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기성 목사님의 책과 설교 말씀이 잘 들어온다. 예전에 처음으로 읽었던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란 책이 잘 읽혔다. 읽는 내내 은혜의 체험을 하는 듯했다. 작년에 청소년상담사 3급 시험을 준비할 때도 공부에 집중이 안 되면, 유기성 목사님의 책을 읽었다.
오늘 목사님의 말씀은 ‘사랑의 사람이 되자’라는 것이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그래, 그 사람 사랑으로 가득하지”라는 말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못 된다.
옛날에 어머니가 올라오시고, 내 마음 안에는 분노로 가득했다. 그때부터 난 세상과 전쟁을 하듯 하며 살아왔다. 만약을 대비해서, 라는 마음으로 질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15년 이상을 살아오니, 지금의 혼란스러운 내가 되어 있었다.
존경했었던 구본형 선생님은 “그분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실제로 있으면 좋다고 했다. 오늘 유기성 목사님은 사랑으로 행동하자, 라는 마음을 내게 주셨다. 이런 사람이라면 말할 때나 행동할 때, 그 속에 사랑이 담겨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교만한 마음이 가득한 내가 쉽게 될 수 있는 목표가 못 된다. 혹은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되어 보고 싶어졌다. 내 홈페이지 이름도 ‘행복경영’으로 바꾼 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예수경영’과 ‘예수사랑’ 연구소의 이름을 영감으로 받았다.
예전 청년부 때 교회를 조금 열심히 다닌 적이 있다. 그때 다니던 교회에 친한 형이 있는데, 형은 사랑의 사람이다. 항상 기도하고, 예배에 열심이다. 나도 그 형을 닮아가야겠다. 항상 성경 말씀을 읽고, 예수님을 마음에 새기며 생활해야겠다.
난 억지로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짐해야 하는 것도 요즘은 선호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의 사람이 되고 싶고,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는 것은 저절로 되기 때문이다. 한동안 난 정신의학자 스캇 펙의 책에 빠져 지낸 적이 있다. 그는 내게 심리치료의 끝은 종교이지 않나, 하는 물음을 심어 주었다.
극단적인 기질이 있는 내가, 또 너무 극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도 든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은 조금은 완벽주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독실함의 기준이 될지는 모르겠다. 난 종교를 믿게 되면 신실한 사람이 되고 싶기는 하다.
이제 나를 모두 비우고, 내 안에 예수님 오직 한 분은 받아들이고 싶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완벽히는 따를 수 없겠지만, 이런 마음을 품고 하루를 살아봐야겠다. 하지만, 한동안 혼란스러운 상태로 살아와서 금방 실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는, 그래서 이것이 나의 생활 목표가 될 수도 있겠다.
책을 많이 읽으며 생활하려고 했는데, 그래서 내게는 지식화 방어기제가 강하다. 모든 것을 머리를 굴리며 해결하려는 것이다. 이런 태도가 사랑의 사람이 되는데 좋지 않은 것을 느낀다. 그러니 조금씩 마음을 열고, 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 봐야겠다.
마더 테레사도 한 번에 한 사람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런데 나중에 그녀의 삶을 돌아보니 인도 전역에서 가난하고 병든 많은 사람을 도와주었다. 이것이 나에게 큰 교훈이 될 듯하다. 나도 작은 것 하나부터 시작해야겠다.
한때 인생의 힘든 지점을 살았지만, 이제 삶과 화해하는 느낌이 든다. 다행히 나는 온정적인 사람이 되어 간다. 온순하고, 다정적인 사람이 나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마흔을 넘게 살아왔으니, 나는 내가 아닌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한 삶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