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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색자 May 06. 2019

서울의 세계화, 탈산업화, 그리고 골목길 변화

젠트리피케이션과 관련하여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은 후미지고 오래된 골목길의 낡은 단독 주택이나 다세대 주택이 카페나 레스토랑 혹은 부티크 등의 상업시설로 건축물의 용도가 바뀌는 주거지역의 상업화 현상이라는 점이다. 신현준 외(2016)는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이 "구질구질하고 오래된 올드타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젠트리피케이션 발생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태원의 오래된 골목길에 나타난 변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이국적인 장소인 이태원은 누군가에게는 기지촌으로 기억되며, 누군가에게는 짝퉁 가방과 신발, 패션 아이템을 사러가는 쇼핑의 거리였다. 그리고 현재 이태원은 서울에서 가장 핫한 장소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나타난 변화는 거대도시(mega city)로 성장한 서울이 경험한 역동적인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인 성장과정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성장과정을 통해 오늘날 서울은 세계도시로 변화하였으며,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민족적 배경을 가진 외국인들이 정착하여 정보 및 자본의 국제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체류 외국인 등록인구를 살펴보면, 서울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의 수가 1995년 약 4만 5천 명에서 2010년 약 26만 명으로 거의 6배나 증가하였으며, 2010년 전체 등록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점점 더 많은 내국인들이 여행이나 유학 등을 통하여 풍부한 해외 경험을 갖게 되었다. 한국관광통계에 따르면, 내국인 출국자의 수는 1990년 약 1백만 6천 명에서 2016년 약 2천2백만 명으로 14배 이상 증가하였다.  


연도별 내국인 출국자 수(1975-2018)


서울의 세계화는 도시의 내밀한 공간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도시 공간의 변화는 세계화의 영향으로 문화적 자본을 획득한 행위자들, 소위 '글로벌 엘리트 (Global Elite)'들의 활동과 실천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포테스 외(Portes etc., 1997)에 따르면,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이러한 글로벌 엘리트들의 수도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 글로벌 엘리트들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외국인 혹은 한국인으로 풍부한 해외 경험을 지닌 문화적 자본가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고, 국경을 넘나들며 이중생활을 하거나 직장 혹은 개인적인 이유로 해외출장 혹은 여행을 빈번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글로벌 엘리트들에 의해서 서울의 곳곳에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고 확산시키는 창조적인 공간들이 형성되고 있는데, 이러한 공간들은 종종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새로운 도시 현상과 관련지어진다. 로페(Rofe, 2003), 레이(Ley, 2003), 주킨(Zukin, 2011)과 같은 젠트리피케이션과 관련한 해외 연구자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연구(강유가람, 2014; 신현준 외, 2016; 윤혜수, 2017)에서도 이미 젠트리파이어들의 글로벌한 경험과 이국적 취향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윤혜수는 연남동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연구한 논문에서 "서울에서 이국적 성격이 가장 두드러지는 지역은 이태원으로 꼽히지만, '글로벌함'은 기타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의 공통적 특징으로 지목되며 연남동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확인된다"(2017, p.70)고 밝혔다.


세계화와 함께 등장한 글로벌 엘리트의 활동과 실천은 세계도시 이론에 대한 대안적 인식론인 초국가주의 이론 (Transnationalism)에 기반하여 설명될 수 있다. 세계도시 이론은 특정한 경제적 행위자들의 활동이나 글로벌 자본주의 구조에 의하여 세계화가 진행되는 것으로 간주하여, 실제 도시에서 다양한 행위자들로 인해 나타나는 복잡한 세계화의 과정을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반하여, 초국가주의 이론은 일상생활에서의 행위자(human agency)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초국가적 자본 혹은 초국가적 정치행정기구와 같은 '위로부터 (from above)'의 강력한 외부적 힘에 의해서 세계화가 일방적으로 이루어져 세계도시로 발달하는 도시들이 모두 비슷한 사회, 정치, 문화적 특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 이주자 혹은 일반 대중들과 같은 '아래로부터(from below)'의 활동에 의해 각 도시별로 다양하게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관점이다.


