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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메 Nov 21. 2016

자연과 평화를 품은 도시, 제네바

161119 당일치기 GENEVA 여행기

일시: 19/11/2016

@Geneva, Switzerland/ Genève, Suisse


아침 5시 43분.

이렇게 일찍 눈이 떠진 건 유학 온 이후로 처음인 거 같다. 그도 그럴게 전날에 프레젠테이션 준비한다고 거의 밤을 새운 바람에 어제저녁 7시에 집에 도착하고 옷 갈아입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으니. 어쩌면 7시부터 잤는데도 중간에 깨지 않고 약 11시간 후인 아침 5 시대에 일어난 게 더 신기한지도 모르겠다. 


사실 아직 프레젠테이션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다음 주 화요일에 할 예정이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프레젠은 프레젠이고 여행은 여행이라는 점. 과제한답시고 지금밖에 하지 못할 일을 안 하는 건 내 머리가 납득을 못했다. 그래서 기꺼이 오늘 하루쯤은 나 자신을 위해 보내기로 했다. 


바로, 그르노블에서 버스로 약 2시간 반 정도면 도착하는 옆 나라 스위스, 제네바로 당일치기 여행 가기로.





이번 여행은 나 혼자서도, 늘 내 이야기에 등장하는 친구와 둘이서도 하는 여행이 아니었다. 무려 학교 국제동아리 주최로 하는 유학생 단체여행이었다. 정작 그 친구는 오늘 다른 일이 있어서 이번 여행을 신청하지 않았다. 뭐 그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즐거우면 되기에. 비가 조금씩 축축 내리는 아침 8시 30분, 그렇게 학교 앞에서 집합한 우리들은 제네바로 출발했다.




앞뒤로 꽉 찬 버스 속 나는 정가운데 창가에 앉았다. 카메라를 뒤적이며 손으로 익히는 사이 옆자리에 소야가 앉아도 되냐고 물어봐왔다. 물론이었다. 오히려 나도 투박한 영어실력으로 옆자리 친구랑 어색하게 2시간 보내는 것보다는 일본어로 얘길 주고받을 수 있는 게 훨씬 편했다. 아 미리 말해두자면, 그는 오늘 나의 제네바 여행을 즐겁게 해 준 장본인 중 하나다. 오늘 하루가 알찬 여행이 될 거라는 건 어쩌면 버스 옆자리에 소야가 앉았을 때부터 예고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한국어를 읽지는 못하겠지만,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소야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우리는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국경을 넘어갔다. 국경이라고 해봤자 도로 한가운데에 비치된 작은 검문소를 지나가는 게 다였다. 잠시 버스 운전사 아저씨가 내려가서 몇 가지 얘기만 오간 후 우리 버스는 바로 통과되었다. 별거 아니지만 꽤나 신기한 느낌이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육지에서 국경을 넘어가 다른 나라로 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 두나라에서 못해왔던 나는 프랑스에서, 그것도 여권 검문 없이 건넜다. 여권 검문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으면서도 굉장히 생소한 느낌이었다. 유럽에서는 옆 나라로 건너가는 건 마치 우리로 말하는 서울특별시에서 경기도권으로 건너가는 느낌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겠지. 


오늘 하루가 어떻게 되갈지 아직은 모르던 아침 10시경, 기대감을 안은 채 우리는 제네바로 도착했다.




1, 푸르른 자연과 우아한 거리의 조화



 버스에서 내리고 제일 먼저 한 건 로드 투어였다. 제네바를 대표하는 모뉴멘트나 성당을 들르며 가이드 역할을 맡은 동아리 대표의 설명을 들으며, 제네바의 거리와 사람 구경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로드 투어를 시작하기에 앞서 나중에 프리타임을 가진 후의 미팅 포인트를 먼저 알기 위해 가는 길. 제네바에는 아직 가을이 남아있었다. 그르노블의 낙엽들은 겨울의 급습에 못 이겨 다들 하얗게 변색돼버렸는데, 제네바의 낙엽들은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그르노블에서는 축축 내리던 비도 제네바에서는 이미 지나고 햇살이 들어오려는 참이었다. 얼마나 운이 좋은가. 날씨까지도 아직 가을을 간직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가이드 담당 동아리 대표의 설명보다는, 다리 위 수많은 깃발들을 펄럭이는 바람의 소리, 호수 위 배들과 새들의 소리,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 도로 위를 지나가는 트램과 버스, 투어용 기차의 소리에 더 눈과 귀를 기울였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모뉴멘트나 건물들은, 자발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사전 공부를 해가지 않는 한 백 번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봤자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는 건 몇 안 되는 여행을 해보면서 깨달은 진리 중의 하나다. 


