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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색자 Oct 01. 2020

2010년, 강남의 낡은 아파트 그리고  새 출발

첫째 딸이 살고 싶은 집은 한옥이었다.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인사동의 전통찻집과 미술관을 틈만 나면 어머니와 돌아다녔다. 가회동 골목길의 한옥도 구경 다녔다. 서울에서 나고자란 서울 토박이인 어머니가 들려주는 중학교 시절 타고 다녔던 전차며, 고등학교 시절의 콩나물시루 같았던 만원 버스에서 남학생이 몰래 찔러 넣은 연애편지, 교복을 입고도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이류 영화관 이야기가 그렇게 낭만적으로 들릴 수가 없었다. 오로지 입시공부에만 매달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집, 학교, 독서실을 오고 가던, 그녀의 고등학교 생활과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그때부터였다. 가회동의 한옥집에 대한 로망을 키운 건. 작은 마당에 철철이 꽃나무를 키우고 강아지도 같이 사는 그런 집을 꿈꾸었었다. 어린 시절 단독주택에서 딱 한번 강아지를 키울 수 있었다. 작은 고모가 친구네서 얻어 온 새끼 강아지를 '흰둥이'라고 불렀다. 무슨 견종 인지도 알 수 없는 잡종이었지만, 품 안에 쏙 들어오는 하얀 강아지의 부드러운 촉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시절 강아지는 마당에서만 키우는, 집안에는 절대 들여놓지 못하는 존재였다. 과천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흰둥이는 동네 이웃집에 맡겨졌다. 흰둥이가 그리워 과천으로 이사 간 후 몇 날을 울었는지 모른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강아지를 키워야겠다고 결심했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한옥에 살고 싶다는 첫째 딸에게 어머니는 단독주택에 사는 게, 더구나 한옥에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며 - 자려고 누우면 웃풍때문에 코끝이 시린 겨울밤의 매서움을 모른다고, 아직도 철이 없다고 끌끌 혀를 차셨다. 어머니는 두 사람 다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좀 무리를 해서라도 강남에 아파트를 사라고 했다. 셋방살이의 설움은 둘째치고 우리나라에서 부동산만큼 좋은 투자가 없다고 했다. 마침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하락하고 있었다.


                그림 1. 연도별 주택담보대출 금리

                    출처: 통계청


이명박 정부(2008-2013)는 2008년 세계경제위기로 급격하게 위축된 부동산 시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노무현 정부 때 강화된 부동산 관련 규제를 차례로 해제하였다. 서울 강남 3구를 제외한 투기지역을 해제하였고, 양도세, 취득세, 등록세를 감면하였을 뿐만 아니라, 분양권 전매제한도 풀렸다. 2010년 대출 규제를 완화하여 강남 3구를 제외한 전 지역에 대해서는 은행권 자율로 총부채상환비율(Debt-to-Income, DTI)을 정하게 했다. 2012년에는 강남 3 구도 투기지역에서 해제했으며, 은퇴자의 DTI도 완화했다. 


뿐만 아니라 서민주거안정을 목적으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수도권 100만 가구를 포함하여 총 150만 가구를 인근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보금자리주택 사업은 국민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분양, 임대주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수요자 맞춤형으로 공급한다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의 완화로 수도권 보금자리 주택은 당첨만 되면 상당한 시세차익을 볼 수 있는 그야말로 '로또 아파트'였다. 서울 강남과 서초, 하남 미사 등 서울 또는 서울 인근 알짜 지역에 공급된 보금자리 아파트는 청약 열풍을 몰고 왔다. 더구나 무주택 요건 때문에 대기 수요자들이 임대시장에만 머물러 집값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전셋값이 급등하였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전세 가격지수(기준 월 2017. 11=100) 변화를 살펴보면, 전국의 경우에는 69.0에서 88.27로 상승하였고, 수도권의 경우, 66.4에서 83.2로, 그리고 서울의 경우, 66.3에서 83.78로 상승하였다. 노무현 정부(2003-2008) 당시에는 집값 폭등에도 불구하고 전세가율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전세 가격지수(기준 월 2017.11=100)는 전국의 경우, 62.77에서 69.07로 상승했을 뿐이었다. 수도권(57.44에서 66.27)과 서울(58.37에서 66.03)의 경우에도 전국의 경우보다 상승률이 조금 높을 뿐이었다. 


