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마무리해서 무료로 출간한 책인 <상담, 이제 절반 왔다>를 읽었다. 부제를 ‘내담자 15년 일기’라고 붙였다. 15년 동안 정신과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으며 깨달음을 기록한 것이다. 이 책에는 심리상담에 관해 많은 답을 들은 내용이 나온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경청하고 포용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반하는 것이다. 따라서 심리상담가는 실제로 임상에서 많은 경험을 쌓으며 이 부분을 훈련한다. 난 여전히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 선생님 말씀을 그저 수용할 뿐이다. 아마 나의 체험에 의해서도 심리상담은 그렇게 쉬운 과정이 아니다.
나의 심리적 내상은 깊다. 즉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불안정 애착을 맺었고, 정서적으로 돌봄을 잘 받은 경우도 못 된다. 어머니는 외할머니 밑에서 외롭고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낸 듯하다. 나 또한, 그런 어머니에게서 양육되어 외로움을 많이 탔고, 방치와 과잉보호의 양극단 속에서 자랐다.
이런 내게 심리상담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난 실제로 15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그런데 나의 상처는 아물 줄 모른다. 나의 경우에는 항상 2가지를 놓고, 이분법적으로 헷갈려 했다. 이것이 옳은지 혹은 저것이 맞는지와 같은 햄릿의 고민을 계속 하고 있다.
보통 정신분석은 사랑 앞에서 좌절한 사람에게 필요한 학문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연인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본질을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때 어려서 우리가 가족과 맺은 관계를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양육자와 안정 애착을 맺은 사람은 우주를 편안해 하듯, 세계를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아무튼, 지금 나의 상태가 어떻든 나는 끝까지 심리치료를 받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정신의학자 스캇 펙은 “당신이 좋은 치료자가 될 수 있을 때요.”라고 말하면서, 치료는 그때 종결된다고 했다. 지금의 나는 청소년상담사 3급 자격증을 올해 시험을 보려고 한다. 한때는 이 길을 가지 않으려 했는데, 심리상담가로서의 삶도 괜찮게 여겨진다.
내가 대학원에서 우연히 알고 좋아하게 된 낸시 맥윌리엄스라는 정신분석적 심리치료자가 있다. 이분은 살아오면서 겪은 고통이, 일과 만나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일이 심리상담가라고 했다. 즉 내담자의 고통을 경청하고, 나누는 작업이 심리치료이다. 난 내가 많이 아프고 앓아봤기에, 내담자의 아픔을 함께 하려는 마음이 생겼다.
특히, 많은 한국인이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작은 도시 국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민족과 다른 나라와 상호 작용을 많이 하는 국가들은 다른 것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모두 다 다른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인은 고정된 틀이 강하고, 자신들과 다르면 틀린 것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바카로레아의 나라인 프랑스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살아간다는 것이 생각한다는 부분이 큰데, 프랑스 사람들은 이 교육을 받으며 자라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인생을 성찰하고, 사려 깊게 삶을 살아간다. 고독하지 않고는 진정으로 자신의 본질에 다가설 수 없다. 철학하는 나라여서 프랑스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또한, 똘레랑스의 나라이기도 하다. 관용이 현대에서 중요한 개념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홍성남 신부님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페르시아의 한 왕을 꼽았다. 그 이유가 그 왕이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도 관용적인 정책을 폈다는 것이다. <제국의 미래>라는 책도 관용적인 나라를 연구했는데, 제국으로 도약한 국가들의 특징이 관용이었다. 우리가 심리상담을 잘 받게 되면, 더욱 관용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너그러움과 바다 같은 마음은 심리상담가에게도 중요한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