그러니까 난 여기서는 단순한 관광지 감상문이 아닌, 그냥 내가 '제네바'라는 도시에 대해 느낀 것, 그리고 내가 제일 인상 깊게 남은 것들을 써 내려가고 싶다.




제네바의 존재감을 표현한 제네바 호수의 다리. 스위스 국기를 비롯해서 각 국제기관 깃발들도 걸려있어 푸른 호수와 하늘과 어울러 장관을 뽐낸다. 풍향 운도 좋았던 덕에 꽤 괜찮은 각도로 스위스 국기를 찍을 수 있었다. 



스위스 국기


하얀색 십자가는 예수의 십자가를, 붉은색 바탕은 예수의 피를 상징하는 기독교적 의미가 담긴 국기이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국기 자체로서는 가로세로 비율 1:1인 정사각형으로 쓰이지만, 상선기나 정부 깃발로서는 가로세로 비율 2:3인 직사각형 모양으로 쓰인다. 13세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슈비츠(Schwyz) 주(州)에 하사하여 자유의 상징으로 삼은 기에서 유래하였으며, 1815년 22개 주가 연방을 이루면서 국기로 사용되었고, 1848년 정식 제정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국제적 십자기와 자주 헷갈려하는데, 이는 국제적 십자기의 창시자 앙리 뒤낭의 모국인 스위스의 국기를 본떠서 색깔만 반대로 한 것이다. 

(출처 및 참고: 위키피디아, 대한민국 외교부 사이트)



어릴 때부터 생각해왔던 건데, 스위스의 국기는 참 멋있다. 빨간색이 이렇게 부드럽고 평화로운 색조로 쓰일 수 있다니. 역사 속, 사회 속 빨간색 배경의 국기는 소비에트 연방 국기, 독일 나치, 중국, 북한 등 굉장히 강압적인 이미지를 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스위스 국기는 그렇지 않다.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스위스에 대한 좋은 이미지, 예를 들어 대표적인 유럽 중립국인 스위스의 관용적인 자세나 나라 자체의 자연적,  경제적 풍요로움 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괜히 더 국기에 대한 이미지도 그렇게 갖게 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스위스의 국기를 보고 강압적이라는 인상을 받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국제적 십자기 창시자가 스위스의 국기를 본뜬 건 자신의 모국임과 동시에 스위스 국기의 빨간 배경이 주는 관용성과 부드러움을 높이 사서 스위스 국기를 모티브로 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배경이 되는 푸른 하늘과 청량한 호수랑 잘 어우러지는 것도 아마 그런 부드러움 덕분에 어울리는 거겠지. 



하늘과 호수 이야기가 나와서 문득 생각한 건데, 유난히 날씨가 좋아서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오늘 하루 동안 느낀 제네바의 이미지는 '푸르다'는 것이었다. 스위스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고, 인구 수도 많고 경제적으로도 발전이 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 도시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특히 시가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제네바 호수 주변을 걷다 보면, 괜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생각나기도 한다. 물론 실제 배경으로 쓰인 프랑스 콜마르랑은 비할 바도 못되겠지만, 영화에 나온 소피의 마을이 현대화가 진행되었다면 딱 제네바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호수인데도 불구하고 바다 같은 인상을 주는, 항구도시 같은 분위기가 제네바에서 난다.



도토리 가게

걷는 도중에 보인 구운 도토리 포차. 가게가 목재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참 스위스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에 나와있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학교 친구들인데, 도토리 사 먹을까 하다가 비싸서 포기했다고 한다. 소문대로 스위스의 물가는 어마어마했다. 스위스프랑으로는 내 머리가 헷갈려버리니 유로로 환산한 가격으로 비교해보았다. 에스프레소 한잔으로 가격을 비교해보자면, 프랑스 그르노블에서는 0.5~1.3유로 정도 하는 에스프레소가 제네바에서는 무려 3.6유로 내외 정도 한다. 핫 초콜릿을 마시고자 하면 그르노블에서는 제일 비싸 봤자 3.5유로 하는 게 여기서는 7~9유로나 한다. 물론 파리로 가면 제네바랑 가격이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 인간적으로 에스프레소 조그만 잔 하나, 핫초코 하나에 저렇게 많이 내야 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스위스의 다른 도시들을 여행한 적 있는 이탈리아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니, 취리히를 포함한 다른 도시들보다 제네바가 물가가 더 비싼 것 같다고 한다.

