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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메 Dec 20. 2016

빛의 축제, 우리의 축제

리옹에서 하나 된 우리들의 스페니쉬 감성

일시: 09~10 Dec. 2016

@Lyon, France


#사진을 터치하시거나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그리고 (iPhone 6S)라 표시해놓은 사진 이외는 모두 Nikon coolpix p100로 촬영했습니다:)



드디어 시험이 1개 남았다. 남은 시험을 위해 공부해야 하는 게 보통이지만, 나도 조금은 쉬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그래서 이번에는 열흘 전에 친구들과 함께 갔다 온 리옹의 빛의 축제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리옹 빛 축제(La fête des Lumières)


(TV5 MONDE에서 발췌) 프랑스 동남부를 대표하는 도시 ‘리옹’ (Lyon)은 매년 12월 첫째 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빛의 축제’ (Fête des Lumières)가 열리는  4일간 새로운 옷을 입는다고 합니다. 올해에도  12월 8일부터 11일까지 우리들을 찾아오는 리옹의 빛 축제는 프랑스 내에서 가장 저명한 축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행사가 펼쳐지는 기간 동안에 리옹은 연중 가장 화려하게 빛난 게 된다고 하는데요, 12월 초에 개최되는 행사이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에게는 겨울을 알리는 또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로 여기어지기도 하며 유럽 전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약 400만 정도의 관람객들이 리옹을 방문한다고 하니 이 행사의 규모와 명성을 짐작케 합니다. 행사 기간 동안 도시 곳곳을 밝히는 70여 개의 조명 장식과 디지털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들은 리옹의 주요 유적지와 관광지를 색다른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도록 하고 도시에게 생기를 불어주는 아름다운 옷을 입혀줍니다.(후략)

출처: https://korea.tv5monde.com/Resources/Articles/2014_12/%EB%A6%AC%EC%98%B9-%EB%B9%9B%EC%9D%98-%EC%B6%95%EC%A0%9C-(Fete-des-Lumieres)? lang=ko-KR



올해는 12월 8일부터 11일까지 총 4일간에 걸쳐서 축제가 열렸었는데, 난 이틀째인 9일에 리옹에 갔다 왔다. 근데 여기서 잠시만, 내가 이 공간에서 써 내려갈 이야기는 빛의 축제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왜냐 하면, 이 날 리옹 일정을 끝낸 후 열흘이 지나고 나서도 기억에 남는 거는 화려한 영상미의 옷을 두른 색색의 건물들보다 함께 간 스페인 친구들의 멈추지 않는 춤사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내 친구들과 함께 다닌 여정과 내가 느껴온 걸 적어 내려가고 싶다. 




이 날 리옹에는 나를 포함해 총 10명이 향하게 되었다. 그중의 8명은 스페니쉬, 1명은 미국 국적의 콜롬비안(스페인 애들과 별다를 바 없는 그의 성격을 봐서는 콜롬비아 출신의 미국인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말하는 게 더 알맞은 거 같다), 그리고 나. 처음에는 같이 갈 친구들이 모두 스페니쉬인 줄 모르고 간 바람에 버스 정거장 앞에서 다 같이 모였을 때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물론 그중에는 같은 학교 친구도 있었지만, 원래부터 내가 알고 지내던 친구는 두 명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다 이 날 처음 만나는 친구들이었다. 이거 내가 가도 됐던 건가 싶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었다. 하지만 언어, 소외감 등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단순한 기우였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리옹행 버스를 타 자리에 앉은 후 그들은 내게 당연하다는 듯이 "맥주 마실래? 와인 마실래?"라고 물어왔고, 맥주와 와인을 스페인어로 뭐라 하는지도 알려주며 자연스레 나도 그들의 무리에 스며들어갔다.



 참고로, 이 날 버스를 탄 시간은 낮, 13시 45분이다. 그리고 버스를 탄 8명이 준비해온 와인은 무려 11병, 그리고 맥주는 200ml짜리 24병이었다. 



