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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색자 Apr 02. 2019

골목길의 변화는 '누구'에 의해서 일어나는 가?

젠트리파이어: 문화적 신계층

젠트리파이어(Gentryfier)는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는 장본인이다. 이들은 쇠퇴했던 구도심을 이국적이고 특색 있는 장소로 탈바꿈시킴으로써 활기를 잃었던 공간을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활성화시키는 능력을 지닌 새로운 계층(new class)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발생원인을 소비 측면에서 설명한 인문지리학자인 데이비드 레이(David Ley)는 후기 산업사회에서 등장한 새로운 계층인 젠트리파이어들이 일반 중산계층과 구분되는 특징을 갖는 점을 지적하고 이들을 '문화적 신계층(the cultural new class)'라 칭하였다. 문화적 신계층자들은 높은 교육 수준을 가졌으며, 예술, 미디어, 교육, 사회서비스나 비영리단체에서 종사하는 전문가 집단이다. 이들은 일반 중산계층과 달리 도시근교가 아니라 구도심 지역에 재정착하며, 반문화와 진보적인 정치적 성향을 지녔다. 젠트리피케이션을 '공간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구별되는 과정(a process of spatial and social differentiation)'이라고 정의한 샤론 주킨(Sharon Zukin) 역시 서비스 산업(service industry)의 발달로 인해 나타나는 새로운 사회계층인 젠트리파이어들에 주목하고, 다른 중산계층과 구별되어 나타나는 이들의 공간적, 사회적인 행위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1960년대 루스 글라스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할 당시, 쇠퇴한 구도심에서는 소규모의 민간자본이 재투자되어 주택시장과 사회계층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쇠퇴한 구도심 가운데에서 아주 선별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는데, 특히 '역사성'이 높은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쇠퇴한 구도심으로 이주한 새로운 계층인 젠트리파이어들은 처음에는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시기의 빅토리안(Victorian) 스타일의 건축물들을 복원시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다른 건축양식, 예를 들면 신조지안(neo-Georgian style) 스타일 혹은 에드워디안(Edwardian) 스타일의 건축물들도 복원시켰다  이러한 관심은 점차 확대되어 브라운스톤(brownstone), 레드브릭(redbrick), 혹은 공장 건물을 주거용으로 개조하기도 하였다.   


누구보다 앞선 문화소비 계층인 젠트리파이어들에게 중요한 것은 쇠퇴한 구도심의 노후한 건물을 세련되게 복원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그들이 선호하는 문화소비생활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도심의 워크플레이스(workplace)에서 가까운 지역에 위치한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주택에 거주하면서 문화적으로 풍부한 어메니티를 즐기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젠트리파이어들이 이주한 쇠퇴한 구도심 지역에는 트렌디한 레스토랑과 쇼핑,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장소들이 급격하게 확대된다.


[런던 이즐링턴 지역의 카페거리]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됨에 따라 젠트리파이어들 자체도 변화하게 되는데, 젠트리피케이션의 초기 단계(early stage)에는 아티스트, 작가, 음악가,  정치적 활동가 혹은 LGBT(Lesibian, Gay, Bisexual and Transgender) 커뮤티니 등이 젠트리피케이션의 주요한 행위자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들이며, 싱글이거나 아이가 없는 젊은 커플들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중산계층과 비교하여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며, 아이들의 학교 문제나 주거지역의 안전문제에 대해서 그다지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노동자 계층 지역으로 이주하여 주거환경의 개선을 시도할 수 있는 소수의 선구자 집단이다. 마크 홀콤(Mark Holcomb)과 로버트 뷰리가드(Robert Beauregard)는 젠트리파이어를 '저렴한 주택 가격을 선호하며,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에 관대한 집단(those who are attracted by low prices and toleration of an unconventional lifestyle)'으로 표현하였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과도기 단계(transitional stage)에는 보헤미안적인 기질의 공동체가 형성된 지역에 매료된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지닌 저널리스트, 교육자 등이 이주하고 말기 단계(late stage)에서는 초기 단계와 과도기 단계보다 부유한 고소득의 전문가와 관리계층인 '여피(yuppie)'들이 거주하기 시작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말기 단계에는 주택과 토지의 임대료와 매매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게 됨에 따라 원주민뿐만 아니라 초기단계의 젠트리파이어들의 이주가 시작된다. 샤론 주킨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진행단계별로 나타난 젠트리파이어들의 변화에 대해서 깊이 있게 연구하였다. 그녀는 뉴욕 맨해튼의 소호(SoHo) 지역에 나타난 젠트리피케이션의 진행과정을 1960년대부터 살펴보고 소호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킨 초기 젠트리파이어들인 예술가들과 히피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됨에 따라 쫓겨나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였다.


원주민과 초기 젠트리파이어들의 비자발적 이주와 관련하여 비판받았던 젠트리피케이션은 2000년대 이후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 교수의 창조계급 이론을 바탕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창조계급 이론이 도시의 경쟁력(urban competitiveness)을 회복시키고 도시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려는 세계 주요 도시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오히려 경쟁력 있는 도시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재인식되고 있다. 톰 슬레이터(Tom Slater) 교수는 다소 부정적이었던 젠트리피케이션의 이미지가 "낙후되었던 도시공간에 '창조성'을 불어넣는 힙하고 보헤미안적이며, 카페와 갤러리,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를 주로 이용하는 쿨하고 예술적인 젊은이들이 모이는 장소에 대한 이미지(the image of hip, bohemian, cool, arty tribes who occupy the cafes, galleries and cycle paths of formerly disinvested neighbourhoods once lacking in 'creatity', is increasingly seen as a sign of a healthy economomic present and future for cities across the globe"(2006, p.738)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젠트리파이어들은 오히려 쇠퇴한 구도심의 골목길 상권에 활력을 넣는 '로컬 크리에이터' 혹은 '새로운 소상공인 영웅들'이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으며,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로 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오랜 시간 잊혀졌던,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낙후된 강북의 골목길을 생기 넘치게 하는 한국의 '젠트리파이어'들은 누구인가? ‘문화 자본가’ 혹은 ‘창조계층’으로 불리는 이들은 우리 사회의 일반계층과 어떻게 구별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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