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의 운율에 몸을 맡기고 시간이 흘렀다. 지하 작업실에 흐르는 노래가 좀 더 선명한 시곗 소리 같았다.책은 세로로 덮어 보이며 얼마큼 읽었는지 눈으로 헤아려 본다. 낡은 소파에 앉아 유독 눈을 비추는 네 개의 형광등이 내 동공에 만화 주인공처럼 눈에 비추어질 듯 했다. 아래에 앉아 왼쪽 큰 창 너머의 소리를 듣는다.빗소리다. 빗소리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소리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진 물방울들이 뉴에이지 음악 같은 선율이 되어 소리로 승화되고 있었다. 봄비는 잔소리를 놓고 온 천사의 말이 이끼 낀 것을 어루만지기라도 하듯 차마 닿을 수 없는 사이의 발음과 묘사할 수 없는 붓의 끝까지 가닿는 것으로 자연만이 가지는 가장 옅고 가는 옹알이로 모든 약해진 것들에게 건네는 계절의 위로 같았다. 새하얗게 바래져 가는 철판에도 드넓은 밀알이 떨어진 대지에도 모래와 자갈 조약돌에도 흐르는 소리는 동그랗게 잘 깎여진 이슬방울이 내는 물고기의 뻐끔거림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짙남색의 밤이 다정한 불청객의 모습을 하고 공기에 스민 밤이면 불온하고 명쾌한 불빛 아래 여유롭게 책을 보며 (칼로리가 있다는 커피를 포기한 채) 밤의 냄새를 천천히 음미한다. 이내 유튜브에 흐르는 무난한 음이 끊기고 광고 소리가 나온다. 함께 흐르는 빗소리는 마음 곁에 타고 흘러 가장 작은 모서리가 없는 자연의 순리를 가장한 친구처럼 존재한다. 밤과 모서리가 없는 것들을 떠올리며 아래로 흐르는 당연한 것 위에 아무것도 올려놓고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여운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