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딸이다

The docuphile

by 매버지

내가 사는 동네 골목에는 ‘행복의 과학’이라는 공간이 있다. 처음에는 행복을 연구하는 단체인가 싶었지만, 검색해 보니 일본 종교단체의 한국 지부였다. 현수막에는 교주의 얼굴이 걸려 있었다. 피식 웃었지만, 동시에 이토록 집요하게 우리 곁으로 스며드는 종교 집단의 힘이 낯설고 두려웠다.


사이비 종교라는 단어를 들으면 내 머릿속에는 1995년 도쿄 지하철 테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중학생 시절, TV 속 뉴스 화면에 비친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옴진리교라는 종교단체가 출근길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해 수천 명을 죽음과 부상으로 몰아넣었다. 평범한 일상과 민간인을 향한 대량 살상무기 테러, 그것은 어린 나에게 ‘종교’라는 단어를 공포와 동일시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방영된 <내가 그의 딸이다>라는 작품을 보았다. 일본의 사이비 종교인 옴진리교 교주의 삼녀, 마츠모토 리카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출처 : EBS


가해자의 가족은 죄인일까?

그녀는 ‘살인자의 딸’이라는 낙인 속에서 살아왔다. 어린 시절 교단에서 자랐고, 아버지를 그리워했으며, 사형 집행 전 정신적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일 수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아버지는 세상에서 유일한 아버지였다.

우리는 피해자의 고통에는 쉽게 공감한다. 하지만 가해자의 가족에게는 종종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며, 마치 그들도 공범인 듯 취급한다. 심리학적으로 이것은 ‘오염된 정체성(stigmatized identity)’이라 불린다. 한 개인이 저지른 죄가 그의 가족, 심지어 후손에게까지 그림자처럼 덧씌워지는 현상이다. 피해자 유가족의 아픔을 존중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동시에 가해자 가족도 사회적 배척 속에서 새로운 고통을 겪는다.


트라우마와 2차 고통

다큐의 초반부는 피해자 유가족이 그녀를 만나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녀와 만난 그는 그녀를 측은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을 한다.


“당신과 나는 똑같습니다. 피해자의 가족도, 가해자의 가족도 똑같이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트라우마 연구에서는 사건 그 자체보다 이후 사회적 낙인과 차별이 2차 고통을 심화시킨다고 말한다. 피해자 유가족은 상실과 분노, 가해자 가족은 죄책감과 사회적 고립 속에서 같은 외로움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마츠모토 리카 역시 그랬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책을 쓰고, 새로운 도전을 계속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녀를 ‘옴진리교의 후계자’로 의심했다. 국가조차 그녀의 가족에게 아버지의 유골을 반환하지 않았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마저 부정당하는 순간, ‘죄는 개인의 것인가, 혈연의 것인가’라고 반문하게 된다.


옳고 그름의 경계에서

사회학적으로 보면 우리는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을 대하는 태도에서 ‘도덕적 감정의 비대칭’을 드러낸다. 피해자에게는 무한한 연민을, 가해자 가족에게는 무한한 경멸을 보낸다. 하지만 둘 다 사건의 직접적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사실상 동일하다. 피해자의 고통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지만, 가해자의 가족 역시 선택할 수 없었던 위치에서 고통받고 있다.

결국, 한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가족 모두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제3자인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가 그들의 삶을 다시 규정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보험금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가족이 한 말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가족들 모두는 같은 시선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나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앞으로는 그럴 수 있을까?

그리고 사회는 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 메인 이미지 출처 : E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