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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색자 Mar 19. 2019

골목길의 변화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젠트리피케이션의 발생원인

내가 서울로 돌아온 2016년 늦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던 우리 사회의 핫이슈는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이었다. 우리 사회에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존재해 오던 임대료를 둘러싼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갈등 문제가 다소 생소했던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학술용어로 설명되기 시작한 건 아마도 2010년 홍대입구역 부근의 작은 식당 두리반 칼국수집의 강제 철거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부터일 것이다.


두리반 칼국수집은 2009년 12월 경의선 및 공항철도역 공사로 인해 강제 철거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권리금만 1억 3천만 원을 내고 들어온 식당에 개발회사가 강제 철거를 요구하며 제시한 합의안은 고작 보상금 300만 원이었다. 강제 철거를 당하던 다른 세입자들과 달리 두리반 칼국수집 사장님 부부는 적극적으로 저항하였고, 홍대에서 활동하던 예술인들은 이들의 투쟁에 함께 해주었다. 500일이 넘는 투쟁의 시간 동안 두리반 칼국수집에서는 음악회, 낭독회, 작가회 등과 같은 문화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렸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투쟁을 응원하였다. 그리고 2011년 6월 두리반 칼국수집 사장님은 마침내 합의에 성공하였다. 2억 5천만 원 상당의 배상금 지불과 인근 지역에서의 영업 재개 등이 합의의 내용에 포함되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현실은 두리반 칼국수집 사건처럼 '젠틀'하지 못하다. 2016년 국립국어원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대신하는 순 우리말로 '둥지 내몰림'을 제안하였다. 둥지 내몰림은 젠트리피케이션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이 강조된 용어이다. 그러나 젠트리피케이션은 쇠퇴한 지역에 기존 주민보다 부유한 계층의 유입으로 인하여 주거환경이 개선되고 침체되었던 지역에 사회적, 경제적으로 활기가 생기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다만, 이 과정 중에 나타나는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원주민의 비자발적인 이주'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적 약자에 대한 제도적인 보호장치가 미비하여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장의 힘을 견제할 수 있는 정부의 간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경제적인 약자는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 시장의 폭력에 휘둘리게 된다. 따라서 젠트리피케이션의 발생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렇다면, 젠트리피케이션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1964년 루스 글라스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후, 젠트리피케이션의 발생원인을 설명하기 위한 여러 이론들이 있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이론은 경제적인 변화과정에 초점을 맞춘 1) 공급 측면 이론(production-side theory)과 사회적인 변화과정에 초점을 맞춘 2) 소비 측면 이론(consumption-side theory)이다.


공급 측면 이론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는 닐 스미스(Neil Smith)로, 그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자본의 유입과 이로 인해 생산되는 도시공간의 변화과정, 즉 도시공간의 재구성화(restructuring of urban space)로 설명하였다. 닐 스미스는 도시근교화(suburbanization)로 인해 나타나는 임대료 격차(rent gap)를 젠트리피케이션의 주된 발생원인으로 보았다. 도시근교화는 보다 많은 이윤창출과 쾌적한 주거환경을 위하여 기업과 도시민들이 도심에서 지가가 저렴한 근교로 이동하면서 일어난다. 이러한 도심공동화 현상(urban hollowing phenomenon)은 도심의 지가를 떨어뜨리고 쇠퇴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임대료가 현저하게 낮아지게 된다. 닐 스미스가 주장하는 임대료 격차는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하게 되는데, 도시근교화로 인하여 현저하게 낮아진 지가와 임대료는 주거환경의 개선을 통하여 본래의 가치를 회복하게 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임대료 격차 이론은 젠트리피케이션이 경제 과정을 통해 도시공간에 발생하는 현상으로 설명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초가 된다. 임대료 격차가 충분히 벌어졌을 때, 도심의 저평가된 지역에 이윤을 창출하려는 부동산 개발업자와 건물주 그리고 투자자의 관심이 증대하게 되며, 상승한 임대료를 지불할 경제적 능력이 있는 새로운 임차인을 위한 재개발 사업이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임대료 격차의 전개는 도시공간의 재구성화와 젠트리피케이션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소비 측면 이론은 후기 산업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한 중산계층인 젠트리파이어들의 사회 문화적인 특징과 동인이 젠트피리케이션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간주한다. 인문지리학자인 데이비드 레이(David Ley)는 엄청난 규모의 소비능력을 지닌 새로운 중산계층의 인구통계학적, 그리고 소비패턴의 변화가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1960/70년대의 서구사회는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변혁의 시기였다.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반문화(counterculture) 운동은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 베트남 반전운동, 여성의 페미니스트 운동, 동물실험 반대운동과 같은 전통적인 권위에 대한 도전과 새로운 해석이 발전된 시기였다. 자유분방한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보헤미아니즘(Bohemianism)이 도래했으며, 기성의 사회통념이나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과 자연으로의 귀의 등을 주장하는 히피(Hippie)의 등장은 새로운 생활양식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러한 변화과정 중에 등장한 새로운 중산계층은 도시근교에서의 생활보다 도심에서의 '스타일이 있는 삶(stylization of life)'을 추구하였다. 도심의 오래된 지역의 역사성과 건축물이 지닌 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젠트리피케이션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되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발생원인과 전개과정은 공급 측면 이론이나 소비 측면 이론 중 어느 한 가지로 설명되기 어렵다. 2015년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시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상업공간 젠트리피케이션의 특성 및 피해 과정을 살펴보면, 위의 두 이론이 보다 쉽게 이해된다.


