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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색자 Apr 18. 2019

이태원 골목길의 흔들리는 변화 I

2000년대 중반 이후 나타난 이태원 골목길의 변화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상권의 불황과 주한 미군기지의 이전으로 퇴조기를 겪고 있던 이태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1990년대 이태원의 침체된 상황에 대해서 최종일은 그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태원은 불황을 맞았고, 사람들은 예전처럼 이태원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시공간의 압축을 경험하는 현대사회에서 불명예스럽던 역사가 만들었던 공간에 사람들은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2003, P.IV).


그러나 오늘날의 이태원은 2000년대 초반 최종일이 목격한 것처럼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공간이 아니다. 이태원은 서울에서 가장 핫한 장소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는 공간이 되었다.


이태원에 나타난 변화는 2015년 무렵부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설명되기 시작하였다. 대중매체는 앞다투어 젠트리피케이션과 관련한 부정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빅 카인즈를 이용해 20개의 언론사에서 '이태원 젠트리피케이션'을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2013년 이전에는 한건도 발견되지 않았고 2014년에는 겨우 4건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2015년에는 50건, 2016년에는 131건으로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2017년에는 96건이 발견되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280건의 기사를 대상으로 분석하여 추출한 '이태원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키워드는 임대료, 핫플레이스 등이며, 이태원과 비슷한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나고 있는 성수동, 연남동, 해방촌도 함께 기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이태원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키워드 분석 결과


이태원의 젠트리피케이션과 관련한 보도의 요지는 2012년 한국일보에서 묘사한 바와 같이 '옆동네 르네상스'를 이룬 이태원의 골목길에서 나타난 변화를 일으켰던 당사자들인 선구적 젠트리파이어들이 오히려 자본의 논리에 의하여 자신들이 창조한 공간에서 쫓겨난다는 것이었다. 서울시가 2015년 11월 발표한 '서울시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에 따르면, 이태원 2동의 경리단길은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한 지역으로 분류되었으며, 해방촌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예상되는 지역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태원 1,2 동, 보광동, 한남동 위치도


서울시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에 나타난 상업공간 젠트리피케이션의 특성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단계에서는 임대료가 저렴한 구도심에 공방, 갤러리 등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머물 수 있는 거점이 생기고, 이러한 공간들을 따라 카페, 식당 등의 시설들이 자리를 잡아 해당 지역만의 독창적인 문화가 형성된다. 다음으로 2단계에서는 이러한 장소들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유동인구가 급증하게 되고 대형 프랜차이즈를 기반으로 하는 커피 전문점, 음식점 등 상업시설이 따라서 증가하게 된다. 이에 대한 결과로 기존 건축물의 용도변경으로 인한 지가와 임대료가 급등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마지막 3단계에서는 급등한 지가와 임대료로 인해 문화, 예술가 집단, 영세자영업자, 기존 원주민까지 외부지역으로 이주하게 됨으로써 지역 정체성과 장소성이 상실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상업공간 젠트리피케이션의 특성 및 피해 과정


상업공간 젠트리피케이션의 특성 및 피해 과정에 따라 이태원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의 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1. 임대료가 저렴한 오래된 골목길의 낡은 단독주택의 증개축 증가

서울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장소의 특징은 60-70년대의 낡은 건물들이 밀집된 좁은 골목길이라는 점이다. 이태원에 나타난 변화도 이러한 골목길을 따라 공방이나 카페, 식당들이 생겨나면서 시작되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VISIT SEOUL에서 묘사한 이태원의 우사단로는 "드라마 '야인시대'에 나올 것 같은 구식 이발소가 있는가 하면 바로 옆에는 최신 로스팅 기계가 있는 커피숍이 나오는 곳", 그리고 "삶의 고단함을 표정 가득 담고 있는 할머니가 지나가는가 하면 투 블록컷 헤어의 화려한 청년이 나타나는 곳"이다. 다시 말하면, 우사단로에서 젊은 아티스트들을 사로잡은 것은 새로운 것과 옛것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는 빈티지한 느낌이었다.  