 

새삼 스위스에서, 특히 이 제네바라는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돈을 잘 버는지, 그리고 여기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은 얼마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가 있었다. 참고로 난 이번 제네바 여행 경비는 20유로도 안 들었다. 여행 참가비(교통비)랑 자잘한 지출만 있던 셈이다. 하다못해 초콜릿 판 하나를 9~12유로로 파는 이 나라 이 도시에서 감히 지갑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물가가 비싼 만큼, 공공복지는 참 잘 되어 있는 게 느껴진다. 먼저, 도로가 정말 깨끗하다. 유럽에서도 더럽기로 소문난 프랑스에 있다가 와서 더 깨끗하게 보였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여태 돌아본 유럽 도시들 중에서 제일 깨끗했다.

 그리고 하나 더 신기한 점. 어디서 찍어도 이 제네바라는 도시는 부티가 난다. 아니 그렇다고 아랍에미레이트나 아부다비처럼 눈에 띄게 휘랑 찬찬히 치장한 게 아닌, 그냥 이 도시의 분위기와 이 도시 사람들이 풍기는 아우라가 물질적 풍요로움을 향수마냥 은은히 풍겨내는 것이었다.


비가 내려 회색 빛을 뽐내던 아침 하늘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그 자리를 따스한 태양이 밝게 비추었다. 발달된 도시의 모습과 자연이 이렇게 어울릴 수도 있구나. 감탄의 연속이었다. 

지금 이 순간 걷던 거리들은 비싼 브랜드들이 들어선, 서울의 청담동, 도쿄의 긴자, 파리의 마레지구 같은 거리인 셈이다. 내가 굳이 이렇게 세 나라의 예를 들면서 설명하는 건, 이 거리의 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라는 구차한 변명은 굳이 안 해도 다들 눈치챘을 거라 믿는다. 


그런 어른들을 위한 거리 속에도 어린이의 휴식처는 어디에나 있는 법. 유럽 여행해본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꼭 본 적 있을 법한 이동식 어린이 전용 회전목마. 파란 눈동자를 가진 조그마한 귀여운 남매가 즐거워하며 타고 있었다.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저 회전목마 앞을 냉랭히 지나가고 있는 내 친구들은 모두 어릴 때 자기 나라에서 저런 회전목마를 탔었을까. 딱히 놀이터라 할만한 공원이 별로 없는 유럽에서 그들의 동심은 저런 회전목마에게 길들여진 걸까.


그렇게 골목을 지나니, 카페 레스토랑이 연달아 있는 오르막길이 나왔다. 구시가의 입구였다. 7cm 굽의 부츠를 신었지만 난 개의치 않고 씩씩하게 걸어 올라갔다. 발이 까지고 물집이 생기는 걸 두려워하기보단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오르막길마저 우아하게 보이는 이 제네바의 도시 분위기를 만끽하는 게 더 중요했으니. 아까도 말했지만, 길이 정말 깨끗했다. 물론 담배꽁초는 가끔 곳곳에 던져버려져 있긴 했지만, 오히려 버려져 있는 게 담배꽁초'밖에' 없다는 게 더 감탄해야 할 부분이다. 시민의식이 철저하다.





그 이후로도 오르막길은 계속되었지만, 이 구시가의 공기는 나를 지칠 줄 모르게 만들었다. 좀 더 깊은 오르막길로 올라가니 우리를 반기는 스위스 국기와 제네바 도시 깃발. 가끔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가도 제네바가 풍기는 우아한 아우라를 사진으로 담기 위해 몇 번이나 멈춰서 감상을 하고 셔터를 누르고, 그런 다음 한참 먼저 앞으로 가버린 무리를 따라 뒤늦게서야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고를 반복했다. 


