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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웅 Jan 24. 2023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당신도 실패한 적이 있나요?


되는 영화가 있다. 안 되는 영화도 있고 말이다. 차이는 뭐냐고? 그야,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나 작품은 된다. 그 외의 것은 안 된다. 오늘 본 이 영화는 전자다. 모든 좋은 작품은 삶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프랑스에서 400만이 본 영화라 한다. 프랑스하면 어떤 나라인가? 바칼로레아의 나라 아닌가? 한 마디로 철학의 나라란 말이다. 그런 철학의 나라에서 한 작품을 400만 명이 봤다는 거 자체가 이슈다. 나는 개인적으로 프랑스 좋아한다. 작년에 프랑스에 처음 갔는데 나랑 딱 통하는 게 있었다. 그게 뭐냐면, 개인들이 고독에 잠겨 생활하는 게 엿보이더라. 고독하지 않고 작품이 나오더냐? 외로움 없이 진정한 자신과 어디 친구가 가능하냐는 말이다. 


이 영화는 실패한 인생들을 위한 영화다. 그 자체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화라는 말이다. 우리는 한 때 모두 처절하게 실패한 경험이 있다. 실패 자체가 삶이라는 걸 말하고 있다. 모든 성공은 변방에서 만들어지는 법이다. 역사는 변방에 있는 실패한 자가, 중앙을 치면서 영웅이 되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실패에 관심이 많다. 왜냐하면 20년 동안 주구장창 내가 실패만 맛봤기 때문이다. 어쩌면 40년 인생 전체가 실패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난 실패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실패를 싫어하고 거부하지 않았다. 물론 감정적으로는 그 끔찍한 무기력과 우울함이 싫기도 했다. 그런데 정신을 바지런히 차리면 실패가 꼭 내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실패에 어떤 유익이 있느냐고? 


먼저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실패한 사람들이다. 2년 째 백수로 지내고, 회사가 문 닫게 생겼고, 어머니와의 관계가 틀어져 있다. 사회와 세상은 성공을 찬양한다. 나도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성공은 강박을 불러온다. 더 많은 걸 원하게 되고, 조직 속의 사람들을 다그친다. 프랑스처럼 철학하는 나라이고, 선진국 시민의 국가는 괜찮겠다. 하지만 후진국에 속하는 한국은 그 속에서 압박과 옥죔이 장난이 아니다. 내가 이 영화를 찬양하는 이유도, 이 영화 속에는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게 없고, 조금 나른하지만 사람의 숨통을 틔어 준다. 

 

실패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개중에는 자신의 성공에 취해 실패를 모르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거다. 그런 사람들은 인간을 향한 시각이 상당히 왜곡되게 된다. 사람이 먼저고, 돈은 나중이건만 이들은 이걸 헷갈려 한다. 하지만 실패를 겪어본 사람들은 아주 간단한 이 사실을 혼동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어린아이가 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예수가 말했다. 실패는 우리의 마음을 어린아이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그 마음을 순수하게 하고 투명하게 해 준다. 이럴 때 우리를 시라는 걸 찾는다. 시는 바쁜 삶에서 잠시 멈추고, 내 마음 속 목소리를 듣는 거다. 우리 가끔씩은 멈출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에 대해 NO! 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잃어버린 우리 마음은 되찾아질 거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실패에 관한 책을 한 권 내고 싶다. 그 이유는 위에서 열거한대로 실패 그 자체가 우리 인생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다. 실패하면 니체를 불러와야 한다. 그는 시대를 앞서 산 이유로 당대에 이해되지 않고, 실패의 연속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대가 주사위를 무수히 던졌다. 그런데 원하는 숫자가 나오지 않았다면, 주사위를 탓해야 하나? 아니면 뭔가 문제가 생긴 건가? 니체가 과잉이 문제가 아니라, 그대의 협소한 마음, 즉 결핍이 문제라 했다. 우리는 그럴 때 주사위를 천 번째 던졌어도, 다시 일어서서 천한 번째 주사위를 던져야 한다. 그대가 실패했다는 건, 그만큼 앞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노자에 멀리감은 곧 돌아옴이라는 말이 있다. 달은 차면 기운다. 실패하면 곧 성공하기 마련이고, 성공하면 너무 들뜨지 말고 실패를 대비하라. 인생은 음양의 조화로 이뤄져 있으니까 말이다. 


이 영화는 한 때 실패한 적 있는, 혹은 실패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일어서게 한다. 감독은 사람마다 꽃 피는 시기가 다르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는 꾸미지 않고, 자연스러움의 가치를 사랑하는 사람임에도 틀림없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자.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늘리지 말자. 우리가 생겨 먹은 그 자체를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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