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사에 의하면 한국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80퍼센트가 나왔다. 어떤 이들은 무교가 한국의 대다수가 따르는 가르침이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초보 신자인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법정 스님의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라는 책을 난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책상 위에 항상 놓아둔다. 방금 읽은 글이 ‘수행자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제자에게 받은 편지에 답장 형식의 글인데, 이 글이 명문이다.
스님은 모든 것이 넘쳐나는 세상인데, 가난해야지만 도에 이를 수 있다 했다. 즉 진리는 불필요한 것에서 벗어나 필요한 것을 지닐 때 발견된다. 하나가 필요하면 하나를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그 하나마저 잃을 것이다.
그리고 종교가 제도화하면, 즉 절이나 교회로 설립되면 종교 그 자체의 순수성을 잃을 수 있다. 그래서 법정 스님은 종교 그 자체를 따라야지, 따로 따르는 무언가를 만들면 안 된다고 했다. 세상은 종교를 앞세우면서 전쟁을 한다. 바로 이런 현상이 종교의 지혜를 따라지 못해 일어나는 것이다.
폴란드의 전공 출신에서 대통령이 된 레흐 바웬사란 인물이 있다.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고 법정 스님 책에 나온다. “사람은 무언가를 반드시 믿지 않으면 안 됩니다. 종교가 되었던 자신의 일에 관한 신념이 되었던 사람은 믿어야 합니다.” 대략 이렇게 기억되는데, 여기서 핵심은 자신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일이다.
무신론을 연구하는 어느 학자는 아버지 부재의 사람들이 종교를 잘 믿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분이 쓴 책을 아직 자세히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역사적인 인물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또한, 현대 사회가 무신론이 유행하는 것은 심리학 발전도 한몫을 한다는 것이다.
원래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가 무신론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후기에 그는 종교에 관해 불가지론의 입장에 서는 것 같다. 더 나아가 분석 심리학자 칼 융은 종교를 중요시했다. 종교가 제 역할을 했다면, 정신분석이 필요가 없다는 말을 했다.
나 또한, 아직 종교 기관에서의 행사가 낯설다. 즉 교회 문회가 초보 신자인 내게 익숙하지 않다. 그럼에도 난 종교를 가지려고 한다. 사람에게 루틴이 필요하듯, 이것이 나의 생활에 질서를 부여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 선생님이 내게 좋은 말씀을 해 주셨다. 어려서는 부모님이, 커서는 한동안 구본형 선생님이 의지할 대상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부제의 상태를 나는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저녁마다 인생이 공허하고, 무의미함을 잘 느낀다.
종교가 정말 이 사회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고, 불운을 겪게 되면 종교를 믿거나 의지하게 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삶이 힘들어질 수 있고, 불운 또한 사람을 극단으로 내몰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종교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괜히 힘들 때 절이나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현대 사회가 빠르고 복잡하게 변화하는 가운데, 절과 교회가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점이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한국은 정이 있는 사회였고, 서로를 믿으며 사는 문화였다. 그런데 어느 새부터 사람과 사회를 믿지 못하는 곳이 되었다.
불신 지옥은 종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살지 못하면 그곳이 바로 지옥과 같은 곳이 된다는 것이다. 천국은 나 스스로 당당하게 떳떳하게 사는 삶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