이런 점은 단체여행이어도 유럽이 더 좋은 것 같다. 길을 잃을 정도로 동떨어진 곳에 있는 것만 아니면 누가 어느 지점에서 어느 정도 머무르든 그 사람에게 맡기고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먼저 가는 것. 내가 원하는 만큼 머무르고 나서 나중에 내가 알아서 뒤따라가면 된다. 한국이나 일본에서였다면 그놈의 피곤한 '소속감'이라는 것 때문에 어느 한 무리 중 한 명이 어느 곳에 잠깐 머무르면 그 한 명을 위해 그 무리 소속 사람들 모두가 기다려야 하는데, 여기는 그런 게 없다. 단체여행이지만 이런 자유로운 개인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동시에 느끼다니. 기억에 남는 좋은 여행이 되었던 이유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간 후 우리를 맞이한 건  성 피에르 성당이었다. 


제네바 성 피에르 성당


생 삐에르(Saint Pierre) 대성당 건축은 성당의 역사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건축의 첫 단계는 1160년으로 거슬러가며 거의 한 세기에 걸쳐 계속됐다. 종교개혁을 겪으며 1535년부터는 개신교의 예배당이 되었다. 탑 꼭대기까지 157개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360°로 펼쳐진 놀라운 도시와 호수의 풍경을 선사한다. 또한 교회는 스위스의 도시 중 가장 큰 고딕(Gothic)과 로마네스크(Romanesque) 수집품을 지니고 있다. 

(출처: 스위스 정부관광청)


앞서 말했지만, 난 가이드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일단 정부관광청의 설명을 그대로 가져오긴 했지만, 내가 이 성당에서 받은 인상은 그리 강렬하지 않았다. 이 성당보다는 이 구시가 전체가 풍기는 분위기가 날 더 매혹시켰다. 그렇게 난 별 인상을 받지 않은 채 나는 무리를 따라 다시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언덕에서 내려온 뒤 우리는 어느 공원에 모여서 점심시간을 가졌다. 사전에 점심을 챙겨 오라는 공지가 있었기에 다들 자기 집에서 만들어온 도시락이나 전날 슈퍼에서 사 온 샌드위치 등을 챙겨 왔다. 모두의 여행 경비 삭감을 위한 대책이었던 거 같다. 제네바에서는 웬만한 레스토랑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 12~15 스위스프랑, 유로로 환산하면 17유로 이상을 써야 한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면서 봤던 수많은 레스토랑의 메뉴 표지판에 쓰여 있던 숫자들을 떠올리며, 난 집에서 가져온 사과를 한입 크게 베어 물어 먹었다. 0.16유로 내고 산 이 사과. 내 배를 채우는 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모두와 함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점심식사를 마친 후, 우리에게는 두 가지 초이스가 주어졌다. 

하나는 MAMCO(이하 맘코)라는 현대미술이 전시된 미술관을 가는 것, 다른 하나는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프리 타임을 가지는 것. 모두의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일단 우리는 다 같이 맘에 향하기로 했다. 맘코에 일단 가보고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 사람은 자유시간을 갖는 걸로.




MAMCO 입구를 들어서서

맘코에 도착한 후, 내 마음이 내게 말했다. 나는 지금 미술관을 갈 기분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어딜 돌아다닐지 생각해놓은 것도 아니었다. 친구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대체로 반으로 나뉘는 분위기였다. 반은 미술관 가고, 반은 자유시간 가지고. 그렇게 자유시간을 택한 친구들은 하나둘씩 의견 맞는 애들끼리 모여 맘코를 나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내적 갈등은 더 심해졌다. 그러던 참에 옆에서 소야와 마르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소야는 아까 버스에서 내 옆에 앉았던 친구고, 마르코는 독일에서 온 성실하고 조용한 친구였다. 마침 그들도 미술관을 갈지 밖에 나갈지를 얘기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다.


 

"소야 넌 미술관 가고 싶어?"


"아니 난 국제기관들 보러 가고 싶어서 여기서 나가려고. 마르코 넌 어때? 같이 갈래?"


"그거 흥미롭네. 나도 갈래. 미술관 별로 관심 없어. 성원, 너도 갈래?"


멀뚱히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내게 마르코가 갑자기 물어봐왔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난 기쁜 마음에 "나도 따라가도 돼??"라고 되물어봤다. 마르코는 물론이라는 말과 함께 먼저 미술관 출구로 향했다. 




그렇게 소야와 마르코,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프리타임을 보내게 되었다.