해가 중천에 떠있는 대낮부터 "술 마실래, 안 마실래?" 가 아닌, "맥주 마실래, 와인 마실래?"라는 질문과 동시에 와인 오프너로 와인 코르크를 뻥~하고 빼는 모습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들의 열정 가득한 국민성을 엿볼 수 있었던 첫 단계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빛의 축제를 보러 가는 우리들의 축제는, 리옹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리옹의 거리를 거니는 산타


오후 15시경에 도착한 후, 우리는 리옹 시내를 돌아다녔다. 리옹도 많은 거리들이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아직 밝은 오후라 그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이 거리들도 밤이 되면 아름다운 빛들로 가득한 축제의 거리로 변신하겠지. 그런 기대감을 부푸며 셔터를 누르며 친구들의 뒤를 따라갔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서성이며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 불쑥 나타나며 우리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산타 분장 아저씨를 바라보며, 우리는 벨쿠르 광장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 내 베스트샷!(iPhone 6S)


벨쿠르 광장에 도착하니, 예전에 처음으로 리옹에 왔을 때는 없었던 대형 관람차가 떡하니 우리를 맞이했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회전목마나 관람차는 한 곳에 정착해 머물 물건으로 취급되지 않는 거 같다. 이곳에서는 행사나 축제가 있을 때는 큰 존재감을 뽐내는 놀이기구들도, 행사가 끝나면 마치 환멸 하듯이 우리 눈 앞에서 사라진다. 아마 이 관람차도 빛의 축제가 끝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연기처럼 사라지겠지. 


그런 특수성 때문인지,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에 꼭 등장할 법한, 아니면 유럽 스냅사진의 배경으로 꼭 나올 법한 그런 로맨틱한 놀이기구처럼 흔히들 인식하곤 한다. 그리고 다들 그렇게 유럽에 대한 환상을 가지곤 한다.


그런데, 실제로 이걸 눈 앞에 두고 보면 유럽의 관람차는 그런 감성적인 피사체가 되기에는 너무나 빠르고 가끔은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는 회전 속도가 로맨틱한 감성에 젖을 타이밍을 놓치게 만든다.




뭐 그래도, 광장 한가운데에 존재감을 뽐내는 관람차의 위엄은 앞으로의 밤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빛의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게 저녁 8시라, 우리들은 광장 중앙에 앉아 각자 가져온 저녁을 먹었다. 물론, 각종 와인과 맥주도 함께. 


버스로 올 때는 나를 포함해서 8명이 타고 있었지만, 여기서 나머지 2명과 합류해 우린 비로소 10명이 되었다. 도란도란 식빵을 까먹으며 수다를 떠는 사이, 밤은 점점 깊어갔다. 




광장에 위치한 관광안내소에서 설명 듣는 중.

저녁 7시 30분이 지나자, 우리는 자리를 정리하고 광장 안에 있던 관광안내소로 향했다. 축제 기간이라 그런지 안내소는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는 기계에서 뽑은 번호표 순서를 기다리다가 스크린에 우리 번호가 뜨자 해당 데스크로 향했다. 우리들이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안내소 직원에게는 당연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향한 데스크 안내원은 스페인어 구사가 가능한 바이링걸 안내원이었다. 덕분에 우리는(정확히 말하자면 내 친구들은) 지도와 함께 보다 자세하고 정확하게 루트 설명을 들었고, 우리들은 보다 알찬 하루를 보내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리옹의 야경, 빛의 축제 속 리옹은 더욱 아름다웠다(iPhone 6S)


