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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Jun 05. 2022

'10년'을 버텨라

엄마가 내게 알려주신 '성공'의 공식

 우리 엄마는 옛날부터 티브이나 책을 많이 보셨다. 티브이도 그냥 오락으로 보시는 것이 아닌 다큐멘터리나 역사 프로그램 혹은 각 분야에 성공한 사람들의 일대기를 다룬 것들을 주로 보시곤 했다. 그렇게 알음알음 차곡차곡 쌓인 엄마의 지혜 보따리엔 꽤 많은 이야기들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엄마랑 같이 이야기를 나눌 때 엄마는 내게 엄마의 지혜를 나누곤 하셨다.



내가 중학생 때부터 엄마가 숱하게 외쳐온 말이 있다.





소연아, 네가 어떤 분야에서 뭘 하던 꼭 거기서 10년은 버텨야 해. 10년!




엄마의 말씀에 의하면 성공한 사람들이 각 분야에 매진하고 실패하고 여러 경험을 통해 쓴맛을 맛봐가며 버텨온 세월의 공통점이 바로 '10년'이라는 것이었다. 엄마 또한 이 '10년'의 공식을 어떤 책에서도 어떤 프로그램의 누군가의 인터뷰 속에서도 봤다고 하셨다. 심지어 요즘은 BTS에 빠져 계시는데 이 유명 아이돌 그룹 또한 아이돌에 매진한 지 6년이 넘었다고 하셨다. 이렇게 '10년'이란 세월의 공통점은 많은 이들이 증명해주듯 일종의 공식처럼 내 마음속에 자리매김했다.


왜 하필 '10년'일까? 10년이란 시간은 정말 까마득하다. 결코 짧지만은 않다. 오히려 너무 길어서 잘 와닿지 않을 정도이다. 10년이란 세월 동안 많은 것들이 변할 수 있고 실제로 변해왔다. 당장 나의 10년 전만 생각해도 나의 10년 후를 가늠하기란 어려웠다. 그러나 20년, 30년이란 세월과 비교하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다. 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속에서 묵묵히 본인이 하고자 하는 바를 버텨낼 수 있어야 비로소 그 분야에서 자신의 꽃을 피워낼 수 있는 것이다.


당장 내가 하고 있는 분야만 생각해도 창작, 예술이란 분야는 얼마나 고달픈가. 매일매일이 다르고 새롭고 심지어 유행도 시시각각 변화한다. 더군다나 요즘은 예술의 한계치나 경계선이 불분명해져 여러 작업들과 분야들을 오고 가는 사람들 또한 많아졌다. 내가 하고 싶은 분야 중 하나를 들자면 역시 '애니메이션'이다. 그리고 이 분야 또한 결코 만만치 않다.


내가 하고 싶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4학년에 들어서 명확해졌다. 나는 이야기, 세계관을 창작하고 독창적인 소재를 발굴하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일러스트를 그리는 데에 흥미와 실력을 가졌다. 이는 그간 다양한 대학 수업들을 수강하면서 교수님이나 다른 학우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깨달은 것이다. 1학년 시절, 한 교수님께선 내게 어떤 직업을 하길 원하냐고 질문하셨고 나는 세계관을 구축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캐릭터를 창조해서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고 포괄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건 오랜 기간 동안 변하지 않았던 나의 꿈이었다. 그랬더니 그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감독이 되고 싶은 거구나.



교수님의 말씀에 나는 그때 얼굴이 붉어졌다. 어떻게 감히 내가 감독이란 높은 직책까지 오를 수 있을까. 내가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면서 작품을 지휘할 수 있을 만한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해외 여러 작품들과 감독님들을 보면서 나는 서서히 애니메이션 감독이란 꿈을 키웠다. 여기서 밝히자면 나는 야망이 큰 야망가이다. 나는 나만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개성을 계속 가꿔나가고 발전시키고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창작을 이어오고 싶다. 그리고 내 작품을 해외 영화제에 출품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고 싶은 욕망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 산업은 이전보다 많이 발전해왔지만 여전히 박봉으로 취급받는 데다 애니메이터는 기술력을 더욱 요구받는다. 독창성과 창의성을 많이 필요로 하는 직책은 비주얼 디벨롭먼트 아티스트였다. 콘셉트 아트, 캐릭터 디자인 등등 작품의 핵심 키 비주얼들을 다루고 담당하는 역할이다. 스튜디오에서 본인만의 작품을 확고하게 밀고 나가려면 '감독'이란 우두머리가 되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대중성을 중요시하는 메이저 스튜디오 특성상 너무 마이너 하거나 대중적이지 못한 기획의 작품은 반려될 가능성이 높다.


