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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Jun 15. 2022

일단 책 한 권을 들어보자

책과 내외하던 내가 독서를 취미로 가지게 된 이유

 스트레스는 항상 존재한다. 누구든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순 없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주는 존재는 다양하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오기도 한다. 나는 지금 내 대학생활 중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시기를 보내는 중이다. 동시에 스트레스를 무지막지하게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어느덧 4학년 1학기의 종지부를 찍었고 이번 주 2차 제작발표회가 마무리되고 나면 여름방학 때부터 졸업작품 제작에 들어간다.


이번 4학년 생활을 지내며 요가 수련하기와 더불어 나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 늘었다. 나는 원래 서점에서 책을 구경하는 건 좋아했지만 책과 친한 편은 아니었다. 한 달에 읽은 책이 1권이 될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적은 수의 독서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나는 평소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건 잘했지만 오히려 개인과 일대일로 마주 보며 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데에 있어 굉장히 취약했다. 그러한 취약점은 졸업 프로젝트를 수강하며 깨닫게 되었고 졸업작품 피드백 모임에서도 여실히 느꼈다. 그런 내게 엄마는 책을 권유하셨다.


독서를 시작한 데에는 거창한 이유가 따로 없었다. 단지 개인 앞에만 가면 나는 양처럼 오들오들 떨리고 내가 생각한 대로 논리적으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각을 알 수 있는 책을 통해 글자를 자주 접하면서 말하는 법을 고민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책은 실제로 글을 많이 읽고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사람들의 방식을 알 수 있는 검증된 매체이기도 하다. 거기에 저자의 통찰력까지 엿볼 수 있다는 건 덤이다.


의외로 엄마의 처방이 나한테 잘 먹혔는데, 내가 집순이가 아닌 천상 떠돌이라는 점과 책을 읽으려면 어떻게든 실내를 나와 도서관이든 어디든 책이 있는 곳으로 직접 떠나야 한다는 점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처음엔 책을 거창하게 읽을 생각이 아니었으나 책이 있는 장소로 가는 것만으로도 내겐 작은 여행이 되었고, 가는 여정이 참 황홀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처음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을 기점으로 점차 독서문화공간과 독립서점으로 발을 넓혀갔다. 


이번 학기의 나의 첫 책은 인간관계에 관한 책이었다. 의사소통과 인간관계를 슬기롭게 대처하는 법은 어떤 게 있을까 하며 학교 도서관에서 한 책을 빌려 읽었다. 그 한 책을 읽는 데에는 꼬박 1달이 걸렸다. 당연히 나는 책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너무 오랜만에 집어 든 글자들의 무수한 나열들이 적응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명쾌한 마음가짐과 해답들을 제시해주었고 나는 1 챕터씩 차분히 꾸준히 읽어나갔다. 마치 해소되지 않았던 무언가를 속 시원하게 긁어주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묘한 상쾌함과 쾌감을 느꼈다. 처음 독서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한 권을 꼭꼭 씹어 소화시키자는 마음으로 차분하고 느긋하게 한 페이지를 넘겨나갔다.





그렇게 1권을 정독하고 나니 이젠 다른 책들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요즘 굉장히 관심이 많은 원예, 가드닝에 관한 책을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학교 도서관뿐 아니라 독서문화공간까지 방문하게 된다. 문화공간은 굉장히 시설 자체가 크고 잘 관리되어있었고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책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독서문화공간에서 관심 있는 분야에 꽂힌 책을 하나씩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감각적인 식물들 사진과 저자만의 감성이 담긴 글들을 읽어나가면서 간접적으로 힐링이 되었고 내가 알지 못했던 식물 관리 방법을 상세히 알 수 있어서 여러모로 유익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감탄했던 건 비슷한 주제나 같은 주제라 하더라도 어디에 집중해서 자신만의 시각으로 글을 쓸 것인지에 따라 굉장히 다르고 특색 있는 책들이 나온다는 점이 신기했다. 책을 읽으면서 브런치 글쓰기에 적잖은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점차 관심분야 책들도 하나둘씩 섭렵하고 나니 좀 더 독서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래서 나는 번번이 실패한 세계사 서적에 도전했다. 그리고 현재, 엄청 두꺼운 세계사 한 권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와 절반 정도 틈틈이 읽었다. 지금도 세계사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보면 볼수록 흥미진진한 사건들 투성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예전엔 관심 없었던 분야에 대해 새롭게 공부하고 깨우치며 알아가는 배움의 즐거움을 다시 느끼는 중이다.