그림 2. 연도별 아파트 전세 가격지수 변화(2003-2015, 기준 월 2017. 11=100)                                                                      

출처. 한국감정원


보금자리주택 사업지가 '투기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명박 정부는 무주택 서민들에게 합당한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로또 아파트' 시비를 잠재웠다. 그러나  보금자리주택 사업은 박근혜 정부(2013-2017)가 들어선 이후, 축소 또는 중단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보금자리주택 사업 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하여 장기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개념의 행복주택 사업을 추진하였다. 보금자리주택 사업의 경우, 일반 분양아파트가 40% 이상을 차지하여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서민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림 3. 한국 역대 정부 주택 가격 상승률 비교

출처: 한국은행, 이코노라떼

 

한옥에 살고 싶다는 첫째 딸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는 차라리 강남 아파트에 살겠다고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한옥 이야기에 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을 보고 첫째 딸은 까르르 웃었다. 그녀와 다투는 것도 지치고 집 문제는 와이프에게 맡기는 게 속이 편하다고 지인들도 이야기했다. 장모님은 집을 사야 한다고 은근한 압력을 가하셨으나,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집값은 더 이상 오를 것 같지 않았다. 부동산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니 설령 부동산 경기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그렇게 큰돈을 깔고 앉아 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주식처럼 수시로 사고팔 수도 없고, 환금성이 떨어지는 부동산에 투자를 한다는 건 어리석게만 보였다.


그에게 집은 잠을 자는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루에 고작 몇 시간 - 그것도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보내는 그 시간을 위해 큰돈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굳이 집을 소유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나중에라도 마음에 꼭 드는 집을 발견하면 그때 사자고 했다. 더구나 그의 빛나는 제2의 인생을 ‘빚’으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장모님은 1억만 빌리면 아파트를 살 수 있는데, 왜 굳이 전세를 얻냐고 몇 번이고 말씀을 하셨지만 솔직히 그 낡은 아파트를 빚까지 내가며 사고 싶지는 않았다. 아파트를 소유한다는 건, 왠지 그곳에 메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강남이라지만, 그 낡고 긴 복도를 몇 년동안이나 쭈욱 걸어 다닐걸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첫째딸은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다. 어정쩡하게 그녀의 뒤꽁무니를 쫒아다니며, 이것 저것을 도와주기는 했지만 - 솔직히 그다지 재미가 있지는 않았다. 재미가 없다기보다는, '막막함', 그 자체였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집에 대한 생각을 한 번도 구체적으로 해본 적이 없었다. 집은 그저 있는 그대로 들어갔다가 이사 나오면 그만인 곳이라고 생각했다. 집을 꾸며 본 경험도... 집을 어떻게 꾸며야 겠다는 것은 지금까지 그에게 한번 가져보지 못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길이 닿은 서초동 신혼집은 밖에서 보면 무슨 뉴욕의 슬럼가처럼,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현관문만 열고 들어서면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그녀가 정성껏 꾸며놓은 아늑한 집에서 나는 달콤한 냄새가 그를 반겼다. 무엇보다 자기를 보며 활짝 웃는 그녀의 미소가 너무 좋았다. 처음으로 집이란 아늑한 곳이구나 깨달았다. 


그녀는 집뿐만 아니라 찻잔 하나, 수저 하나까지 일일이 세심하게 골랐다. 밥을 먹는데도 어찌나 시간이 오래 걸리던지, 그녀는 조그만 종지 그릇 하나하나에 다른 반찬을 담아 주었다. 물론 설거지는 그의 몫이라 속으로 굳이 반찬을 이렇게 따로 담아야 하나 생각은 했지만, 그녀와 집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나른한 봄날의 햇살처럼 따뜻했다. 집은 그에게 늘 벗어나고 픈 장소였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하는 집은 머물고 싶은 곳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뛰어놀 던, 정겹던 성북동 골목길의 그 집 같았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삶의 무게가 어머니의 어깨를 짓누르기 전의 다정했던 공간... 그곳이 그가 그토록 싫어하던 강남이어도 상관이 없었다. 아니 막상 살아보니, 강남의 낡은 아파트에서의 생활은 모든 것이 편리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강남, 강남 목놓아 부르는지 슬며시 고개가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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