스튜디오마다 다르겠지만 (전체 콘셉트는 감독이 잡고 세부적 이야기나 시나리오를 다루는 건 따로 시나리오 작가를 섭외해서 이야기에 살을 붙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우선 포괄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내가 알기론 이렇다. 그리고 그러한 최상위 계급으로 올라가려면 그만큼 밑바닥부터 구르고 경험하고 버텨야 가능하다. 그렇게 사람들은 본연의 야망을 잊어버리고 업계를 떠난다. 


나는 졸업을 앞둔 시점부터 이제 운명적인 '10년'의 카운트가 들어갔다고 본다. 혹은, 내가 대학교에 들어선 시점부터 '10년'의 카운트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이 창작의 소용돌이 속에서 꿋꿋이 버텨내야 하는 것이다. 대학 생활 동안 울고 웃으며 나는 과제를 해왔고 나의 창작 욕구를 뿜어냈다. 그리고 나는 학과와 참 잘 맞은 운 좋은 학생이었다.


이제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게 되면 학교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고난과 시련 그리고 역경에 부딪혀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고 발표하고 하게 되려면 그만큼 얼마나 나를 갈고닦고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깨져보기도 하며 속앓이를 하게 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과정들의 순간들은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나는 이 운명의 '10년'을 버텨내야만 한다.


정말로 10년을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정말로?라고 수없이 되뇌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오고 만화를 보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나의 '천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날 때부터 이미 '그림쟁이'였다. 그동안 그림을 그리면서 참 행복했고 즐거웠고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 그런 존재를 일찍부터 깨달았고 만났기에 미대를 준비했고 치열한 입시를 거쳐 지금까지 잘 견뎌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버텨야 할 세월이 산적해 있다. 솔직히 두렵다.


미대에 오면 다 해결되는 줄로만 알았던 취업, 앞으로의 생활 목표 등등은 사실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동기들도 막막한 사회의 쓴맛을 봤다. 취업한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여전히 취업준비는 힘이 들기만 하고 회사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던 이상과 완전히 멀었다고 했다. 대학은 시작일 뿐이라고. 대외적으로 인정받는 시작의 단계일 뿐 그 단계의 계단을 만들어가는 건 순전히 우리들의 몫이었다. 대학은 결코 완전한 보상의 안전지대가 되어주지 못했고, 우리의 안정된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았다. 그것을 대학에 와서 깨달았다.


그렇다고 회의적으로 있을 내가 아니다. 나는 졸업과정을 진행하면서 부단히 영어공부를 (많이는 못하지만) 틈틈이 하고 있고 내년엔 미국 인턴십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 자격증 준비를 할 예정이다. 길을 개척해나가고 전진하는 일이 참 고된 요즘이다. 그러나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계속 꿈을 꾼다면 결국 그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지점에 오르기까지가 평균 '10년'이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느리던 빠르던 어떻던 결국 10년이란 세월이 걸려야 혹은 거쳐야 우리가 원하는 이상향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분야에서의 깊이가 생겼을 것이고 통찰력이 생겼을 것이고 실력이 더욱 뛰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 어떤 글을 본 적이 있다. '지금 당장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오롯이 그 성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나는 아니다. 내가 온전히 성공을 맞이할 수 있도록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유명하지 않은 지금을 소중히 여긴다면 나중에 맞이할 성공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그런 뉘앙스의 글이었다. 나 또한 지금 당장 큰 성공을 한다고 기쁠까? 지금의 나는 그 성공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내적 성장과 통찰력과 실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 자신을 착실히 갈고닦고 실력을 키우고 더 많은 다양한 경험들을 쌓았을 때 그래서 그 성공을 받아들일 충분한 준비가 되었다 느낄 때 오롯이 그 성공을 누릴 수 있을 거라 예상해본다.


그 성공을 맞이할 충분한 시행착오와 무수한 실패 그리고 좌절감 등등의 과정은 10년이란 세월을 통해 겪어야 할 성장통 같은 것이다. 그래야 충분히 성공을 누릴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10년을 되새기며 내 나름대로 이 분야에서 처절하게 그리고 지독하게 버텨내 보기로 다짐한다.


10년 후에 내가 이 글을 본다면 스스로 기특해서 죽을 지경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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