그렇게 우리는 먼저 푸비 에르 언덕을 올라갔다. 지난번 리옹 여행 때는 편하게 교통 일일 권으로 전철을 타고 올라갔지만, 이번에는 걸어서 올라갔다. 집 나가기 전에 부츠를 신을까 운동화 신을까 망설이다가 키를 포기하고 운동화를 선택했는데, 8시간 전의 나에게 정말 뽀뽀를 퍼부어주고 싶을 정도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푸비에르 성당이 있는 곳까지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멀지 않은 만큼 계단과 오르막길이 정말 가파렀다. 프랑스 오고 나서는 운동다운 운동을 하지 못했었는데, 그런 티가 바로 났다. 계단을 오르는 내내 이 고생길을 영상으로 담아내기 위해 카메라를 놓지 않으리 다짐하고 다짐했었지만, 그러기에는 내 체력은 바닥으로 향할 만큼 향해 있었다. 중간에는 친구가 토닥이며 힘내라고 응원해주며 같이 올라가 줬을 정도니. 성당까지 향하는 데 소요한 시간은 고작 10분 남짓이었지만, 내 다리는 이미 30분 동안 시속 7.5km로 러닝머신을 달린 것만큼 후들거렸다. 


일본 돌아가면 다시 운동 시작해야지, 다짐하고 다짐했다. 그렇게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는 사이, 우리는 성당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우리 모두 눈 앞에 보이는 벤치로 향했다. 다들 속도는 나보다 빠를지언정 힘든 건 매한가지였나 보다. 어떤 애들은 거친 숨을 내쉬며 담배를 돌돌 말아 불을 붙이고 있었고, 어떤 애는 그 또한 거친 숨을 내쉬며 와인병을 들이부어 마셨었다. 또 어떤 애는 거친 숨을 내쉬며 아까 먹다 남은 샌드위치를 마저 꺼내 먹고 있었다. 굳이 여기서 좀 쉬자, 그런 말 한마디 없이도 자연스레 쉬는 시간을 가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니, 저것들만큼 자유로운 영혼도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난 그런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본 후, 예전에도 내려다봤던 리옹 시내의 전경을 내려다봤다. 예전에는 구름이 살짝 낀 밝은 도시의 모습이었지만, 밤의 그것은 사뭇 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게다가 빛의 축제 속 리옹이라니. 8시가 다돼가는 시간의 리옹은 슬슬 라이트업 준비를 마치고 쇼타임을 맞이하던 참이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빛을 머금은 도시의 모습은 아무리 좋은 카메라로 찍어본다 한들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것만큼 그 감동을 전하기는 어려운 거 같다. 내 카메라가 유독 야경에 약한 것도(그리고 찍는 내가 야경에 약한 것도) 있긴 하지만, 그걸 떠나서 직접 봤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날 밤에는 구름이 안 껴있었던걸 정말 다행으로 여긴다. 




푸비에르 언덕 전망대 앞에서

내가 한창 카메라로 요리조리 찍고 있는 사이, 내 친구들도 각자의 휴식을 마치고 전경을 보러 전망대로 왔다. 그런데 9명의 친구와 함께 처음 보는 남자 3명도 같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또 새로 합류한 친구들인가 싶었는데, 대화를 자세히 들어보니 그들은 레바논, 인도 그리고 미국에서 온 이들이었고 스페인어는 전혀 할 줄 모르는, 그래서 우리랑은 영어로 대화하고 있던, 그저 지나가던 투어리스트들이었던 거였다. 어쩌다가 저들이 이 스페인 애들 몇 명이랑 친해진 건지도, 어쩌다가 우리 단체사진에 그들도 함께 찍게 된 건지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감이 안 잡혔지만, 그마저도 즐거웠다. 다시 한번 스페니쉬의 친화력에 감탄하던 순간이었다. 


이 사진을 그들에게 못 전해준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름 모를 여행객 3명과 전망대에서 작별인사를 한 후, 우리는 본격적으로 빛의 축제를 탐미하러 로마 극장으로 향했다. 아직 8시가 되기 전이라 그런지 로마극장 입구 앞은 경찰들이 막고 있었고, 그 앞에는 수많은 관광객과 프랑스 현지인들로 가득했다. 누가 프랑스 대표 축제 아니랄까 봐 입장 대기줄의 길이는 우리들을 절로 한숨 쉬게 만들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입장을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린 지 어엿 15분쯤 지나자, 드디어 대기줄 앞을 막고 있었던 입구가 뚫리기 시작했다. 물밀려 오듯이 사람들이 로마 극장으로 향했고, 나도 그 파도를 타고 별 무리 없이 입장했다. 하지만 내 친구들 중 몇몇은 수많은 와인병이 들은 가방 때문에 짐을 입구에 맡기고 와야 하기도 했다.

