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대화

나는 왜 남을 그렇게 위하고, 나를 가볍게 여길까

by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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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엄마와 함께 밥을 먹을 때 일이다. 엄마와 나는 종종 식사를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하루 일과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을 이야기하는 편이다. 때론 긍정적인 대화가 흘러가지만 때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날은 유난히 나의 마음이 불편한 듯 아닌 듯했다. 그래도 별생각 없이 흘려버렸는데 나중에 밥을 먹으면서 엄마에게 무심코 이야기를 했다.


" 엄마. 내가 평소에 좋아하고 잘 따르는 사람이 내게 이렇게 말했었어."


엄마는 차분히 그저 이야기를 듣고만 계셨다. 나는 그렇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 나는 처음엔 이 사람이 평소에도 내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일깨워주니까 들었을 땐 괜찮았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조금 뭐지? 싶은 거야. 필요한 부분만 이야기해주고 알려주면 되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고."


그러자 나의 말을 다 듣고 계셨던 엄마는 한 마디를 했다.


" 네가 '뭐지?'라고 생각한 순간, 넌 괜찮지 않은 거야."


나는 잠깐 멈칫했다.


" 그런데 그렇게까지 기분 나쁘진 않았고... 그냥..."


" 아니, 정말로 괜찮았다면 그냥 흘려보내도 되는데 왜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겠어? 그건 너 자신이 네게 보내는 일종의 신호야."


엄마의 말씀을 듣자 나는 내가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나의 내면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남에게 쓴소리를 듣고서 기분이 썩 괜찮지 않았던 '내'가 있었다. 평소에 요가 수련을 하면서 나는 나에 대해 조금씩 잘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역시나 오만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날 남한테서 그런 소리를 듣고서 사실 괜찮지 않았다. 기분이 나빴지만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연륜이 있다고 생각해 감히 대꾸할 생각도 못 했던 거였다.


" 네가 기분이 나빴다는 걸 이야기하는 건 나이와 상관없어. 중요한 건 네가 기분이 나빴냐 아니냐야."


나는 그래도 머뭇거리며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 그래도 나 혼자만 잘 넘기면 되는 문제 아닐까? 사실 상대방은 나쁜 의도로 그렇게 이야기한 건 아닐 테고..."


그러자 엄마는 이야기했다.


" 그런데 네가 안 괜찮잖아. 상대방은 그렇게 위하면서 왜 정작 너 자신은 그렇게 바라보지 못해."


나는 그때 무언가 묵직한 울컥함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애써 외면해왔던 나의 심정. 나의 마음. 내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필사적으로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었다. 나는 나이기에 그렇게나 가볍게 여기고 정작 남을 그렇게나 위하고 있었음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렇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은연중에 '착한 사람'을 연기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실제로도 '착한 심정'을 타고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착함'이 '내'가 아닌 '남'에게 맞춰지는 기준이라면 그것은 착함이 맞는 것일까? 남에게 잘 대해주는 것이 나 자신을 소중히 대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표면적으론 훨씬 값져 보이고 좋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남을 신경 쓰면서 나의 상태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나의 마음이 어떻게 곪아 터지는지 알아차라지 못한다면 결국 '괜찮지 않은' 나를 마주하게 된다.


결국 그날 나는 내가 남한테서 듣지 않아도 됐을 소리를 듣고 기분이 상했고 괜찮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그리고 인정했다.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엄마는 내게 말씀하셨다.


" 다음번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반드시, 그 자리에서 그 순간에 이야기를 해야 해. 네가 엄마에게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 사실 그런 소리를 듣고서 괜찮지 않았다. 그런 소리를 들을 만큼 내가 어리지도 않고, 맹하지도 않다. 네가 그런 사람이란 걸 다시 명확히 이야기를 해. 그 '한번'이 어렵지만 그 '한번'이 중요해."


" '한번'..."


" 그래,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 '한번'을 하면 아무도 너를 그렇게 쉽게 생각하거나 대하지 못해. 그러니 그 '한번'이 어려운 거야. 하지만 하고 나면 두 번째는 아무것도 아니야."


살아가면서 사회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교류하거나 친목을 맺게 될 때도 있고 그 속에서 상처를 주거나 받기도 한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인간관계 속에서 나는 나를 끊임없이 외면하고 돌아보기를 뿌리쳐왔다. 계속 도망쳐왔다. 나 혼자만 참는다면 괜찮다고. 나 혼자만 넘기면 괜찮다고. 그래야 이 사람과의 관계가 나빠지지 않을 테니. 예민한 건 나 혼자 뿐일 거라고.


하지만 결국 그 끝은 '나는 괜찮지 않았다'였다. 곪아 터지고 썩어서 악취가 풀풀 날 정도까지가 되어서야 나는 겨우 나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그 곪은 마음을 어루만져준 건 엄마의 조언과 사랑이었다.


그 '한번'을 실천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할지. 그렇지만 해보려고 한다.

온전히 '나'를 위해. 나는 외칠 것이다. 그래서 훨씬 수월한 '두 번'을 만날 것이다.


"나는 사실 괜찮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당신이 이야기를 해서 나는 기분이 나빴다.


그러니, 그러게 이야기하지 말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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