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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색자 May 09. 2019

문화적 신계층 vs 로컬 크리에이터

데이비드 레이(David Ley)는 쇠퇴한 구도심의 특정 공간을 변화시키는 젠트리파이어들을 '문화적 신계층(the cultural new class)'이라고 일컬은 바 있다. 그는 제트리파이어들이 풍부한 문화자본을 소유하고 있으며, 일반 중산계층과 구별되는 독특한 취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였다. 젠트리파이어들은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 교수가 도시의 경쟁력과 창조도시 건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 인적자본인 창조계층과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상상력과 열정, 그리고 창조 자본을 소유한 창조계층은 산업사회의 전통적인 공동체들의 거점지역을 벗어나 새로운 창조적인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장소는 창조계층이 밀집된 지역으로 예술적, 문화적, 그리고 기술적인 번성을 통해 고용창출, 인구의 증가를 가져오며, 더 나아가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게 된다.


창조계층과 문화적 신계층인 젠트리파이어, 두 집단 모두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데 적극적이다. 이 두 집단은 개성을 선호하고, 다양성과 개방성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창조적인' 일을 통해 경제적인 이윤을 창출한다. 선구적 젠트리파이어들은 창조계층의 3가지 유형 - 핵심 창조계층, 창조적 전문가, 보헤미안 - 가운데, 작가, 디자이너, 배우 등과 같은 문화, 예술가 집단으로 구성된 보헤미안의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서구사회에서는 예술가와 젠트리피케이션과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미국의 국가 예술기금(The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NEA)에서는 1970년대에 이미 미국의 대도시들을 대상으로 한 실증적인 연구를 실시하였다. 이 연구에 따르면 예술가의 거주비율이 높은 도시일수록 젠트리피케이션의 발생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초창기 연구에서는 예술가가 젠트리피케이션의 직접적인 행위자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예술가가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에 예술가가 집중되는 것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의 결과로써 인식하고 있다


주거시설이 카페나 레스토랑 혹은 부티크 등의 상업시설로 건축물의 용도가 바뀌는 주거지역의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젠트리파이어들은 바로 새로운 소상공인 계층이다. 이들은 강북 도심의 오래된 골목길의 낡은 주택들을 개조하여 이국적이고 특색 있는 장소로 탈바꿈시키으로써 활기를 잃었던 공간을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활성화시키고 있다.


국내의 선행연구(강유가람 외, 2014; 박은실, 2013; 신현준 외, 2016; 윤혜수, 2017)에서 나타난 우리나라 젠트리파이어들의 특징은 비록 제한된 경제적 자본을 소유했지만, 풍부한 해외 경험, 높은 교육 수준, 좋은 집안 환경 등을 통해 축적된 문화예술과의 친밀성을 지닌 문화 자본가 집단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닌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경제활동에 반영시켜 장소성의 변화를 일으키는 예술가인 동시에 사업가이며, 상대적으로 낮은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교육) 수준으로 특징 지워지는 전통적인 소상공인 계층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소상공인 계층이다.

한남동의 낡은 주택을 개조한 독특한 의류점

우리나라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의 직접적인 행위자이며, 문화적 자본가 집단인 새로운 소상공인 계층은 삐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계급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는 마르크스와는 달리 자본을 경제적인 차원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문화자본, 사회관계자본, 그리고 상징 자본으로 나누어 이들을 사회적 경쟁에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간주하였다.


부르디외는 문화자본을 세 가지의 형태로 구분하였는데, 첫째는 가족의 경제적 여건에 바탕을 둔 것으로 지식, 교양, 기능, 취미, 감성 등과 같은 유기체의 지속적 성향의 형태이다. 둘째는 그림이나 책, 혹은 사진과 같은 문화적인 상품이 객체화된 형태이며, 그리고 셋째는 학교의 졸업장과 같은 제도화된 형태로 존재한다.


부르디외의 사회관계자본은 사회의 연결망 속에 존재하는 잠재적 자본으로 사회에서의 친분관계를 의미하며, 상징 자본은 경제 자본과 문화자본, 그리고 사회관계자본이 합쳐져 형성되는 것으로 사회적인 명성이나 명예 등이다.


부르디외는 그의 책, '구별 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에서 1970년대 프랑스 사회에서 발견되는 '성격이 애매한 직업'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이 애매한 성격의 직업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소상공인 계층의 경제활동과 매우 유사하다.  


"기성복 '부띠끄'의 경영자, '유명 메이커' 옷을 싸게 파는 의류점, 이국적인 옷, 
액세서리나 민예품을 파는 상인, 레코드점, 골동품점, 실내장식가, 디자이너,
사진가, 혹은 레스토랑 경영자나 '카페' 경영자, 지방의 도시상
(학교를 나온 뒤에도 학생생활의 특징인 오락과 일을 혼동하는 상태에서 전투적 태도와 도락적 태도를 계속 구별하지 못하는) 아방가르드적 서적상 등 문화적 재화와 서비스 판매자들은 모두 성격이 애매한 직업을 문화자본에 대한 최대 이익을
되돌려 받는 수단으로 이용한다"(부르디외, 2005, p. 262).


이들의 판매성공은 최소한 상품의 질이나 성격만큼이나 판매자와 상품의 미묘한 차별화에 좌우되며, 지배계급 문화와의 친밀성(사회관계자본)과 다른 사람과는 구별된다는 점(문화자본)을 과시할 수 있는 기호 혹은 표식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하였다.


부르디외는 또한 새로운 소상공인 계층인 신흥 쁘띠 부르주아지가 보유하는 성향은 파리에서만 완전히 실현된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는 파리라는 도시가 "보다 집중적인 문화상품의 공급이나 문화적으로 혜택 받은 집단과의 접촉에서 얻는 소속감 및 유인과 같은 문화적 가치의 중심지"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도시 현상인 젠트리피케이션을 살펴보면, 부르디외가 1970년대 관찰한 신흥 쁘띠 부르주아지의 파리에서의 활동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소상공인 계층 또한 서울을 중심으로, 서울내에서도 아주 특정한 지리적 공간에 밀집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은 '서울의 세계화, 탈산업화,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초국가적 행위자인 글로벌 엘리트들의 이동과 활동 및 실천의 흐름들이 접합되는 곳’ 혹은 ‘기존의 산업사회에서 보여준 전통적인 양식의 틀을 벗어난 탈산업사회의 문화적인 다양성과 가치를 수용하는 새로운 거점지대’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서울의 핫플레이스들이 매끈매끈한 빌딩들이 줄지어선 강남지역이 아닌 강북의 오래되고 낡은, 후미진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전통적인 가치를 거부하는, 남과 다른 생산과 소비활동을 지향하는 새로운 사회계층들이 공유하는 문화의 중심에 서고자 우리 사회의 신흥 쁘띠 부르주아지의 욕망에 기인한다.  


참고문헌

Bourdieu, P. (2005)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최종철 옮김. 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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