 

이에 친구들 모두 알코올이 두 손에 없는 현실에 대해 탄식하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즐거운 분위기를 내며 함께 극장 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좁은 길에 나열된 초들과 극장 계단을 푸르게 비추는 빛들은 영롱한 아름다움을 뽐냈다. 좀 더 걷다 보니, 계단에 3D 애니메이션이 투영되어 라이브가 상영되는 곳도 있었다. 아쉽게도 라이브는 모두 영상으로 찍은 바람에 여기에 올릴 만한 사진은 없지만, 이 날 우리가 본 라이브는 정말, 전부다 magnifique(웅장한, 장엄한, 화려한)했다. 사실 찍어놨던 영상으로 다시 보아도, 현장에서 직접 보는 거랑은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코 끝 감각이 없어질 것만 같은 추위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봤던 화려한 영상들에 대한 기억은, 아마 그 추위와 추위 속 친구들의 온기 덕분에 더 아름답게 보였던 게 아닐까. 



로마 극장을 나와 내리막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런 아기자기한 형광등도 볼 수 있다


로마극장을 다 돈 후, 우리는 알코올 가득한 가방들을 돌려받고 다시 언덕 아래를 향해 내리막길로 걸어갔다. 안 그래도 힘이 넘치는 친구들이 다시 알코올이 손에 들어오니 더더욱 표정에 활기가 돋아났다. 내려가는 사이 친구들 중 제일 활발하고 우리를 이끌어주는 미겔이 노래를 틀기 시작했고, 그러자 친구들 모두 그의 휴대용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같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기 시작했다. 빛의 축제를 상징하는 수많은 형태의 '빛'들이 그런 우리들을 영롱한 눈빛으로 내려다봤고, 지나가던 행인들도 그런 우리들의 축제를 바라보며 함께 즐기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같이 춤추기도 했다. 


내가 빛의 축제에 온 건지, 스페인에 온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그들은 순식간에 리옹 구시가의 한 길거리를 그들의, 그리고 우리의 무대로 만들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라면 민폐라며 무척이나 따가운 시선을 받았을 법 하지만, 축제 속 리옹의 사람들은 그런 우리들을 "헤이 에스빠뇨올~"이라며 반갑게 맞았다. 나도 그런 에스빠뇰의 흥에 취해 다 같이 춤도 추고, 뭐라 부르는지 하나도 모르겠는 스페인 댄스음악에 장단을 맞추며 다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구시가로 내려와, 다른 라이브를 보러 리옹 명소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걸어 돌아다니는 내네에도 그들의 흥은 깰 기미가 안보였다. 오히려 다들 알코올이 아닌 흥에 취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도 점점 고조되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우리들의 춤사위도 격렬(?)해졌다. 간혹 가다가 행인 중에 같은 스페니쉬가 지나가면 아는 사이든 모르는 사이든 상관없이 어깨동무하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곤 했다. 나도 그 원 속에 함께 어깨동무를 추곤 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길거리 한복판에서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을 텐데 당당히 그들의 흥을 아낌없이 발휘하는 스페니쉬나, 그걸 또 즐겁다고 함께 즐기는 프렌치나 다들 관용적이라고 해야 되는지, 정신없다고 해야 되는지. 덕분에 나도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봤으면 '미쳤다'는 소리 들어볼 만큼 흥겨워했던 것 같다. 나 혼자만 스페니쉬 스피커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들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 폭발시킨 흥은 스페니쉬들도 인정했을 정도니. 