따라서 초국가주의 이론의 주요 연구대상은 한 국가 이상의 범위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일상적 활동과 실천이 주요 연구대상이 된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는 외국인 이주자들로, 이들은 바슈, 실러와 쟌텐 블랑크(Basch, Schiller and Szanton-Blanc, 1994)가 말한 바와 같이 한 국가 이상에서 활동하는 초국가적 행위자들이다. 초국가주의는 외국인 이주자들의 일상생활과 이들이 지닌 사회, 경제, 정치적인 관계 등을 통해 형성되는 초국가적 사회적 연결망에 집중한다. 그리고 행위자들의 이러한 초국가적 활동은 지역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지역의 의미 혹은 지역의 특성을 나타내는 로컬리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스미스(Smith, 2001)는 행위자들의 초국가적 실천이 전 지구적으로 모든 곳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이동과 활동 및 실천의 흐름들이 접합되는 아주 특정한 지리적 공간에서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도시 현상인 젠트리피케이션 역시 세계화로 인해 새롭게 등장한 초국가적 행위자들의 등장과 그들의 다양한 활동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장소성의 변화와 연관성이 있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문화적 자본을 획득한 초국가적 행위자인 글로벌 엘리트 계층이 추구하는 차별화된 소비행태로 인해, 이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독창적인 상점들이 특정 장소에 생겨나면서 장소성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한남동에 위치한 독특한 분위기의 서점

1990년대 중반 무렵 홍대에서 시작된 이러한 장소성의 변화는 2000년대 중반 이후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서울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핫플레이스'로 주목받는 공간인 이태원, 연남동, 성수동 등은 초국가적 행위자인 글로벌 엘리트들의 이동과 활동 및 실천의 흐름들이 접합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의 핫플레이스들이 갖고 있는 특징은 이국적 취향의 카페, 레스토랑, 바, 혹은 디자이너 부티크, 갤러리 등과 같은 중산층 이상의 소비자들을 위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공간들은 대부분 선구적 젠트리파이어인 글로벌 엘리트들이 해외에서 자신이 즐겨 찾던 카페, 혹은 레스토랑의 이미지를 재현시킨 것으로, 독특한 상점의 분위기는 탈산업화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소비자 계층인 밀레니얼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게 된다.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에 나타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이 도시가 지난 50년 동안 경험한 압축된 양적 성장과 2000년대 이후부터 급격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세계화 및 탈산업화와 관련이 있다. 서구사회에서는 1970년대 이후, 도심지역에서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발생원인을 도시의 산업 및 직업구조의 변화와 관련시켜 설명하고 있다. 2000년과 2014년의 15년간의 서울의 산업구조 변화를 살펴보면, 콘텐츠 제작 및 서비스와 관련한 사업체 및 종사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업종인 '출판 영상 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은 종사자수가 748%나 증가하였고, 사업체수는 무려 1,156% 증가하였다. 또한 '전문, 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은 사업체수 83%, 종사자수가 151% 증가하였다. 반면, 서울의 압축된 양적 성장을 이끌었던 제조업의 규모는 줄어들고 있으며, 과학, 문화 등을 기반으로 하는 창조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서울은 전 세계의 어떤 도시보다 아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사회, 문화적인 변화 속도 또한 매우 빠르다. 서울의 핫플레이스들을 창조시키는 원동력은 베이비 부머나 X세대와 구별되는, 탈산업화 시대에 등장한 밀레니얼과 Z세대가 보여주는 독특한 소비패턴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서구사회가 1960/70년대에 경험했던 문화적인 변혁의 시기 - 도시근교에서의 생활보다 도심에서의 '스타일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젠트리파이어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던 - 그 변화의 중심에 지금 우리가, 이태원의 후미진 골목길이, 그리고 거대도시 서울이, 서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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