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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제 Dec 16. 2021

술자루

푸념

술  한 병을 물에 타서 들이키고 누웠다 누워서 요즘 술은 참 약해 라고 생각했다 된장국에 고기를 먹고 하나도 취하지 않은 자신에게 오늘은 내가 술이 받는 날이었나 봐 라고 이야기했다 술을 마시는 동안 격렬한 위로를 바랐고 동시에 도망치고 싶었다 바보야 나 꽝이니까 너에게 무너질 가치가 없으니까 나 좀 그만 괴롭히라고 유령에게 외치고 싶었다 술의 보호막에 휩싸여 취하지 않은 채 단톡방에 온기를 구걸했다 오늘 합평에서 발린 친구는 이미 서울에서 멋진 회 안주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무엇이 오르는 것이고 무엇이 무너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위안받을 공통적인 이유가 중요하다고 느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모두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계층의 위로 앎의 아래로 종으로 횡으로 그래서 술을 마시고 보는 흔들리는 세상이 의식의 입장에서 보면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 취해가는 사람은 같은 감정을 공유한 슬픔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모두 꽐라가 되어 쓰러지는 종착역은 다를지라도 자신도 모르게 넘기는 술잔에 담긴 감정은 같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집이 추워 패딩을 입었다 패딩을 입으면 그 애의 온기가 군데군데 모이는 것 같았다 오늘만큼은 그 애에게서 벗어나고 싶다고 모든 것을 한 번씩 움켜쥐는 그 손이 미웠다 하지만 그 애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법했고 나는 그 애의 단단함에 위로를 받곤 했다 패딩을 입고 침대에 누운 나는 술기운을 받아들였고 기분이 울렁이는 가운데 불가능에 대해 생각하고 그 사이로, 불가능의 가랑이에서 나온 안 되는 글인 이유가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받아 적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나의 기억 안에 도서관에 은밀히 접어놓은 쪽지처럼 여전히 존재할 오점들이 잊히지 않길 바랬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무너짐에서 작되었다 나는 이제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술로 인해 내일 아파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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