흥에 겨워하던 우리를 보던 한 외국관광객이 자발적으로 사진 찍어주겠다 해서 찍은 단체 사진

리옹 곳곳 건물에서 상영되는 영상 라이브를 몇 개 보고, 길거리에서 흥을 폭발시키고, 모두 한 손에 알코올 한 병씩 들며 걷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밤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빛의 축제도 한바탕 끝나고, 한창 걸어 다녔던 우리는 이제야 찾아오는 배고픔을 달래러 타코스 가게로 향했다.


타코스 가게에서


유럽 젊은이들은 밤늦게 술을 마시고 나서, 술 깰 겸(아니면 그다음 술을 더 마시기 위함 휴식시간 겸) 꼭 들르는 곳이 타코스 가게다. 싼 가격에 밤늦게까지 운영하기 때문이라서 정말로 많은 젊은이들이 길거리 타코스 가게를 애용하는데, 사실 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술 마셨으니까 타코스". 내게는 살짝 이해가 안 되는 인과관계였다. 그렇지만 선 알코올 후 타코스는 스페인 친구들에게도 예외 사항이 아니었다. 아까 각자 싸온 빵들을 다 먹었는데도 포테토칩과 타코스를 주문해 가게 안에서 다 같이 오순도순 수다를 떨었다. 타코스는 한 번은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해왔지만, 이 날은 딱히 배고프지는 않았기에 나는 시키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마침 옆자리에 스페인인 2명이 앉아 있어서 또 아까처럼 대화에 합류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보니 프랑스에는 정말 스페인인이 많은 거 같다. 리옹이나 그르노블은 프랑스 동남부라 이탈리아 계열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줄 알았는데, 스페인 사람도 그에 못지않게 정말 많다. 이 두 명 이전에도 길거리에서 지나가다가 마주쳐서 함께 춤을 춘 스페인인만해도 몇 명인지. 



그렇게 우리들의 흥의 연장선을 대화로 풀어내고 있었던 타코스 가게도 1시 반이면 문을 닫기에, 우리는 다시 밖을 나와 문이 열려 있는 가게를 찾아 나섰다. 계속 우리 손에서 사라질 기미가 안보였던 알코올들도 어찌어찌 다 마시고(와인+맥주 총 35병을!), 이곳저곳 걷다 보니 아직 운영 중인 바가 보여서 다 같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갔을 땐 마침 라이브 공연이 펼쳐져 있었고, 가게 직원이든 손님이든 상관할 것 없이 모두 공연에 집중하고 열광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빈자리를 찾아 다 같이 앉았다. 저만치서 공연을 보면서, 겉옷을 벗고 가게 내 열기로 추위를 녹였다.


새벽 2시 반에 하는 카드게임(iPhone 6S)

그런 사이 콜롬비안 니콜라스가 트럼프를 꺼내 들었다. 이건 또 언제 챙겨 온 건지. 은근 이 친구도 센스가 있다. 맥주를 사러 바텐더에게 갔다 온 몇몇 친구도 돌아오자, 우리는 본격적으로 카드게임을 시작했다. 각각 자기가 아는 재미있는 카드게임을 제안해왔다. 전부 다 처음 접해보는 게임들이었다. 나만 그런가 했더니 같은 스페인 친구끼리도 모르는 게임도 있었다. 니콜라스가 영어로 내게 방법을 알려주긴 했지만, 한국어로 들어도 바로 이해 안 될 카드 룰을 영어로 듣는다고 이해될 리가 없었다. 난 그저 알았다고 하고 내 눈치와 감에 맡기기로 했다. 나름 내 감은 살아있었다. 몇 번인가 영문도 모른 채 이기기도 했으니. 

