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cuphile
2017년,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자원은 더 이상 석유가 아니라, 데이터다”라는 기사를 내며 시대의 변화를 선언했다. 실제로 지금은 사우디 아람코 같은 정유 기업보다 애플, 아마존, 구글, 메타와 같은 데이터 기반 기업들이 훨씬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연료가 석유에서 데이터로 옮겨간 것이다.
석유는 한 번 쓰면 끝나는 소모품이지만, 데이터는 끝없이 쌓이고 다시 활용되고 확장된다. 더 나아가 사람의 생각과 행동, 심지어 선택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 다큐멘터리 [The Great Hack]은 데이터가 단순한 산업의 도구를 넘어, 정치와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플랫폼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그 이야기가 더욱 실감 나고 한편으론 무섭게 다가왔다.
데이터의 그림자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라는 데이터 회사는 수천만 명의 페이스북 이용자 정보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정밀하게 겨냥한 콘텐츠를 퍼뜨렸다. 트럼프 캠프의 반대편인 힐러리를 향한 조롱, 가짜뉴스, 분노를 자극하는 영상이 끝없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특정한 생각의 틀에 갇히게 만들었다. 투표라는 개인의 결정조차 데이터에 의해 흔들린 것이다.
이것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브렉시트, 트리니다드 토바고 선거 개입 등 데이터는 국경을 넘어 권력의 무기로 쓰였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는 “투표는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젊은 세대가 많은 아프리카계 유권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노출되었고, 반대로 인도계 부모 세대는 자녀들에게 투표를 장려했다. 결국 정권은 손쉽게 교체되었고, 민주주의의 뿌리가 흔들렸다.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이 문제를 단순히 ‘한 회사의 일탈’로 치부할 수 있을까? 플랫폼 기업들은 책임을 부정하며 모른 척했고, 정치 세력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책임은 그들만의 몫일까? 우리는 매일 무심코 동의 버튼을 누르고, 출처도 확인하지 않은 기사를 공유한다. 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
가짜뉴스와 혐오, 공포의 정치가 데이터라는 옷을 입고 확산되는 동안, 개인의 자유의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조작되고 각인된 심리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번 심어진 불신과 분열은 오래도록 사회를 갈라놓는다.
결국 이 싸움은 ‘누가 데이터의 주인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지금까지 데이터는 기업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를 통제하고,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권은 곧 인권이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플랫폼 기업들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역사에 기록될 것인가?” 단순히 광고를 더 정밀하게 타겟팅 한 기업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 기업으로 기록될 것인가.
남겨진 과제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 가장 두려웠던 것은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또 다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는 이미 활동 중일지도 모른다. 증오와 공포를 조장하고, 가짜뉴스를 양산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거대한 정부와 이해관계가 복잡한 기업이 자정능력을 찾아 움직이는 일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스스로의 데이터를 하나의 권리로 바라보고, 개인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높이는 일이 필요하다. 앞으로 더 많은 개인의 데이터가 쌓이고 수많은 콘텐츠들이 양산될 것이다. 나와 내 아이가 살아가야 하는 미래가 더 이상 분열과 양극단으로 갈라서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주하는 디지털 세상의 정보에 대해서 끊임없이 묻고 경계해야 한다.
나는 지금 어떤 데이터로 규정되고 있는가?
우리는 이 거대한 데이터 사회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삶과 민주주의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메인 이미지 출처 :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