제일기획 빌딩 건너편, 꼼데가르송 길 뒤쪽의 골목길에도 오래된 단독주택이나 소형점포를 리모델링해서 들어오는 상점들이 빠르게 늘어가고 있었다. 꼼데가르송길의 변화에 대한 기사에서 한남동의 주민은 "자주 가던 동네 잡화점도 어느새 없어지고 공사를 하고 있다... 동네 이곳저곳에서 인테리어 공사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라고 동네의 변화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한남동 골목길의 오래된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한 레스토랑


실제로 이태원의 건축행위 신고건수 변화를 살펴보면, 전체적으로는 2006년에서 2010년 사이에는 감소하지만 2015년으로 가면서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표 참조). 또한 주거용과 상업용 건물의 건축행위가 주를 이루는데, 그중에서도 눈여겨볼 만한 것은 2006년도에 비해 2015년에는 주거용 건물의 인허가 동수는 감소하였지만, 상업용 건물은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2010년에는 주거용과 상업용 건물의 인허가 건수가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것이 발견되는데, 이는 2008년 세계경제위기에 따른 부동산 불경기에 기인한 것으로 짐작된다. 또 다른 주목할 점은 2006년에서 2010년 사이에 상업용 인허가 연면적이 2배 이상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주거용 건물들이 증개축을 통해 근린생활시설과 같은 상업용도로 용도가 변경되는 것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용산구 신증개축, 이전, 대수선 허가건수 변화(2006-2015)


2. 유동인구의 증가

이태원 골목길에 생겨난 독창적인 상점들이 인기를 끌면서 이태원 지역을 찾는 유동인구도 증가하게 되었다. 이태원 지역의 지하철역인 녹사평역, 이태원역, 한강진역을 이용하는 승객들이 200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증가하였으며, 특히 2012년 이후 급격하게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서울교통공사에서 발표한 2017년 연간 시간대별 승하차 인원 실적에 따르면, 이태원역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37,364명으로 지하철 6호선 전체 구간에서 가장 승하차객이 많은 역이다.

이태원 지역 지하철 승하차 인원 변화 추이(2006-2012)


3. 지가 및 건물가의 상승, 그리고 취득세와 재산세의 증가

이국적이고 특색 있는 장소로 탈바꿈된 이태원의 골목길이 20-30대의 밀레니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유동인구가 증가하자 지가와 건물가가 상승하게 된다. 이태원 지역의 취득세 변화를 살펴보면, 2006년부터 2008년 사이에는 전반적으로 취득세가 감소하지만, 2010년과 2012년에는 다시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보광동 지역을 제외하고 이태원 1, 2동은 2배 이상 증가하였고, 한남동의 경우 3배 이상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한남동의 경우, 상업시설의 건물가 상승뿐만 아니라 한남 더 힐과 같은 고급빌라의 개발로 인한 영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태원 지역 취득세 변화 추이 (2006년-2012년)


이태원 1,2동 , 보광동, 그리고 한남동의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0년 동안의 평균 공시지가 변화를 살펴보면, 이태원동의 경우, 1.95배, 보광동은 1.92배, 그리고 한남동은 1.81배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시 동별 전체 평균 공시지가 상승률이 1.6배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이태원 지역의 평균 공시지가 증가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태원 지역의 공시지가 변화 (2000년 -2015년)
서울시 행정동별 평균 공시지가 변화 (2005년-2015년)


2000년대 중반 이후, 이태원의 골목길은 독창적이고 개성이 넘치는 선구적 젠트리파이어들에 의해 이국적이고 특색 있는 공간으로 변화되었다. 1990년대의 침체되고 위축되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생기가 넘치는 장소가 되었다. 20-30대의 밀레니얼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이태원 골목길의 핫플레이스들을 SNS를 통해 발 빠르게 공유하고 확산시켰으며, 이태원을 방문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오래된 골목길의 낡은 건물들이 증개축을 통해 카페나 레스토랑, 부티크들로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갔다. 이러한 상업시설과 유동인구의 증가는 공시지가를 상승시켰고, 재산세와 취득세도 덩달아 증가하였다. 지자체와 건물주 입장에서는 이태원의 골목길에 나타난 변화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윈윈 시츄에이션(win win situation)'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태원 골몰길을 오랫동안 지켜왔던 원주민과 낡고 쇠퇴한 골목길에 변화를 일으켰던 선구적 젠트리파이어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참고문헌

최종일 2003 이태원 공간에 나타난 '아메리카나이제이션'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가로수길 너머 세로수길... 홍대 지나 연남동... 옆동네 '르네상스'' <한국일보, 고은경, 김현수>, 2012년 9월 8일

"옛 건물 틈새 번쩍이는 아티스트의 숨결: 이태원 우사단길", Korean.visitseoul.net, 2018년 8월 10일 접속

''꼼데가르송 길 효과' 한남동 대사관 빌라촌 변신 중' <조선비즈, 허성준>, 2011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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