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cuphile
KBS 다큐인사이트 1부 [공대에 미친 중국]에 대한 글을 마치고, 2부 [의대에 미친 한국]을 봐야 하나 고민을 했다. 너무도 뻔히 보이는 결말이었기에 외면하고 싶었지만, 결국 보게 되었고 어렴풋이 알고 있던 사실들이 명확해지면서 답답한 마음과 함께 글을 쓰게 되었다.
2부 [의대에 미친 한국]에서는 한국 학생들의 의대진학 선호와 그 이유, 공대를 외면하는 현실들이 낱낱이 소개된다. 한 때는 기술강국으로서 훌륭한 엔지니어들을 배출하여 세계에 놀랄만한 기술을 선보이던 한국의 모습은 점점 소멸되어 가는 게 현실이다.
한국은 1980년대에 정부의 고도성장을 위한 제조업과 화학 중심의 전폭적인 지원과 전략으로 과학기술 혁신과 창조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빠른 성장을 하던 한국에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암초가 나타난다.
그 시절 안정적이라 믿었던 직장에서 근무하신 친구들의 부모님이 하루아침에 권고사직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른들의 절망과 불안을 생생히 목격한 그 경험은 집단적 기억으로 남았고, 이후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안타까운 깊은 가치 하나를 새겼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이다
그 안정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전문직이었고, 그중에서도 '의사'였다. 경기 침체에도 수요가 줄지 않고, 높은 소득과 사회적 위상까지 보장되는 직업. 부모 세대가 겪은 불안의 트라우마는 자녀들에게 안정적인 길을 선택하라는 교육 열망으로 변했고, 그렇게 한국 사회의 인재들은 점점 더 의대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 현상을 단순히 비판만 하기는 어렵다. 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의대 진학은 너무나도 합리적인 선택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더 안전하고 부유한 삶을 보장해 주고 싶어 하는 건 본능이니까. 실제로 의사는 여전히 경기와 무관하게 생존 가능한 직업이고,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보면 심각한 손실이다. IMF 이후 형성된 안정 중심의 가치관은 도전과 혁신을 꺼리게 만들었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의대 쏠림과 공대 기피라는 구조적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창의와 모험 대신 안전과 확실만을 좇는 사회가 과연 지속 가능한가?' 하는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그러는 사이 미국과 중국 같은 국가들은 기술인재를 육성하고 확보하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또한, 보다 나은 환경에서 창업과 연구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국가 주도하에 차근차근 마련해 나갔다. 한국 역시 그런 행위를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소위 concept과 trend(3D프린터, 메타버스, AI...)를 따지는 지원 및 정책이 난무하며 공학자들이 꾸준히 지원을 받고 연구에 몰두하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 라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과학분야는 비용과 연구인력,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데, 이런 한국의 현실에서는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 국무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미국의 고급인력 취업이민 비자(EB1, EB2)의 발급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또한, 한국의 이공계 박사수는 계속 증가하는 반면 박사급 연구개발 일자리는 일자리 증가의 절반 수준도 되지 않는 점이 더욱 충격적인 것 같다.
마지막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창업을 한 학생의 인터뷰가 그나마 마음에 위안을 준다. 세상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싶다는 학생은 자신이 만들어낼 신소재가 전 세계 사람들의 주머니 속에서 나오길 희망한다는 말을 한다. 이 얼마나 용기 있고, 담대한 꿈인가. 의대를 선택하고 선호하는 학생과 학부모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청년들이 한국에서도 지속적으로 꿈꾸고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진심으로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국가적 지원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다큐멘터리 내에 한국과 중국의 부모들이 공대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을 바라보는 태도를 보여주는 인터뷰 단면이 있었다. 한국의 공대진학을 꿈꾸던 학생이 충분한 수능점수가 나왔음에도 부모의 반대로 의대를 진학하기 위해 재수를 선택하게 되는 모습. 중국의 초등학생 부모가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아이의 꿈을 듣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극렬히 대조되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에게 펼쳐질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 줄까?
이렇게 한국의 인재들이 모두 의사만을 꿈꾸는 사회는 건강한가?
국가는 떠나는 기술 인재들을 위한 어떤 장기적인 지원을 고민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개인의 안정된 선택과 사회적 혁신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찾아야 할까?