처음엔 글자가 까마득하고 책에 집중하려고 하면 딴생각부터 나고 재미없고 따분하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읽고 싶은 관심분야부터 먼저 시작했다. 조바심 내지 않고 나의 읽는 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정독한다는 느낌으로 읽어나갔다. 제일 중요한 마음가짐은 절대 내가 이 책을 다 떼야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과 생각을 한번 들어본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먹었다. 그랬더니 책은 더 이상 딱딱한 활자들의 산물이 아니라 한 저자의 생생한 이야기가 글로 풀어져있는 매력적인 존재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독서에 재미를 붙이면 점점 책이 재밌어지고 책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고 하던데 정말로 그렇다. 정독이 점점 속도가 붙어 속독이 되고 속독이 뒷받침되니 읽는 책의 권수도 늘어나 다독이 된다. 나는 현재 일주일에 못해도 2~3권의 다양한 책들을 꾸준히 읽는다. 요즘은 시간 내어 독립서점으로 가서 비주류를 다루고 있는 독서들을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있다. 그리고 나의 취향과 딱 맞아떨어지는 책 한 권도 구매했다. 나의 취향에 대해선 나중에 글로 한 번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독서가 취미가 되니 세상이 또 다르게 보인다. 매력적인 글감들이 넘쳐나고 흥미로운 분야들이 이렇게나 넓고 많았으며 세상엔 각기 다른 시각들이 모여 다채롭고 아름답게 구성이 되어있구나. 늘 배움의 세계가 펼쳐져있었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건 전적으로 나의 몫이었다.


독서가 습관으로 자리하기까지 숱한 시행착오가 당연히 있었다. 다 못 읽은 책들도 많았으며 도서관에서 잠깐 읽다 만 책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나를 자책하기보다 내가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다른 책을 찾았고 책을 읽기 싫다면 그저 도서관을 가는 그 여정만이라도 즐기며 나를 바쁜 생활 속에서 환기시켜주었다.


책이 내가 정복해야 하는 지배 대상이 아니라 내가 몰랐던 세상의 지혜를 알려주는 고마운 존재로 받아들이니 글자가 글자로 보이지 않았고 마치 내게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처음엔 한 권으로 가볍게 시작하여 점차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나 스스로에게 만들어주고, 책이 있는 공간에 나 자신을 어떻게든 자주 접하게 하니 나 스스로 자연스럽게 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결국 책을 들어 읽기 시작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책 읽기, 독서. 처음이 힘든 법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은 쉽다. 그러나 그 처음부터 성공하려 하는 강박이 처음을 시도하게 하기 꺼려지게 한다. 책 한 권을 들었다면 어떻게든 다 읽어야지. 쪽팔리게 이것도 다 못 읽고 말다니, 나는 어른이 맞나? 이런저런 거창한 목표의식이나 암울한 자책감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다. 읽다가 힘들면 잠시 멈추면 되고 읽다가 피곤하면 다른 책으로 환기해도 좋다. 책에 잡아먹히는 게 아니라 책을 읽는 그 순간에 집중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몰입의 순간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다면, 책 한 권을 어떻게든 다 읽어낸 경험을 한다면 분명 책이 좋아질 거라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책의 종류와 책들이 가지고 있는 분야의 정보들은 무수히 많다. 전자책들도 많고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정보량도 무궁무진하지만 그래도 역시 종이질감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나는 포기할 수 없다. 요즘 요가 서적들 특히 요가 에세이들도 읽는 중인데 같은 요가를 하는 사람으로서의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같이 요가를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따스해진다. 그리고 요가원에 가지 못하더라도 간접적으로 요가를 한다는 느낌도 든다. 


책 속으로 빠져들면 한 동안 바쁜 삶 속에서의 소용돌이에서 잠시 벗어나 나에게 심적으로도 편안함을 줄 수 있다. 일상에서 접할 수 없었고 알 수도 없었던 새로운 지식의 분야에 들어갈 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마치 정신적으로 잠시 어딘가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나는 스트레스를 독서로 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졸업작품도 압박이 아닌 즐거운 작업으로 인식이 전환되었다.


그리고 독서를 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개인과의 소통에 있어서 나의 말하기 방식과 마음가짐, 태도가 전보다 훨씬 간결하고 분명하며 명료해졌다는 점이다. 더 이상 교수님과의 일대일 피드백에서 나는 떨지 않았고 나의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에 집중 있게 경청하고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독서를 하며 지식을 얻는다는 점도 분명 큰 이점이지만 사람의 의사소통 방식,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을 간접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읽으며 스스로 체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일단 권한다. 책 한 권을 뽑아보자. 들어보자. 한 장이라도 눈도장을 찍어보자. 거창한 목표의식 따위 저 멀리 제쳐두고 일단 읽어보자.





책을 들기 전의 자신과 책을 읽은 후의 자신은 분명 다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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