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대화 2

남들에게 나를 낮추지 말자

by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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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졸업 프로젝트 준비와 작업으로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그 속에서도 기존에 하고 있던 피드백 모임도 계속 꾸준히 참여하고 있었다. 아이디어가 막히거나 의견을 구할 때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내가 생각지도 못 했던 부분들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정말로 이 피드백 모임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던 때였다.


나의 졸업작품은 내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의 트라우마에 대한 표현이 초반부에 나오는데 나의 몸에 대한 외부의 억압적인 시선을 나는 '손'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손가락질하는 모습으로 묘사를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소모임에 있던 한 학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 손가락질당해보셨어요? "


나는 그 순간 당혹스러웠지만 내 나름대로 설명을 했고 그날은 그렇게 넘어갔지만 내 마음 한 편에서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분명 선을 넘은 발언이었고 상당히 무례한 말이었음에도 나는 그 말에 대해 기분이 나쁘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서 시간이 좀 지나 또다시 마주한 피드백 소모임 시간. 나는 그때 미리 소모임에 들어온 학우에게 말했다. 이번엔 나는 피드백을 받지 않겠다고. 그렇게 나까지 총 세 명이서 소모임이 진행되었는데 한 학우의 작품을 보고 각자 의견을 낸 후 마무리가 되려던 찰 나, 피드백을 받은 학우는 끈질기게 내게 피드백받으라는 권유를 했다. 나는 다시 한번 피드백을 받고 싶지 않다고 하였으나 다른 학우가 내게 할 말이 있다는 빌미로 말하는 피드백 때문에 듣고 싶지도 않았던 피드백들을 강제로 들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때야 말로 당당하고 똑 부러지게 말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나는 기분이 나쁘다. 듣고 싶지도 않다는데 왜 자꾸 말하냐. 그러나 그때의 나는 정말 순진하게도 그때 들었던 피드백들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열심히 또 듣고 메모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남의 의견을 구할 때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피드백들 때문에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남들의 의견과 나의 생각. 처음엔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고 스토리를 명확히 할 때만 해도 너무 도움이 되었던 피드백 소모임이었으나 이젠 오히려 그 소모임에서 들었던 피드백 때문에 내가 발목이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와 표현들이 마치 남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보일까 봐. 내가 하고자 한 것들이 남들이 이야기를 해줘서 이렇게 된 것일까 봐. 어느 순간 내가 생각한 방향성과 맞지 않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는 엄마와의 통화를 하다가 소모임 이야기를 했는데, 엄마는 차분히 듣고 계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 그동안 네가 너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때 저 자세로 들어서 그래. 항상 '네'하고 듣고 있잖아. 그렇게 들을게 아니라 듣고서 '음. 생각해볼게요.' 이렇게 마치 네가 꼭 그 의견을 따르지 않겠지만 고려는 해본다는 식으로 반응을 했어야 더 좋았을 텐데. "


그동안의 내가 너무 타인의 의견들을 들을 때 나도 모르게 저 자세로 수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그리고 피드백 듣고 싶지 않다는 말도 간결하게 톤을 낮춰서 이야기하지 않고 네가 또 구구절절 설명을 하면서 사족을 붙이니까 남들에겐 그 말이 와닿지 않았던 거야. "


거절하고 내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할 때 나는 너무 많은 말들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결국 나는 첫 단추를 잘못 꿰고 있었으며 단지 같은 졸업 프로젝트를 수강하고 있는 학우들이란 사실만으로 나는 나 자신을 너무 낮춰버린 것이다. 이 사실이 참 뼈 아프고 괴로운 사실이었지만 직시해야 했다. 앞으로 살면서 이런 순간과 상황들이 많이 생길 것이기 때문에.


" 그런데 이런 것들은 다 경험을 해야 아는 것들이고 이런 부분들은 네가 잘 명심하고 있다가 다음에 이런 상황이 또 왔을 때 또 안 그러면 되는 것들이야. 그래도 피드백을 받고 싶지 않을 때 받고 싶지 않다고 말 한건 정말 큰 발전이야. "


" 응. 내가 이 소모임을 너무 좋게만 보고 다른 학우들의 이야기가 초반에 도움이 돼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저 자세로 낮춰 듣고 있었나 봐. "


엄마는 이 소모임이 더 이상 내게 의미가 없고 앞으로도 다른 학우들의 이야기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으면 과감하게 그만두라고 하셨다. 나는 점점 이 소모임 때문에 시간을 맞추고 비우고 기다리는 이 일련의 과정들에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소모임에 출석하는 인원 수도 줄고 있었다.


" 네가 그동안 소모임에 꼬박꼬박 성실하게 나오고 사람 좋게 있으니 너를 편하게 대해도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 좋은 사람을 왜 좋은 사람 그 자체로 보지 않고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멋대로 판단하는지... 그런 사회가 이상한데 말이야."


엄마의 직설적이지만 뼈 있는 충고와 말씀들은 또 한 번 내가 마주해야 하는 중요한 사실들을 기억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 그리고, 졸업 프로젝트에서 교수님께서 너희들한테 자꾸 수업시간에 다른 사람들 작품 보고서 이야기를 하라고 하시잖아. 그때 계속 말하는 연습을 해야 돼. 그래야 남들에게 내 이야기를 할 때 호소력이 생기고 말하는 방식도 늘게 되는 법이야. 그런 과정이 쌓이면 말이라는 게 '힘'이 생긴단다. "


" 그렇구나. 나는 그동안 그 말 하는 시간이 별 거 아닌 줄 알았어. 그리고 다른 사람들 작품을 봐도 딱히 할 말도 없었는데."


" 아니야. 적어도 그 작품을 보고서 네 느낌이라도 이야기를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 그리고 남들이 다른 사람들한테 의견을 말할 때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도 잘 살펴봐. 그러면 너도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감이 생길 거야. "


그렇게 나는 다정한 엄마의 위로를 듣기는커녕, 마음이 어쩐지 많이 아파오는 그런 말들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 통화 이후로 나의 마음은 어쩐지 후련해졌고 더욱 명확해졌다. 내가 불편하고 기분이 나쁘다면 그것은 나와 맞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의도가 그게 아닐지언정 내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런 것이다. 나는 그렇게 또 한 번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하는 방식과 대하는 태도에 대해 고찰해보게 되었다.


인간관계가 이래서 어렵다고 하는 건가 보다.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고 항상 늘 새롭다. 그리고 버겁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이 계속해서 내 앞에 올 것이다. 그때마다 지나치거나 외면한다고 그 본질적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곰곰이 생각하니 언젠가 마주했던 것들은 다시 되돌아오게 돼 있다.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대하고 슬기롭게 대처할 것인가. 나는 엄마와의 통화로 조금이나마 실마리가 잡혔다. 계속 꾸준히 경험하고 나를 다듬어야 한다. 그래서 할 말을 똑 부러지게 호소력이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발표도 계속 앞에 나가서 연습했더니 좋아졌던 것처럼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도 좋아질 수 있게.


너무 어려운 과정 속에 있지만 그럼에도 나아가 보기로, 나 자신과 힘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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