2, 평화지킴이를 보러 가는 길




 소야가 가고 싶다고 한 UN은 맘코에서 몇 킬로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렇다고 못 걸을 거리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렇게 걸어서 UN까지 가기로 했다. 그제야 제네바의 또 하나의 특징을 떠올렸다. UN, unicef, UNHCR 등 한 번쯤은 꼭 들어봤을 법한 국제기구들이 모여 있는 도시라는 걸. 정치를 공부하면서 왜 그걸 바로 떠올리지를 못했을까. 소야는 시앙스포 학생인데 제네바까지 와서 UN이 아닌 현대미술을 보고 돌아가는 건 너무 아깝지 않냐고 농담 섞인 진심을 말하며 그가 UN을 보러 가고 싶은 이유를 설명해줬다. 그의 말에 마르코와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왜 하필 현대미술일까. 생각해보니 웃기긴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도 나는 중간중간에 내 이목을 집중시키는 순간이 보이면 멈춰 서서 카메라로 몇 번 찍고 난 후 먼저 앞서 걸어가고 있는 둘을 향해 다시 빠른 걸음으로 가는 걸 반복했다. 그들은 내가 멈춰서 사진 찍는 걸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정말 좋았다. 날 기다려준답시고 내가 멈출 때마다 같이 멈춰서 내게 부담을 주는 것보다는 그냥 목적지만 똑같이 설정하고 각자의 스피드는 각자 알아서 조절하는 타입이 훨씬 더 사진도 많이 찍을 수 있고 좋은 순간을 포착할 수 있기도 했다. 




이 사진들도 내가 생각하는 그런 좋은 순간들을 담은 사진들이다. 개인적으로는 베스트 포토라 생각한다. 제네바의 유명 관광지도 아닌 어느 길에나 있는 흔하디 흔한 신호등과 도로들이지만, 이것 또한 제네바가 가진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일 테니. 첫 사진에 잠깐 등장해준 이 둘 덕분에 나도 마음 편히 사진을 찍을 수가 있었다.

 보행자가 길을 건널 타이밍에는 저 PIETONS이라 써진 불이 켜지는 가보다.  




통학로 표시. ECOLE은 프랑스어로 '학교'라는 뜻이다. 이 근처에 학교가 있다는 뜻이겠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있던 곳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 옆 자전거 표시와 함께 꽤나 귀여운 도로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참고로 말해두자면, 유럽에서는 자전거도 차량 중 일부로 분류되며, 자전거 표지가 없는 한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건 금지되어 있다. 



계속 걸으며 수십 개의 신호등을 지나가며 느낀 건, 스위스의 신호등 질서에 대한 시민의식은 프랑스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르노블의 경우 차가 없으면 빨간 불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상관없이 횡단보도를 건너곤 한다. 물론 그중에는 늘 지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안 지키는 사람도 눈에 띄게 많이 보인다. 그에 비해 제네바에서는 차가 안 지나가도 빨간 불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단 파란 불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스위스를 좋아한다는 데, 어쩌면 이러한 부분에서 성격이 맞아서 더 좋아하는 걸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소야와 마르코


그렇게 한참 걸으며 사진을 찍고 제네바를 만끽하는 사이, 거의 다 도착했다고 소야가 알려줬다. 

그렇게 해서 맨 처음 우리를 맞이한 국제기구는 UNHCR, 유엔 난민기구였다.

정식 명칭은 유엔 난민 고등 판무관 사무소다.

 


UNHCR(United Nation High Commisioner for Refugees)

1949년 12월 3일 유엔총회에서 창설된 UNHCR은 난민을 보호하고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적인 조치를 주도하고 조정할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UNHCR의 활동은 난민의 권리와 복지를 보호하는 데 주요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누구나 비호를 신청할 권리를 누리고, 자발적 본국 귀환, 현지 동화 혹은 제3 국 재정착의 방법으로 다른 나라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UNHCR 은 앞장서고 있습니다. 

(출처: UNHCR 한국 공식 홈페이지 중)



안 그래도 유럽에서 난민 문제가 작년에 피크에 달한 만큼, 최근 그 역할이 더더욱 중요시되고 주목받고 있는 국제기구 중의 하나다. 


주말이라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밖에서도 충분히 많은 게 보였고,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입구 안내데스크처럼 보이는 곳 뒤에는, 일본어로 쓰인 문구가 있었다.