새벽 3시. 우리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새벽 4시경 리옹의 한 길거리


하지만 아침까지 문이 열려 있을 것만 같았던 바도 3시 반이 되자 문을 닫는다고 나가 달라고 가게 주인이 우리에게 말을 해왔다. 그렇게 우린 또다시 겉옷을 걸치고 밖에 나왔다. 새벽 4시가 다돼가는 리옹의 공기는 온몸의 신경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얼얼했다. 축제 최강자 스페인 친구들도 추위에는 속수무책인 거 같았다. 그르노블로 돌아가는 버스가 새벽 5시 50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그때까지 있을 만한 따뜻한 곳을 찾아보고자 우린 모두 클럽으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있던 바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클럽 문지기에게 미겔이 가서 물어보니, 문지기는 우리를 슬쩍 훑어보더니 에스빠뇰은 안된다고 딱 거절을 했다. 나를 가리키며 당신은 들어갈 수 있다고 그는 말했지만, 나 혼자 들어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니콜라스에게 슬쩍 왜 에스빠뇰은 안되는 거냐고 물어보니, 니콜라스는 웃으며 이리 대답했다.

 

"얘네들 봐봐. 누가 얘네를 들어가게 해주겠어ㅋㅋ"

 

좋게 말하면 흥이 넘치고, 안 좋게 말하면 정신없고 방정 맞고 온 공간을 휩쓸어버리는 스페니쉬의 위력을 문지기는 경계했던 것인가. 그런데 그걸 마치 제삼자처럼 말하고 있는 너도 똑같거든, 이라는 말이 목구멍이 차오르도록 올라왔지만, 이 한국어의 뉘앙스를 똑같이 영어로 표현할 방법을 모르기에 다시 그 한마디를 삼키고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보다 고작 2시간이란 시간을 때우기 위해 클럽에 갈 힘이 여전히 남아있는 스페인 친구들도 대단하긴 했다. 




새벽 4시 반, 우리는 결국 계속 걷고 걷다가 버스 터미널 근처 기차역에서 버스 출발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손발은 얼대로 얼고, 모두 말수도 점점 적어지고, 친구들 사이에 웬일로 침묵이 우리 주변 공기를 감 싸돌았다. 이 날 하루 종일 함께 하면서 처음으로 친구들이 얌전해진 순간이었다. 무려 15시간 만에. 얘네들도 지친다는 걸 알긴 아는구나. 그런 조용한 분위기가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기차역에 들어서서 벤치에 앉아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잠시 취침시간을 가졌다. 나는 렌즈 낀 눈이 건조해질 걸 염려해 자지는 않고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때웠지만, 나를 제외한 9명 모두 다 곯아떨어지듯이 눈을 감았다. 피곤할 만도 하겠지. 오늘 하루를 돌이켜 생각해보며 그들을 바라봤다. 내 뮤직 플레이어에는 EDM 플레이리스트가 재생되고 있었다. 







어쩌면, 오늘 우리들의 축제의 승자는, 새벽 5시 다들 잠든 사이에도 둥둥 내적 댄스를 춤추고 있는 내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렴, 집에 오기 전까지 잠들지 않은 건 나뿐이었지만, 이번 리옹 여정은 우리 모두의 축제이기도 했다. 

내게 절대 잊지 못할 흥겹고 사랑스러운 추억을 가져다준 9명의 열정적인 세뇨리따와 세뇨르가 너무 고마웠다. 나만 스페인어를 못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소외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건, 그들의 비범한 친화력과 친근함, 그리고 흥 덕분이겠지. 콧대 높은 독일인과 은근 사람 내려다보는 이탈리아인과는 달랐다. 


스페인, 최고다. 


언젠가 꼭 스페인이란 나라에 가서 이들의 정겨움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고마워 얘들아:)


GRACIAS, MIS AMIGOS♡



아직 편집 연습하는 단계라 미숙한 실력이지만, 이번 여정에서는 사진보다 동영상을 많이 찍어서 영상으로 만들어봤어요! 이것 또한 빛의 축제보다는 우리 스페니쉬 친구들에게 포커스를 맞춘 거라..ㅎㅎ 그들의 흥을 조금이나마 느껴질 수 있도록 만들어봤어요! 즐겁게 감상해주시길 바랍니다:) (화질 안 좋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매거진 <나와 함께 떠나는 여행>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Su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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