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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색자 Sep 28. 2020

2009년, 강남 언니 vs  강북 오빠

첫째 딸이 강북 오빠, 남편을 만난 건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그녀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Global Financial Crisis) 이듬해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는 게 팍팍해지니 외국인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았다. 한국과 영국, 호주를 옮겨 다니며 살다 보니 지치기도 하고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결심했다. 마침 서울 오피스에 자리가 나 인터내셔널 오피서(International regional manager)로 지원을 했다. 섭섭해하는 호주 브리즈번(Brisbane)의 친구들을 뒤로하고 신이 나서 짐을 쌌다. 하지만 막상 다시 시작한 서울 생활은 녹녹지 않았다. 그래도 매해 크리스마스 휴가는 집에서 보냈었는데, 어느새 서울이 낯선 도시가 되어 있었다. 그녀도, 서울도 변한 듯했다.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친한 선배 언니가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남자후배가 있다며, 소개팅을 해주겠다고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안 그래도 2009년 가을이 유난히 쓸쓸하게 느껴졌었다. 그는 게임 프로그램을 만드는 벤처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왠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다니는 남자들과는 다를 것 같았다. 옷장에서 몇 시간 동안 고르고 고른 옷을 입고 부푼 마음으로 카페로 나갔다. 올백한 머리를 한 그의 모습이 멀리서도 눈에 확 띄었다. 그는 재치 있게 이야기를 참 잘했다. 별로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었는데, 오랜만에 한참을 웃었다.


30대 중반이 되도록 결혼엔 별로 관심이 없다던 두 사람은 만난 지 6개월 만에 함께 살기로 했다. LA로 한 달 동안 출장을 떠났던 그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그녀의 집으로 달려와 청혼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 살지를 정하는 일이었다. 비록 짧은 연애기간이었지만, 별다른 말다툼 한번 하지 않았었다. 집 문제로 처음으로 남편과 다투었다. '강남'엔 절대로 살고 싶지 않다고 고집을 부리는 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왜 강남에 살고 싶지 않다는 걸까?


비록 그녀가 자신이 강남에 거주한 기간은 실제로 얼마 되지 않는다고, 무슨 강남 언니냐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의 눈에 비친 그녀는 딱 강남 언니였다. 사실 그도 강남 언니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었다. 처음 소개팅을 한 날,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화려한 의상의 - 소매 없는 퍼 베스트(fur vest)에 발랄한 노란색의 짧은 치마를 입고 롱부츠를 신은 - 그녀는 그냥 강남 언니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가급적 눈에 띄고 싶지 않은, 무채색의 스타일을 - 사실 스타일이랄 것도 없는, 무난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헛’ 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나왔다. 다소 강렬했던 첫인상과는 달리 막상 이야기를 해보니 그녀는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함께 있을수록 즐거워지는 사람이었다. 해맑게 웃는 모습이, 경쾌한 웃음 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성북동에서만 자란 그가 강남을 처음 경험한 것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였다. 그의 친척들도 대부분 강북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남에 갈 일은 거의 없었다. 그가 입학한 과에는 유난히 강남의 명문 고등학교 출신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만났던 친구들과 분위기가 너무나 달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넉넉지 못한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던 그에게 부족한 것 하나 없어 보이는 그들의 거침없는 행동이 유난히 더 마음이 쓰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성북동에서 자랐다고 하면,  TV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성북동 윗동네의 회장님 댁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의 집은 성북동 아랫동네에 있었다. 꽤 부유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아버지의 건강악화로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머니가 사서로 계신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보냈다. 책 속의 세계로 도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공부를 꽤 잘했던 그가 학비도 비싼 사립대를 굳이 선택한 것에 대해서 모두가 의아해했다. 어머니는 내심 섭섭해하셨지만, 대학교만큼은 그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아무리 우리나라 최고의 학부라고 하지만, '국립'대학교엔 가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가끔 버스를 타고 가서 기웃거리며 바라봤던, 신촌에 있는 그 학교, 그 멋진 캠퍼스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싶었다.


얼마나 설레던 대학생활의 시작인가? 성북동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강남 출신의 같은 과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친구들은 대학교 1학년인데도 차를 가지고 다녔다. 물론 대부분 엄마 차를 빌려 타고 오는 거였지만, 비싼 외제차를 갖고 다녔다.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쳐서 수업이 끝나면 잽싸게 학교를 빠져나갔다. 학과에서 이루어지는 행사나 활동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방학 때마다 해외연수나 여행을 다녔고, 씀씀이도 무척 컸다. 대학생인데도 대화의 주제가 대부분 부동산이나 차에 관한 거였다. 뉴스에서나 보던 부유한 '강남 문화', 내가 속하지 못하는 세상인 듯했다. 공연한 자격지심이 생기면서 강남에 대한 반발이 생겼다. 무조건 강남이 싫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부모덕에 누리는 부를 당연한 듯 여기는, 그 문화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강남에 살자고 하는 거다. 물론 그녀가 강남에 살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 친정 가까이 살고 싶다는 거였다. 그는 친척들이 모여 살던 성북동이 너무 답답해서 가급적 친척들과 가까이 살고 싶지 않았다. 처갓집 근처라니! 게다가 자신이 10년동안 모은 돈으로는 강남의 낡고 작은 아파트를 겨우 전세 얻을 수 있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에게 결혼은 곧 '새 출발'이었다. 드디어 성북동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는데 - 낡고 좁은 아파트에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깨끗하고 넓은, 새 집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아파트는 생각만 해도 너무 답답했다. 그렇지만, 어쩌랴... 그녀가 원하는 곳이 강남의 아파트라고 하니 따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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