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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색자 Apr 14. 2019

언제부터였을까, 이태원이 핫플레이스로 변한 건 II

이태원 골목길의 아우성 7

2016년 다시 마주한 이태원은 1991년 처음 만났던 이태원과 달랐다. 거리는 여전히 정돈되지 않은, 산만하고 어지러운 모습이었지만, 더 이상 짝퉁 패션 아이템을 파는 곳이 아니었다. 1997년 한국인 대학생 살인사건으로 사회를 놀라게 했던 이태원 초입에 위치한 버거킹은 사라졌고, 그 부근에는 '버뮤다(Bermuda)'라는 칵테일 바와 재미교포가 운영하는 '수지스(Suji's)'라는 브런치 카페가(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있었다. 이태원의 비좁은 골목길 구석구석에서도 이국적이고 독특한 카페나 레스토랑들로 생기가 넘쳐났다. 1990년대의 침체되고 위축된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마치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새로운 여행지에 온 듯 이태원의 골목길을 탐색했다.  

이태원 초입에 위치한 버뮤다 칵테일 바

이.태.원.에. 도.대.체. 무.슨.일.이 생.긴.걸.까?


1990년대 이태원의 상권이 침체되자, 사람들은 이곳을 빠져나가 시작했다. 빈 점포와 집들이 늘어갔다. 그러나 2000년대 초부터 내국인이 빠져나간 이태원의 빈자리를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외국인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과 국내에서 찾기 힘든 외국의 식재료를 파는 상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이태원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내국인들도 조금씩 늘어났다.


한겨레 21 특집기사는 이태원에 증가하는 다국적 레스토랑에 관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 오래된 이슬람 식당인 모굴의 얼굴이 요즘엔 환하다... [중략]... 모굴의 간판은 이 거리의 활력을 상징한다. 모굴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어느새 서울의 명물로 떠오른 식당이 줄지어 늘어섰다. 음식의 국적만 보아도 중국, 인도, 중동은 기본에 이탈리아, 프랑스는 물론 그리스, 벨기에, 심지어 불가리안 레스토랑까지 있다. 인테리어에 개성도 넘친다..."(2007. 12.20).


2000년대 중반 무렵 이태원에 나타난 또 다른 변화는 다국적 문화를 즐기는 내국인의 수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특집기사에서 변화된 이태원의 모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 그러나 이곳이 외국인 중심의 거리는 아니다. 오히려 이 거리는 한국인도 가고 싶어 하는 이태원으로 변화를 상징한다... [중략]... 예전에는 외국인이 외국인을 상대로 운영하는 외국식당이 많았으나 이제는 한국인이 운영하고 외국인과 한국인이 모두 오는 음식점이 늘었다..."(2007. 12. 20).


이태원 해밀턴 호텔 뒤 다국적 식당의 모습

2005년부터 이태원에서 옷가게를 운영해 온 L 씨는 이태원의 변화를 '수지스(Suji's)' 브런치 카페가 유명세를 타면서부터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브런치'는 왜 갑자기 인기가 있었던 걸까? 2011년 압구정동에서 이태원동으로 이사한 30대 중반의 이태원 주민 K 씨는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했던 '브런치'라는 단어가 2000년대 후반부터 유행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미국의 인기 드라마, '섹스 엔 더 시티(sex and the city)'에 등장하는 4명의 독신녀들이 토요일마다 즐기는 브런치 문화를 모방하고 싶은 심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2015년 중앙일보에서도 수지스 식당을 소개하면서 K 씨와 유사한 내용을 기사에서 밝히고 있다. "2000년대 중반, TV 속 '그녀들'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미국 드라마 '섹스 엔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 사만다, 미란다, 샬롯 말이다. 늦은 아침 뉴욕 맨해튼의 근사한 브런치 레스토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은 한국의 젊은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이때부터 한국엔 브런치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올해로 10년이 됐다. 늦잠 자고 느긋하게 일어나 여유롭게 먹는 아침 겸 점심을 뜻하는 브런치는 이제 유행을 넘어 식문화로 자리 잡았다"(2015.5.27).


2001년에서 2010년까지 5,088건의 기사를 대상으로 분석하여 추출한 이태원 관련 키워드를 살펴보면, 지하철 6호선, 브런치, 용산공원, 압구정, 신사동_가로수길, 나이지리아인 등으로 당시의 이태원에서 증가하고 있는 나이지리아인과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이태원이 강남의 가로수길과 압구정동과 비교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이태원과 관련한 키워드 분석결과


이태원의 변화는 2010년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대로변뿐만 아니라 우사단로, 회나무로, 경리단길 등이 20-30대의 밀레니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골목길을 따라 빠르게 확대되어갔다.  


이태원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식당 등이 주를 이룬 반면, 이태원의 동쪽인 한남동에는 고급 상권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한남동은 1970년부터 외국인과 한국의 부유층이 거주해오던 곳으로 내외국인들에게 쇼핑과 유흥의 장소였던 이태원과는 차별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한남동은 2004년 리움 미술관이 개관되면서 이태원로를 중심으로 상류층 문화지구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이태원의 제일기획에서 2003년부터 2013년까지 10년 동안 근무한 L 씨는 한남동에 나타난 변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제가 처음 제일기획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을 때는 한남동에 마땅히 점심을 먹거나 차를 마실만한 장소가 없었어요. 저희는 광고를 하는 사람들이라 나름 분위기 있는 장소를 선호해서 자주 다리를 건너 강남의 압구정동에서 식사를 하고 미팅도 일부러 그쪽에서 잡았죠. 그런데 2000년대 중후반부터 한남동이 변하기 시작하더라고요. 로스팅을 직접 해주는 카페가 생겼고, 패션 5나 글래머러스 펭귄 같은 고급스러운 디저트 카페, 일본식 라면 가게 등의 맛집들이 골목에 줄지어 생겨났어요. 더 이상 강남으로 갈 필요가 없어졌죠. 오히려 강남에 있는 친구들이 저희 사무실 근처로 오게 되었어요.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자신만의 스타일로 꾸민 강남에서나 경험할 수 있었던 맛과 홍대 앞의 분위기가 있는 가게들이었어요". 한남동에는 콘서트 홀인 현대카드 공연장, 뮤지컬 공연장인 블루스퀘어와 복합 문화공간인 사운즈 한남이 들어서면서 문화와 예술이 특화된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한남동에 위치한 사운즈 한남


2016년의 이태원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공간이 아니라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주목받는 공간이었다. 이태원은 이제 더 이상 거북한 기지촌이 아니었다. 이곳은 밀레니얼들에게 해외유학이나 연수 혹은 여행을 하는 동안 즐겼던 외국의 문화생활을 재현할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여행을 하듯, 이태원의 골목길을 누비며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고 있다.



참고문헌

'이태원은 누구의 땅인가' <한겨레 21, 신윤동욱 외>, 2007년 12월 20일

'브런치 대중화 10년, 뉴욕 스타일에서 강남 스타일' <중앙일보, 송정과 김경록>, 2015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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