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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웅 Jan 24. 2023

그 후


오랜만에 한국 영화에 수작이 나왔다. 바로 오늘 본 홍상수의 ‘그 후’가 그렇다. 이 영화는 내가 20대 초반에 본 그때까지 최고의 한국 영화로 꼽는 ‘살인의 추억’ 다음으로 괜찮다. 지금이 30대 후반이니 ‘그 후’는 십여 년 만에 나온 한국 최고의 수작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여동생에서 보낸 문자를 보자. “ 그 후 안 봤지? 골 때리게 재밌어. 물론 취향에 맞아야겠지만” 말 그대로 골 때리는 설정과 재미를 관객에게 선사하는 영화다. 물론 홍상수 사적인 삶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아야 하는 전제가 붙겠지만 말이다.

 

홍상수의 영화에는 그의 삶이 담겨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배반하지 않았다. 모든 예술이 줄 수 있는 최고의 형태는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작품에 담는 거다. 최고의 예술은 이를 배반하지 않는다. 홍상수는 다행히도 그 약속을 계속 지켜갔다. 그래서 나는 그의 사적인 삶의 호불호를 논외로 놓더라도, 예술가로서 그의 삶과 작품에 손을 치켜든다. ‘그 후’는 홍상수의 삶이 보태지지 않았다면 도달할 수 없는 미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그는 역시 멋진 남자들이 걷는다는 모험의 길로 들어섰고, 자신의 최고 필모그래피 하나를 장식했다.

 

음악 하나 없이 그 긴 한 편의 영화 상영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 자신이 있는 감독이 누가 있을까. 그런데 홍상수 그는 해 냈다. 음악을 담지 않고서도 관객의 감성을 사로잡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가 본 어떠한 한국 영화보다도 최고의 몰입을 끌어냈다. 배우들의 연기력을 배가시키는 카메라 앵글도 좋았고, 흑백으로 촬영한 것은 기가 막혔다. 칭찬이 쏟아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수작이다.

 

또 최고 수작 중의 수작으로 꼽는 이유는 어떠한 예술 영화도 끌어내지 못한 흡인력을 주었고,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이런 형태의 영화가 관객들의 마음에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건 모두 알겠지만 쉽지 않다. 한국에서 일상의 묘한 감흥을 담은 최고의 영화가 나오다니. 난 예전에는 일본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몽’을 좋아했고, 오즈 야스히로가 맞나? 암튼 ‘동경 이야기’를 지루하게 본 기억이 있다. 세계적으로 이러한 스타일의 영화는 모르겠다. 그런데 홍상수가 해 냈다.

 

그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그 후’도 여전한 남자의 찌질함을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되게 공감이 많이 갔다.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딜레마에 동감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전작 중에는 생활의 발견과 강원도의 힘을 좋아했다. 그리고 나중에 나온 하하하도 재밌게 봤다. 다시 그의 작품 중에 꺼내보고 싶은 영화 한 편이 더 생긴 기쁨이 여간 크지 않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열연한 김민희가 홍상수 불륜 시리즈의 여자 편의 페르소나였다면, 이 영화의 권해효는 완벽한 홍상수 자신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와 현실을 구분해 낼 수 없을 정도로 권해효는 연기를 잘해 냈다.

 

영화가 워낙 수작이라 아쉬운 부분이 거의 없지만, 마지막을 장식하는 스토리는 조금 미흡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 외에는 전부 다 좋았다. 다음 장면이 너무도 기대되는 영화는 정말 오랜만에 만난 것 같다. 김민희 원 샷으로 택시를 타고 가는 장면도 빠트릴 수 없는 장면이고, 정말 모든 장면이 완벽했다. 너무도 좋아 영화를 보기 전에 복잡하던 마음도 가지런해지고 담담해졌다.

 

그들과 문화가 다르지 않았다면 ‘그 후’는 분명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거다. 완벽했지만 그리고 이해도 받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최고의 영예를 수상하지 못한 영화라 본다. 시간이 지나도 2017년이 기억나게끔 할 내 마음의 수작 ‘그 후’와 권해효 그리고 홍상수에게 최고의 찬사를 준다. 브라보 그 후, 원더풀 권해효, 판타스틱 홍상수!

 

마지막으로 여담 하나 하자면, 이십 대 청춘을 영화 ‘친구’와 ‘살인의 추억’으로 열었다면, 그렇게 영화 ‘그 후’와 함께 나의 삼십 대는 저무는 느낌이다. 그런데 슬프지 않다. 오히려 더욱 담담하고 가뿐하다. 앞으로의 내 남은 삶이 기대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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