祖国を失うことほど、この世に深い嘆きはない

조국을 잃는 것만큼 이 세상에 깊은 슬픔은 없다.


嘆き(나게키)라는 뜻은 원래 직역하면 '탄식'이란 뜻인데, 탄식이라고 쓰면 뭔가 가벼운 느낌이 들어 '슬픔'이라는 단어로 대체했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일본인 오가타 사다코 씨가 유엔 난민 고등판무관으로서 직무수행을 했었는데, 당시 유고슬로비아 전쟁으로 인한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크게 활약을 한 거에 대한 공로를 높이 사 일본어로 저렇게 크게 쓴 거 같다. 




규모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건물에서 느껴지는 숙연한 분위기는 확실하게 느껴질 수가 있었다. 난민 문제, 해결하기 너무 어려운 문제라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너무 나쁜 결과를 불러오지만은 않도록 노력해주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유엔 난민기구를 지나 더 앞으로 향했다. 지나가는 길에 Nations 정거장이 보였다. 이 정거장이 바로 국제기구들을 볼 수 있는 이정표인가 보다. 오늘은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별로 없었지만, 평일에는 국제기구로 출근하는 사람, 관광으로 오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로 붐빌 것 같았다. 차라리 주말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은근 들었다.




그렇게 좀 더 걷다 보니까,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게 우리를 맞이했다. 바로 국제연합, UN본부다. 그리고 그 앞에 우뚝 서 있는 '부러진 의자' 상도 그 위엄을 뽐내며 우리를 맞이했다. 고요하지만 웅장했다. 근엄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난 부러진 의자 상의 존재는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처음에 봤을 땐 의자인 줄 모르고 저게 뭘까 한참 바라보다가 5초 정도 다가가며 걸어가니 그제야 저게 의자라는 걸 알아차렸다. 대인지뢰로 다리를 잃은 희생자들을 표현한 걸로, 유엔의 존재의 의도 함께 담긴 오마주라고 소야가 설명해주었다. 



일단, 정말 크다. 의자라고 얕보면 안 된다. 큼과 동시에 근엄했다. 홀로 우뚝 서서 유엔본부와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은 외로워 보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남은 세 다리로 꿋굿이 지탱하며 유엔본부 앞에 걸려 있는 수많은 나라들의 국기를 말없이 바라보는 모습은 뭐랄까, 전 세계 사람들을 대신해 이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진짜로 이 의자가 부러질 일은 웬만하면 없겠지만, 이 의자가 뒤로 넘어가버려 쓰러질 만큼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참사가 연이어 찾아오는 슬픈 세상은 절대 오지 않기를 속으로 바라고 또 바랬다. 





우리가 간 날에는 어느 나라 사람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위 비슷한 걸 하고 있었다. 아무도 출근 안 한 주말에 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한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언제 무엇이 어떻게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과도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지금의 세계. 그걸 몸소 감당해내야 할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의 모습은 듬직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세계를 지킴과 동시에 세계의 미움을 한꺼번에 받기도 하니. 주말에는 굳게 닫혀 있는 문도 평일에는 일반 공개도 하고 있다고 한다. 나중에 만약에 기회가 되면 평일에 와서 내부도 꼭 들어가 보고 싶다는 다짐을 하며 소야와 마르코와 함께 자리를 떴다.



WMO

unicef


우리의 주목적은 UN이었기에 다른 국제기관들은 훑어보듯이 눈도장만 찍고 지나갔다. 


그렇게 한자리에 모여있던 국제기구들을 다 지나고 나니, 웬 호텔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제기관에 들를 일정이 있는 각국 고위인사들을 위한 호텔들이 국제기구들 근처에 만들어진 건가 싶었더니, 그러기에는 국제기구들이 있는 동네 반대방향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호텔 수가 많아졌다. 


속으로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마르코가 이쪽 길이 이쁘다며 이쪽으로 가보자 해서 다른 길로 들어섰다. 

국제기구들이 풍겼던 무겁고 근엄한 공기가 180도 바뀌었다. 11월 말 마지막 가을의 향연이 우리 눈 앞에 펼쳐졌다.


아마 이렇게 예쁜 색깔을 담은 단풍 찍는 것도 올해는 이게 마지막이겠지.



