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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색자 Nov 01. 2020

2012년, '강남'이라는 정체성

무조건 강남이 싫다던, 그도 강남이라는 지역이 주는 편리성에 고개를 끄덕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초동 신혼집에서 강남역 근처에 위치한 그의 오피스까지 차로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사실 조금 서둘러 나오면 아침운동 삼아 충분히 걸어갈 수도 있었다. 성북동 집에서 출퇴근할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교통체증을 피해서 나와도 한 시간은 꼬박 걸렸다. 게다가 회식이 있어서 사무실에 차라도 두고 오는 날엔 성북동 집에서 한참을 기다려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 역까지 와서 택시를 타거나 지하철 4호선을 타고 또 2호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이미 너무 지쳐있었다. 서초동 집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너무 좋았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택시나 버스가 금방 도착을 했다. 굳이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낡은 아파트 단지 내의 상가는 보물창고였다. 그가 맨 처음 뉴욕의 슬럼가 같은 아파트 단지 내의 쓰러질 듯한 상가건물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도저히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그곳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상가 1층에는 입안에 군침이 돌게 하는 반찬가게부터 막 구워 나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식빵, 신선한 야채, 생선, 고기를 파는 가게부터 온갖 다양한 수입품을 파는 가게...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떡볶이를 파는 분식점까지! 게다가 강남 사람들은 모두 차갑고 쌀쌀맞을 거라는 그의 선입견과는 달리, 마치 오래된 동네의 마트에 온 것처럼 장을 보러 온 어머니들과 상점 주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다. 성북동 근처의 시장에서 어머니가 장을 보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다. 상가 2층에는 헤어드레서가 두어 곳이나 있었고, 지하층에는 피트니스 센터와 실내 골프연습장이 있었다. 맞벌이를 하는 그와 그녀에게 단지 내의 상가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그림 1. 강남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 내의 상가


어느 날 사무실에서 우연히 본부장님과 점심을 먹고 난 후, 차를 마시며 시작된 강남과 강북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만약 강북과 강남의 부촌 지역 중 어느 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디에 살 것인가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게 되었다.


사무실의 대표적인 강남 오빠, 이 본부장님은 늘 멋쟁이셨다. 처음엔 본부장님의 와이프가 세심하게 신경을 많이 써주는구나 생각을 했었는데, 아니었다. 본부장님은 양말의 컬러, 텍스쳐까지 옷에 맞추어 자신이 직접 코디하신다고 했다. 뉴욕(New York)에서의 오랜 유학생활 덕분인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 적당한 웨이브의 헤어부터 나이키 트레이닝슈즈까지 - GQ 패션 매거진에 나올 법한 스타일링이었다. 그의 눈에 비친 본부장님은 센트럴파크에서 마주치는 세련된 뉴요커(New Yorker)였다.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고 멋진 헤어스타일을 연출하시나 했더니, 그의 와이프보다 더 부지런히 헤어드레서에 다니시는 듯했다. 샤워를 끝내고 아침마다 무스를 쭈욱 한 번에 짜서 머리에 쓰윽 바르고 마는 그의 헤어스타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한 번은 쟈켓 위에 무심한 듯 스웨터를 걸친 모습이 남자인 그의 눈에도 너무 멋져 보여서 그 스타일을 연출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한 결과인지 물어보기까지 했었다. 본부장님은 그의 질문이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 웃으시며 친절히 설명을 해주셨다. 세련된 강남 이미지와 달리, 본부장님은 의외로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었다. 강남 사람들은 다소 가식적일 거라는 그의 선입견을 없애 주었다.


초등학교 때(1970년대 중반)부터 강남에서 살고 계신, 강남 키즈인 본부장님은 정부의 강남 개발 계획에 따라 대한 주택공사가 건설한 최초의 주공아파트인 구반포 주공아파트에 가장 먼저 입주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본부장님 어머니께서는 부동산에 눈이 밝은 친구분을 따라 강북의 미아리에서 구반포 주공아파트로, 구반포에서 역삼동의 개나리 아파트로, 그리고 역삼동에서 분당으로까지 이사를 하셨다고 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은 본인 어머니를 두고 한 말이라며 웃으셨다.


유복한 집안의 막내 아드님이신 본부장님은 구반포에서 통의동에 있는 사립학교를 다녔는데, 통의동 골목길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하셨다. 친구들에 비하여 늦은 결혼을 하신 본부장님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아들에게도 골목길의 기억을 물려주고 싶어서 틈만 나면 아들 손을 잡고 통의동, 삼청동, 계동 골목길을 같이 다니신다고 하셨다. 반듯반듯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아파트 길에 익숙한 아들은 이곳저곳으로 연결되는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그곳에서 만나는 상점들을 매우 신기해한다며, 아파트에 사는 것이 아이들 정서를 메마르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을 하셨다.


흥미로웠던 건, 우리 사회에서 독특한 부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강남'에 대한 본부장님의 경험이었다. 본부장님이 다니셨던 통의동 사립학교 동창들은 대부분 성북동, 평창동 같은, 소위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인 부자들이 사는 지역의 출신들이었다. 동창들이 바라보는 강남은 한 마디로 '벼락부자' 혹은 '졸부'였다. 강남에 대한 친구들의 시선을 깨달은 뒤로는 자신이 강남에 산다는 걸 이야기하는 것을 왠지 꺼리게 되었다고 하셨다. 본부장님 친구들도 자녀의 학군 때문에 집안 대대로 물려오는 강북의 주택을 세를 주고 강남의 아파트로 이주하여 살고 있지만, 강남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여전한 듯하다고 이야기하셨다.


본부장님은 강남과 강북의 차이를 느껴본 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강북과 강남, 어느 곳에 살아도 상관은 없지만 강북의 부촌 지역은 차가 없으면 생활하기가 너무 어렵고, 뭘 하든지 동네 밖을 벗어나야 하는 것이 싫다고 하셨다. 워낙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구경 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성북동이나 평창동은 높은 담벼락과 커다란 대문 이외에는 볼 것이 하나도 없고, 걸어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사람 냄새가 안 난다고 하셨다. 게다가 커피라도 한잔 마시려면, 꼭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불편함이 별로라고 했다. 강남의 부촌인 청담동이나 압구정동은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교통 이용이 매우 쉽고, 주변에 백화점이나 카페, 레스토랑, 부티크 스토어, 갤러리 등과 같은 다양한 편의시설을 걸어서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좋은 학교와 학원들이 있는 점을 꼽았다.


매스컴에서 지나치게 강북과 강남의 차이를 과장해서 이분법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오히려 싫다고 하셨다. 대중들에게 그들이 만든 강남에 대한 허구적 이미지를 각인시켜, 오히려 이런 것들이 사회를 더 분열시키는 게 아닐까 우려하셨다. 세계의 어느 도시를 가나 '강남'과 같은 장소는 존재하기 마련인데, 마치 서울의 강남에는 일그러진 욕망만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묘사되는 것이 못마땅하다고 하셨다.


“강북의 오래된 부촌은 현대사회가 제공하는 것들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강남이라서 사람들이 몰리는 게 아니라 강북이 시대의 흐름을 못 따르는 게 아닐까요? 강북이 변화되면 사람들은 또 그쪽으로 이동하겠죠.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강남으로 몰렸던 것처럼".


본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가 지난날 갖고 있던 강남에 대한 공연한 자격지심과 반발심이 어쩌면 그동안 형성되어 온 강남에 대한 누군가에 의해 규정지어진 정체성을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인 결과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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