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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색자 Jan 28. 2021

2020년, 아파트의 재건축은 시작되고...

현재 그녀는 신반포에 살고 있다. 대형 쇼핑센터와 백화점, 고속버스터미널이 있고 명문 중고등학교가 집 가까이에 있다. 조금만 걸으면 지하철 3호선과 7호선, 그리고 9호선과 서울시내 곳곳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다양한 버스노선들이 있다. 가뜩이나 운전하는 걸 좋아하지 않던 남편은 은퇴 이후 자가용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녀의 아파트가 낡기는 했지만, 단지 내 오래된 나무들 덕분에 봄에는 연분홍빛 벚꽃이 흩날리고, 가을에는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다. 과천의 푸른 녹지만큼 잘 꾸며진 한강 공원이 있어서 남편과 자주 산책을 나갈 수 있다.

 

20년이 넘도록 이곳에서 살고 있지만, 그녀와 남편은 다른 곳으로 이사할 마음이 전혀 없다. 그런데 최근 그녀가 사는 아파트 단지가 재건축 승인을 받더니 일을 어떻게 일사천리로 처리를 했는지, 곧 이주를 해야 한다고 조합장이 연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공사기간이 길어질수록 공사비용이 많이 드니 꼭 협조해달라는 공문이 1주일에 한 번꼴로 왔다. 재건축 이후에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오를 것을 알고 있지만, 그녀는 80이 넘어서까지 이사를 다니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재건축이 끝난 이후 재입주를 하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추가 금액도 부담스러웠다. 이주지원금도 처음에 건설회사가 약속한 금액보다 훨씬 적어졌기 때문에 그 돈으로 지금 사는 집 근처는커녕 서울에서 전셋집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이 나이에 다시 셋방살이라니! 남편과 아파트를 팔고 근처로 이사를 하는 게 좋겠다고 결정했다. 하필 그때,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출 규제안(12.16 부동산 대책안)이 발표되었다. 이제 투기과열지구에는 현금부자가 아니면 아예 집을 사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요즘 뉴스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불과 2 , 임대사업자로 등록을 하라고 해서 했더니, 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은 줄고 내야  세금을 늘린다는 거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투기과열지구에 있는 집에 대한 재산세와 보유세를 점점  늘린다고도 했다. 아니 아무것도   없이 같은 집에 계속 살고 있는 사람한테 집값이 올랐으니 세금을  내라니 - 집값을 내가 올렸는가 말이다. 남편 연금과 임대수입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는 , 손에 쥐어지지도 않는 거품같은 숫자에 대한 세금을 내라니! 집이나 팔아야  엄청난 돈을 한번 경험이라도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집을  파시라고 해서 팔려고 했더니, 정부 규제에 서로 눈치만 보느라 집도 팔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에 매일 전화를 해도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명도 없다는 거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가?


큰 딸네도 집 때문에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다. 2010년 결혼할 때 그렇게 작은 아파트 하나라도 사라고 했건만, 집은 '사는 곳'이라며 그녀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더니 이제 와서 뒤늦게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그 낡은 아파트가 아무리 강남에 있어도 무슨 빚까지 내가며 사고 싶지는 않다며 큰딸과 큰사위는 손을 내저으며 싫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 낡고 작은 아파트가 재건축 승인 발표가 나자마자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 자기네 둘이 아무리 힘겹게 평생 모아도 도저히 모을 수 없는 액수의 돈이었다. 게다가 12.16 부동산 대책안이 발표되어 올해 전세 재계약을 해야 하는 큰 딸네는 벌써부터 한 걱정이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부동산 투기세력을 잡겠다고 하는데 -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그 투기세력들은 잘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듯하고, 힘도 능력도 안 되는 보통 사람들만 투기세력과의 전쟁에서 이리 저리 휘둘리고 있는 듯하다. 정부는 집이 부족한 이유를 '집을 많이 가진 사람이 또다시 집을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많은 집을 다 비워놓고 있느냐 말이다. 분명 임대를 주고 있을 텐데... 그럼 누군가는 살고 있다는 게 아닌가.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면서 왜 민간임대사업을 하고 있는 다주택자들에게 자기가 살지 않는 집을 자꾸 팔라고 하는 건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닌 집을 꼭 팔아야 한다는 건 결국 집은 ‘사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다. 주택을 살 수 없는 계층이 분명히 있는데, 이들은 그럼 어디에 살라는 것인지... 정부는 전세난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임대 물량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모두가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고 싶은 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다주택 보유 자체를 대표적인 투기행위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주택 보유자들의 민간임대사업에 대해서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로 인정하는 미국, 일본, 영국 등의 경우와 우리는 왜 다르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자가보유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결코 떨어지지도 않는데 말이다. 2019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가보유율은 61%다. 선진국의 경우에도 자가보유율이 70%를 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마 싱가포르가 거의 유일하게 자가보유율이 90%에 육박할 것이다.


서강대학교 김경환 교수님은 "1가구 다주택 중과세 폐지가 반드시 부자들에게만 이득이 아니라는 얘기다...[중략]... 1가구 1 주택 정책을 언제까지 고수할지에 대해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자가든 임대주택이든 '주거 수준 향상'과 '주거 안정 보장'이 더 중요하다"(매일경제 인사이드 칼럼, 2009년 4월 21일)는 점을 이미 10년전에 강조하셨다.


해방둥이 세대인 그녀는 20대 후반 결혼을 하면서부터 주택마련을 위해 아둥바둥 살아왔다. 셋방살이의 설움은 주거안정에 대한 목마름을 갖게 했고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살게 하고 싶은 소망으로 서울 강북 끝에서 과천으로, 그리고 강남으로 이사를 했다. 그녀는 한번도 투기를 꿈꾸지 않았다. 그녀가 바랬던 건 오로지 한 가지- 아이들에게만은 그녀와 같은 경험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60년이 지나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주거 안정은 보장되지 못하는 듯하다. 80이 다된 그녀조차 다가오는 이주날짜에 가슴만 조리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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