐까?(순전히 나의 의견이다.) 나중에 제주도에 가게 된다면 또 들를 것이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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