그렇게 약한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들과 낙엽들, 그리고 나무들 사이를 지나가며 계속 걷던 우리들은 이다음에 우리 앞에 펼쳐진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3, 


다시 호수와 마주쳤다. 근데 이번에 마주한 호수는 분명 아까 아침에 본 것과 같은 호수임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아침에 본 건 도시와 조화를 이룬 호수라 하면, 여기서 본 호수는 정말 말 그대로 알프스 산맥 아래 자연으로서의 호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스위스에 대해 가지고 있던 풍경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눈으로 덮인 산맥과 푸른 하늘, 그리고 맑은 물과 그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 완벽한 조합이었다. 사진으로는 다 못 담아내는 그런 풍경이었다. 


같은 호수여도 각도 따라 위치 따라 이렇게나 달라 보일 수 있구나,라고 새삼 느꼈다. 자연과 일부가 된 호수는 적어도 아까 자유시간을 택한 사람 중에 여기까지 걸어온 사람이 아니라면 못 본 광경일 거 아닌가. UN 보러 갈 거라는 소야와 마르코를 따라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열 번 백번 아니 그 이상 들었다. 그들이 고마웠다.



여기서 본 호수에서도 항구도시 같은 인상을 주는 건 여전했다. 어선처럼 생긴 배들이 많이 정박해있었다. 호수가 워낙 크다 보니 분명 잡히는 물고기도 꽤 있겠지. 호수를 따라 계속 걷다 보니 바로 옆에 호텔들이 즐비한 게 보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아까 국제기관들 근처에서 보이던 호텔들은 어쩌면 국제기관 손님용이라기보다는 이 광경을 즐기러 온 손님들이 타깃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이런 게 나왔다.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캠페인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스페인 예술가가 만든 거라는데,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저 발판이 있는 곳에 서서 누구나 지구지킴이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었다. 어떤 남자 꼬마 아이가 양손이 저 손에 안 닿자 그의 형이 옆에 와서 그 아이의 손이 닿도록 도와주는 훈훈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평화 기구 본부들이 많이 모여있는 제네바다 보니, 이렇게 평화를 상징하는 모뉴멘트들이 길 걷다 보면 많이 보인다. 제네바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제네바의 관광산업을 지탱해주고 있는 의미로도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 '평화'라는 키워드, 제네바를 앞으로도 지켜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참 걷다 보니 다시 아까 처음에 제네바 도착하고 바로 갔던 명품거리가 나왔다. 집합시간까지 아직 약 20분 정도 남아있었던 우리는 이왕 스위스에 왔으니 초콜릿 가게로 가보기로 했다. 


어느 쇼콜라티에나 마찬가지긴 하지만, 황홀해질 정도로 다양한 초콜릿이 진열되어 우리의 코와 눈과 식욕을 자극시키곤 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쇼콜라티에와 다르게, 제네바의 쇼콜라티에는 가격표를 보면 바로 구매욕구 수직 낙하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서 초콜릿 하나 못 먹어 보는 건 아니지 않나, 고민하던 찰나에 소야가 자기 핫초코 마실 건데 넌 어떠냐고 물어봐왔다.  


핫초코! 

가격을 보니 3.5 스위스프랑. 뭐 나쁘지는 않은 거 같았다. 아니 컵 크기를 생각하면 비싸기는 했지만 스타벅스 핫초코가 7프랑인가 8프랑인가 했던 걸 생각하면 훨씬 싼 거다. 그래서 나도 핫초코를 마시기로 했다. 저렇게 생긴 항아리에서 직원 언니가 퍼주었다. 두근두근. 


기다리는 동안 인테리어로 놓인 초콜릿 장식품을 구경했다. 이 쇼콜라티에뿐만 아니라 제네바에 있는 거의 모든 초콜릿 가게나 기념품 샵에 놓여있는 게 저 초콜릿 색 제네바 로고가 들어간 항아리다. 항아리는 혹시 치즈 퐁듀나 그런 종류의 요리가 발달한 나라가 스위스니까 그걸 상징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드디어 내 손에 들어간 핫초코. 계산할 땐 13 스위스프랑 이상이 아니면 카드를 못쓴다고 해서 현금으로 내야 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난 카드로 다 해결될 거라는 생각에 스위스프랑으로 환전을 하나도 안 해놨다는 것이다. 그거는 소야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유로로 계산할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된다고 한다. 휴, 다행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제네바의 중심가는 유럽 관광객도 많아서 유로로도 받아주는 가게가 많다고 한다. 대신 유로로 낼 때는 거스름돈이 안 나오도록 딱 맞춰서 내야 되는 게 한 가지 불편한 점이었다.