‣ 1 단계: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강북의 오래된 골목길을 따라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공방, 갤러리 등이 생겨나고, 이러한 공간들을 따라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나 레스토랑 등의 상업시설이 들어선다.


‣ 2 단계: 오래된 골목길의 상점들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유동인구가 급증하게 되고 대형 개발업자들이 진입하기 시작한다.


‣ 3 단계: 부동산 투자가 급증하게 되고 부동산 가격 및 임대료가 상승하게 됨에 따라 오랫동안 골목길을 지켰던 영세상인과 원주민, 그리고 낡고 좁은 골목길을 트렌디한 핫플레이스로 변화시켰던 예술가들이 쫓겨나게 된다.   


젠트리피케이션 발생 초기는 소비 측면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1단계에서는 새로운 문화와 가치관을 가진 소수의 선구적 젠트리파이어들이 강북의 낡은 주택을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면서 오래된 골목길을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이러한 골목길은 남과 다른 소비생활을 추구하는 밀레니얼의 관심을 끌게 되며,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통해 핫플레이스로 알려지게 된다. 오래된 골목길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나타나는 부동산 개발업자의 진입은 공급 측면 이론의 임대료 격차 이론으로 설명된다. 임대료의 격차가 충분히 벌어졌을 때, 이윤을 창출하려는 투자자들에 의해서 원주민과 영세상인뿐만 아니라 선구적 젠트리파이어들의 비자발적 이주가 시작된다.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를 편집한 이기웅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원인을 수요요인, 투자요인, 문화요인, 그리고 정책요인의 네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첫 번째, 수요요인은 1990년대 말 발생한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우리나라 사회에 나타난 대규모의 정리해고와 고용 축소로 인한 자영업자의 증가이다. 두 번째, 투자요인은 2000년대 말 발생한 글로벌 경제위기로 서울의 뉴타운 정책은 실패는 구도심의 상가건물로 유휴자본을 집중시켰고, 상가건물의 수익성이 증가함에 따라 상가건물에 대한 투자가 지속되고 있다. 세 번째 문화요인은 청년 창업자들의 세련된 취향이 반영된 구도심의 오래된 골목길의 독특한 상점들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도시재생정책은 도심의 관광지화를 촉진시켜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도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주거지역의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도시를 점점 더 소비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이 갖는 취약점은 오늘날 최대 소비계층으로 부상한 밀레니얼의 소비행태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북의 낡고 좁은 골목길을 핫플레이스로 변화시킨 이들은 누구보다 앞서 있는 문화소비 집단이다. 밀레니얼의 등장으로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에 즐거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획일적이었던 도시공간이 좀 더 풍요롭고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남과 다른, 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새로운 소비계층의 니즈에 따라 도시공간이 일회용품처럼 소모될 위험이 있다. 소설가 김사과는 "최신 유행의 자본주의를 소비하는 젋은이 [힙스터]들은 삶의 모든 영역을 소비자로서 대한다. 즉, 자신을 표현해줄 '힙'한 품목을 마치 백화점의 구매 담당자처럼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모으는데 삶을 소비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된 순간 깜짝 놀라 도망치듯이 다음 품목으로 옮겨간다"라고 하였다. 서울의 핫플레이스들은 홍대에서 연남동, 상수동으로, 이태원의 중심에서 경리단길로, 그리고 해방촌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이동이 반드시 임대료 상승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핫플레이스의 빠른 이동은 경리단길은 이제 더 이상 핫하지 않아... 해방촌 골목길로 가야지... 요즘 뜨는 곳은 어디지... SNS를 검색하고 새롭게 뜨는 골목길의 핫플레이스를 찾아 헤매는, 도시공간을 소모품처럼 이용하는 밀레니얼의 소비행태에 기인한다.  


참고문헌

김사과(2011), "홍대 앞 좀먹은 힙스터들, 다음 타깃은 이태원?" 프레시안

이기웅(2019), "젠트리피케이션 없는 도시는 가능한가?" 중앙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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