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대원 썰수첩 #6

할머니와 요구르트

신고자의 위치로 출동하던 김행복 구급대원이 주소를 보며 말한다.

“그 집 같아요. 그 할머니요, 간암 말기인데, 보호자들이 말하지 말라고 했던 분이요. 저번 주에도 코피 때문에 신고했을걸요?”,“아, 그 요구르트 할머니?”

좁고 낮고 낡은 녹색 대문. 행복 구급대 구급대원들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면서 말한다. “할머니, 오늘은 어디가 아프세요?” 하늘을 빗질하듯 흩날리는 버드나무 이파리들, 텃밭의 상추 싹, '왈왈' 짖는 누렁이 한 마리가 있는 마당. 할머니는 불편한 걸음으로 검은 봉지를 들고 대원들을 반긴다. 그리고 노란 빨대와 작은 요구르트 세 개가 든 검은 봉지를 감사의 의미로 건네준다. “총각들, 아픈 늙은이 때문에 여기까지 오니라 고생했슈.”

한 달 뒤의 신고, 검은 봉지를 들고 맞이하는 할머니의 표정을 보며 김행복 대원이 말한다. “할머니 괜찮아요? 서 있기도 힘들어 보여요. 이런 거 준비 안해도 돼요. 고마워요.”

몇 주 뒤의 출동, 구급대원들은 마루에 걸터앉아 보라색 고무 신발 한 짝을 겨우 신고 가쁜 숨을 내뱉고 있는 할머니에게 말한다. “할머니, 우리가 신발 신겨 드릴게요.”,“내가 살날이 얼마 안남았는가벼.” 김행복 대원이 나머지 고무신을 끼워주며 말한다. “그런 말 하지 마셔요.”


또 다른 날의 출동, 거실에 앉아있다가 방문한 대원들을 힘없이 반긴다. 쓴웃음을 지으며 검은 봉지에 요구르트 세 개를 담아 건네준다. “늙은이가 빨리 죽어야 우리 총각들이 고생들 덜 하는데.”, “그런 말씀 마세요. 할머니, 자 구급차로 가자고요.”


오랫동안 기억에서 할머니가 잊힐 즈음, 가을 가랑비가 오던 어느 날, 요란하게 출동 벨소리가 사무실에 들린다.


'어머니 상태가 좋지 않음. 깨워도 눈을 뜨지 못함, 병원 이송 요청’.


익숙한 주소를 확인한 김행복 대원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할머니의 집으로 가는 구급차, 마음이 여린 막내 구급대원이 말한다. “할머니가 많이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구급차 앞 유리문에 살포시 내려앉은 가랑비가 물방울이 되어 흘러내린다.


좁고 낮고 낡아 녹까지 슨 녹색의 대문으로 들어간다. 마당의 버드나무는 옷을 갈아입었다. 텃밭의 불그스름한 고추들 위에 떨어진 가랑비가 줄기를 타고 흐른다. ‘왈왈’ 짓던 누렁이는 보이지 않는다. 늘 마중 나온 할머니 대신, 중년 여성이 어두운 표정으로 구급대원들을 맞이한다. “이쪽이에요.” 구급대원들이 마당을 가로질러 마루로 간다. 마루로 들어가 거실을 통해 방으로 걸어 들어간다.


할머니는 눈을 감은 채 매트 위에 누워있다. 구급대원들이 할머니의 상태를 확인하러 가까이 다가간다. 몇 달 사이에 생기가 사라진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본다. 김행복 대원이 할머니 옆에 쭈그려 앉는다. 흔들어 깨워본다. 아무런 미동이 없자 어깨를 힘껏 꼬집는다.

찰나의 순간, 할머니가 눈 주변을 찡그리더니 눈을 번쩍 뜬다. 자기 어깨를 꼬집은 대원을 사납게 노려본다. 할머니가 손을 번쩍 들어 막내 대원의 뺨을 ‘찰싹’ 때린다. 그리고 말한다. "우이씨! 아퍼 이눔아!"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다시 눈을 감는다.

순식간에 방안에 정적이 흐른다. 놀란 동료 구급대원들이 뺨을 맞은 김행복 대원을 바라본다. 할머니의 가족들이 뺨을 맞은 대원에게 다가와 사과한다. “소방관님 괜찮으세요?”


김행복 대원은 멍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맞은 뺨에 갖다 대고 동력을 잃은 장난감 태엽 병정처럼 일시 정지된다. 잠깐 무거운 정적이 흐르며 비가 내리는 소리만 들린다.

정신을 차린 김행복 대원은 맞은 뺨을 손으로 톡톡 치고 활짝 웃으며 말한다. "하하, 때릴 힘은 있으셔서 정말 다행이네요. 어서 병원 이송 준비하시죠." 무거운 방안의 정적이 깨진다.

봄의 방문을 알리듯 송홧가루가 휘날린다. 출동이 없는 잠깐의 시간, 구급대원들은 사무실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빵과 요구르트를 먹는다. 요구르트 뚜껑에 노란 빨대를 꽂은 김행복 대원이 불현듯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뺨에 잠깐 손을 대고 톡톡 쳐본다. 피식하고 웃으며 요구르트를 마신다.

요구르트를 들이킨 김행복 대원이 말한다. “반장님들, 살면서 내 뺨 때린 사람 안부가 걱정된 적 있나요? 작년에 요구르트를 줬던 할머니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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