아무튼 계산도 무사히 마친 후 한입 들이킨 3.3유로짜리 한잔의 핫초코.

맛있었다. 

행복했다.





그렇게 쇼콜라티에를 구경한 후, 이번에는 기념품샵에 들르기로 했다. 마르코가 뭔가 살 만한 게 있는지 계속 찾는 눈치였다. 스위스 국기에 맞춰서 빨간색으로 코드를 맞춘 가게의 분위기와 아이템들은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와도 분위기가 무척 어울렸다.


기념품 샵에 들어가서 제일 많이 눈에 들어온 아이템은 '젖소'.

젖소가 이렇게까지 스위스 명물로서 아이템에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유제품이 맛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왔지만 이렇게 밀고 나올 정도라니. 

개중에는 독특해서 귀여운 아이템들도 많았지만, 애초에 스위스에서 무언갈 살 생각은 별로 없었기에 그저 난 젖소들과 아이 컨텍트를 하며 구경했다.




그러다가 거울이 보여서 이렇게 핫초코와 함께 사진도 찍어보고. 핫초코는 빨리 다 마시기 아까워서 15분 동안 아껴 마시며 후에 버스 타기 직전에야 다 마셨다. 






문득 위를 올려다보니, 이렇게나 많은 화폐들이 장식되어있었다. 각 화폐의 나라 사람들의 메시지가 한 줄씩 쓰여있기도 했다. 진짜 화폐인지 아닌지 무척 궁금해서 가게 아주머니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가게 아주머니한테서 물건 살게 아니면 말 걸지 말라는 무언의 아우라가 보였기에 물어보는 걸 포기했다. 내가 가게 주인이었다면 저게 진짜 화폐라면 장식품으로 놓아두질 않고 다 환전했을 텐데, 라는 쓸데없는 생각도 하곤 했다. 


그리고 다시 아래로 내려다보니 이번에는 아까 쇼콜라티에에서도 본 비슷한 모양의 항아리 장식품과, 채소 모양을 한 초콜릿이 보였다. 초콜릿의 나라라고 막 나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은근 저 채소 초콜릿의 맛은 궁금하기도 했다. 애초에 저런 걸 사는 사람이 있는 걸까. 수요가 있으니 생산이 되고 있다는 건 알고는 있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어디에도 스위스스러움이 안 느껴지는 이 채소 초콜릿을 받으면 기쁠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기념품샵에서 신기한 아이템들 구경을 다 마친 후, 처음에 알림 받았던 미팅 포인트로 향했다. 저녁 5시라는 당일치기 여행 치고는 조금 이른 귀가시간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하루 동안 충분히 많은 걸 느끼고 보고 배울 수 있었다. 너무나 기억에 남는 하루였다.


돌아가는 길 버스에서도 난 소야와 함께 앉았다. 그 옆 줄에 마르코가 앉았다. 오늘 하루 약 7~8km 정도 걸은 게 생각보다 부담이 컸는지 둘은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조용히 잠들기 시작했다. 물론, 맨 뒤에 앉은 스페니쉬 친구 미겔과 콜롬비안 친구 니콜라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와인을 나눠 마시며 큰 소리로 떠드는 목소리 덕분에 소야나 마르코나 금방 깨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는 잠이 안 왔는지 버스가 다시 학교 앞으로 도착할 때까지 우린 수다를 떨었다. 


짧지만, 알찬 하루였다.






처음에는 오늘 하루가 어떻게 돼가는 걸까 기대 반 불안 반에 흥분되어있었고, 중간에 내게 미술관과 자유시간이라는 애매한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내적 갈등도 하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제네바라는 매력이 넘치는 우아한 도시, 그리고 소야와 마르코의 탁월한 선택 덕분에 나도 덩달아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낼 수가 있었다.

단체여행이지만 혼자서 하는 자유여행의 묘미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하루.


살인적인 물가 때문에 하루 이상 머무는 건 고민을 할 것 같지만, 당일치기로라도 제네바에는 꼭 다시 오고 싶다. 그리고 다음에 올 때는 혼자서 더 여유로이, 원하는 만큼 느끼고 보고 배울 수 있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Su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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